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좋아하는 장르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방송한 커플 매칭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소위 말하는 ‘찍먹’ 이상, 다 본 것 같다. 그것도 모자라 OTT에서 볼 수 있는 해외 콘텐츠도 가능하면 섭렵하려고 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와 스페인의 <사랑의 진실게임>을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는 각 서른 명의 남녀가 오직 대화만으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한 후에야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는 설정. 오직 내면의 매력에 반해 결혼을 약속한 그들이 정말 결혼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사랑의 진실게임>은 연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눈동자로 파악하는 '거짓말 탐지기'가 있는 곳으로 여섯 커플을 초대해 진실게임을 한다. 진실을 말하면 돈을 지킬 수는 있지만 커플 중 어느 쪽이라도 거짓을 말하면 상금은 줄어드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대부분 성적인 질문인 데다가 수위가 매우 세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연인과의 신뢰 관계는 무조건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가 궁금하다면 넷플릭스에서 보시길.
남의 연애, 그걸 무슨 재미로 봐?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안 보냐’고 오히려 내 쪽에서 묻는다. 물론 처음 나를 잡아끌었던 재미 포인트는 변했다. 단순히 커플 매칭 결과를 위해 보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가 누구와 커플이 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말 그대로 남의 연애. 그들이 최종 커플이 되든, 현재 커플이든 아니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 다만 그들이 한 선택의 이유나 심경 내지는 심리 변화 등을 지켜보는 게 나로서는 너무 흥미롭다.
그런 점에서 나의 도파민을 최대치로 만드는 프로그램 중 으뜸은 <나는 솔로>다. 덕분에 매주 과몰입 중이다. 담당 피디도 그런 인터뷰를 한 것 같은데 나 또한 이 프로그램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닌 일종의 사회 실험 프로그램으로 생각한다. 남녀를 특정 장소에 모아두고 오직 커플 매칭에만 몰두하게 했을 때 발생하는 인간 군상의 여러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나의 시청 목표.
사실 나는 그들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관찰하고 있다. 보는 동안 나는 영숙이 되고, 영자, 정숙, 순자, 현숙이 된다. (아무리 혼자만의 가정이라고 해도 옥순이 되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하하.) 혹은 영수, 영철, 영호, 영식, 광수, 상철이 되기도 한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나라면’이라는 가정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과거 나의 실수를 마주할 때도 있으며, 현재의 나를 보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받았던 상처도, 누군가에게 주었던 상처도 발견한다. 때로 관계에 서툴렀던 나도, 의욕만 앞섰던 나도, 나밖에 몰랐던 나도 등장한다. 그래서 어떨 때는 숙연해지고, 어떨 때는 반성하게 되고, 어떨 때는 다짐을 하고 있다.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을 마냥 미워하고 욕할 수 없다. 때로 내가 보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닌 나였거나, 나이거나, 나일 수도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