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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Dec 21. 2020

지방러, 서울 지리 적응기.

부산 출신 배우 김민석이 <아는 형님>에서 공개한 에피소드 중 하나. 당시 그의 집은 신논현역. 아르바이트 장소는 강남역이었다. 그는 걸어서 10분인 거리를 30분 걸리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지하철 3개 노선을 거치고 두 번의 환승이 필수인 과정을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말이다. 이를테면 9호선인 신논현역에서 고속터미널역까지 가서, 3호선으로 환승하고 교대역까지 간 다음에, 다시 2호선으로 환승 후 강남역까지 갔을 것이다. 아마도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온 사람이라면 사는 곳은 달라도 아마 대부분 김민석과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점차 ‘서울 사람(!)’이 됐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지방러 모두가 그런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서울에서 교통수단은 애초에 지하철뿐이었다. 지하철 노선도에서 선으로 연결되지 않은 지역도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내게는 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울 길치인 내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 7개월쯤 됐을 때. 우연히 같은 방향에 사는 직장 동료를 알게 됐다. 그녀는 나보고 회사까지 한 번에 오는 버스가 있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다니냐고 했다. 환승을 하지 않아도 되고, 걷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고? 오! 마이갓!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 집 앞에서 4*** 버스를 타면 20분 만에 회사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지하철과 도보로 4-50분씩 걸려 회사를 오갔던 것이었다.     


나의 첫 직장은 청담 사거리와 학동 사거리 사이에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따지면 7호선 청담역에서 내려도, 강남구청역에서 내려도 애매한 위치였다. 어디서 내리든 다시 걸어가거나 버스로 환승을 해야 했다. 지하철 환승조차도 자주 방향감각을 잃어버려서 반대로 타곤 했던 나에게는 언감생심(!) 버스는 꿈도 못  일이었다. 그래서 선택지는 하나였다. 지하철 7호선과 도보로 출퇴근하는 것. 그나마 위안(?)은 우리 집이 2, 7호선 환승역인 건대입구역이라는 것. 그리고 아주 미스터리하게도 도보를 택하든, 버스를 택하든 똑같이 15분이 걸린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퇴근길에 비하면 출근길은 문제도 아니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하철 막차 시간을 가뿐히 넘겨버리는 퇴근 시간은 달랐다. 오직 택시 기사님에게 나의 귀가가 달려있었다. 그때만 해도 카카오 택시가 없었던 탓에 기사님들은 ‘어떻게 갈까요’라고 대부분 먼저 물어왔다. 대충 ‘알아서 가주세요’라고 하면 될걸. ‘성선설’을 믿던 내 딴에는 동정표를 받으려고 그랬는지. 길을 잘 모른다고 실토를 해버렸다. 그러나 그런 내 믿음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뉴스에서나 보던 나쁜 기사(?)를 직접 겪고 나서 기사님들에 대한 신뢰 대신 성악설을 믿는 쪽을 택했으니까. ‘아가씨! 나랑 데이트 좀 하자’며 잠실로 향하던 기사님을 만난 후의 결심이었다. 참 신기한 것은, 나쁜 기사님을 만나든, 좋은 기사님을 만나든 집까지 가는 데는 변함없이 20-30분이 걸린다는 것.

   

동료의 조언대로 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날. 여태까지 내가 만난 택시 기사님 중에서 착한 기사님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동대교’만 넘으면 바로 집이었고 회사였는데, 그 밤 내가 무수히 다녔던 길은 그 길이 아니었다. 영동대교의 존재를 안 이후 나는 택시 기사님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영동대교로 해서 건대입구역으로 가주세요’라고. 평소에는 2-30분 걸렸던 거리를 그날은 5분 만에 도착했다. 고작 다리 이름 하나 알게 됐을 뿐인데, 나를 어리숙하게 보던 그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기쁘면서도 어쩐지 씁쓸했다.      


내가 사는 우리 집이 어디쯤인지. 어디를 헤매고 다니는지도 모르던 내가, 서울에 산지도 이제 1N 년을 훌쩍 넘겼다. 이방인처럼만 느껴지다가 문득 ‘나도 이제 서울 사람이 된 건가?’하는 생각이 스칠 때가 있었다. 내 말투만 듣고는 내가 대구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때였다. 물론 그 덕분에 대구 친구들에게는 말투가 오글거린다는 비아냥 섞인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하지만 6개월 만에 뗀 서울말로는 역부족이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나는 항상 서울이 남처럼 어려웠다. 마음은 늘 갈 곳 없는 미아였다. ‘길. 알. 못’ 길치라는 물리적 거리감이 심리적으로도 멀게만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러다 정말 내가 서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나 스스로 인정(?)하게 된 때는 '서울 지리 숙제'를 실수 없이 풀게 됐을 때였다.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자유자재로 타고 다닐 수 있게 되고, 영동대교 말고 한강의 다른 다리 이름과 위치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며, 택시 기사님이 예정된 루트가 아닌 자신만의 지름길로 가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부터, 나는 서울이 편해졌다.

      


- 동대구역에서 ****번 타고 **에서 내리면 된다!     


내가 서울 지리에 익숙해지는 동안 고향 대구는 달라졌다. 버스 노선도, 지하철도 갈 때마다 낯설다. 처음 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제 대구에서도 종종 헷갈려한다. 그래서 엄마는 매번 이렇게 집으로 가는 방법을 한 번 더 알려준다. 다 큰 딸이 길을 헤매고 다닐까 봐. 엄마가 알려주는 것보다 더 빠른 길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그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고, 엄마는 알려준 대로 잘 타고 왔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럼 나는 늘 그랬듯 똑같이 말해야지. 엄마가 알려준 대로 오니까 아주 쉬웠다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것. 질량 보존의 법칙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곳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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