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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Dec 28. 2020

'작심삼일'이면 어때서?

마음을 단념시키는 방법.

영어 정규 교육과정을 장장 10년 이상 착실히 밟았음에도 내 의사(!)를 완벽한 문장으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How much is it?’ 뿐이었다. 누군가 ‘How are you?’라고 물어오면 실제 내 상황과는 대부분 상관없었던 ‘Fine thank you and you?’가 고정 대답인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이런 심각한 영어 실력을 가진 나에게 8년 전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겨버렸다.      


아... 그래서
영어 통역만 가능하다고요?     


베트남 촬영 답사를 이틀 앞두고 한국어 현지 통역을 맡은 친구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함께 하겠다는 본인의 의지는 강했지만 우리는 그녀를 말렸다. 당시 준비하고 있던 프로그램은 베트남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낙후된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때문에 촬영장은 관광지가 아닌 오지. 임신 초기의 몸으로 동행하기에는 무리였고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답사 때는 한국말은 전혀 못하지만 영어가 매우 능숙한 그녀의 동료 혼자서 우리 팀 통역을 전담하게 됐다. 이틀 만에 필요에 의해서 급조한 내 영어는 볼 것도 없이 수준 이하였다. 도대체 그 실력으로 촬영 답사를 어떻게 했던 걸까...

      

저 일을 계기로 나는 내가 영어 공부를 시작할 줄 알았다. 3일은커녕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게 지금도 미스터리. 하긴 영어에 대한 나의 불성실함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전에도, 후에도 여행을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식처럼 항상 이런 생각을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번에는 진짜 영어 회화 시작할 거야’라고. 특히나 4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일행이 소매치기 일당의 목표물이 되고, 난생처음 경찰서를 갔던 날. 터무니없는 영어로 사건 경위를 진술할 때는 정말이지 내가 ‘개과천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반전은 뜻밖의 순간 찾아왔다. 그것도 내 촬영장에서는 실패했던 결심이, 남의 촬영장을 보고 나서는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2년 반 방송된 <나 혼자 산다> '얼장' 배우 이시언의 에피소드는 주민센터에서 영어강좌를 듣는 것이었다. 안 봐도 알 것 같은 그림. (베트남에서 내가 그랬듯) 우당탕탕 좌충우돌 콩글리쉬와 보디랭귀지의 컬래버레이션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수업의 수강생은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었다. 강의 주제는 ‘cuisine(요리법)’ 말이 강의지, 오히려 발표 수업에 가까웠다. 우리 엄마 아빠 뻘 되는 분들이 자신의 요리 레시피를 영어 '문장'으로 설명하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10년 이상을 배웠는데도 문장으로 말하는 것은 넘지 못한 장벽. 더군다나 저분들의 학창 시절에는 영어가 정규 교육 과정도 아니었을 텐데... 그분들은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각만 하고 제대로 노력 한번 하지 않은 내가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여러 차례 뜻은 품고도 끝내 이룰 수 없었던 변명은 있었다.


어차피 시작해봤자 ‘작심삼일’ 일 테니까.      


결심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사람마다, 결심의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작심삼일’이라는 속담 탓인지 3일(?)로 보는 게 공신력(!)이 가장 높은 통계인 것 같다. 우리들의 결심은 정말 3일을 넘기기 힘들어서 ‘작심삼일’이 된 걸까. 아니면 오랜 시간 그 말에 세뇌당해서 모두가 3일 정도만 노력하다 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언제나 이것저것 시작은 하지만 끝까지 하지는 못하는 사람이 나을까. 끝까지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시작도 안 하는 사람이 현명한 걸까.      


적어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하고 나서 한 실망이 낫다. 실망은 아쉬움으로만 남지만 후회는 다르다. 가져보지 못한 미련 덩어리일 뿐인 후회는 마음을 접어야 하는 순간, 포기마저도 어렵게 하니까. 삶의 많은 순간, 나를 구차하게 만든 것은 ‘내가 왜 그랬을까’보다 ‘그때 만약 그랬다면’이었다.     


설령 삼일천하로 끝날지라도 영어 공부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애씀(!)은 ‘마의 3일’을 넘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뭐, 솔직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같은 마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꾸준한 날도 있었고, 생각보다 길게 멈춘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다행히 끝은 오지 않았고, 어느새 ‘작심삼년’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그저 뿌듯하다. 들인 시간에 비해 내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것에 만족스럽다. 그래, 이걸 두고 ‘자기만족’이라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작이 어려웠던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끝날 결과가 두려워서라기보다 무턱대고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지나친 자기 객관화가 가져온 겸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나한테 겸손해서 어쩌자고.... 이왕(!) 과소평가하고 있다면 더 이상 잃은 게 없는 마당에 시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남들의 시작에는 곧잘 향하던 격려가 나에게는 왜 그렇게 인색했을까.

      

무엇이든 시작은 해보는 게 좋다. 때로 그 선택은 시간 낭비도 되고, 낭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봐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그래야 마음이 쓸데없이 방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쓰지 않고 깨끗이 단념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아는 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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