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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15. 2024

나의 아픔을 남들에게 말하면 안 되는 이유.

        한 커뮤니티에서 ‘나의 힘듦을 남들에게 터놓고 말하는 습관 무조건 고쳐라’라는 글을 읽게 됐다. 세상에서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건 스스로 만든 능력, 돈, 매력뿐. 힘들 때는 무조건 혼자서 버티고.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정신은 단단해지고 해결방안도 스스로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일견 설득을 당할 수밖에 없는 말이면서도 전부를 공감하지는 못했다. ‘습관’이라 말한 것은 이미 자기 이야기하기 좋아한다는 의미일 텐데.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말을 줄인다는 것도 어렵고, 무조건 고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은 내가 그렇다. ‘투 머치 토커’인 나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주문. 무엇보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 철저히 혼자 감당한다는 게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고백하기 전에 고민해봐야 할 것’으로 바꿔 생각해 봤다.


        자신의 아픔을 남들에게 말하면 안 되는 첫 번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자신의 시간을 써가면서 듣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 한 마디로 눈치 챙기고, ‘아무에게’나 자기 얘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아무나’가 내 이야기를 해도 되느냐, 하지 말아야 되느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아무나’를 구별하려면 ‘나에게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당신’이 어떤 의미인지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대놓고 ‘나의 의미’를 상대방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시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굳이 내 소중한 시간을 써가면서까지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있다. 바로 자신이 상대방에게 그런 사람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가뜩이나 그 사람에게 쓰는 내 시간이 아까운데 어쩌다 한 번을 만나도 늘 자기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진짜 최악이다. 그들에게 당신의 말은 굳이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일 뿐. 비밀 또한 지켜질 리 만무하다. 어느 순간 당신의 고백은 진심이 사라진 소문으로 돌아와 상처만 남은 자책을 만들 수도 있다. 반대로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아깝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나'가 아닌 내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라면 당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아픔을 남들에게 말하면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는 것이 되는데 특히나 자기 확신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남에게 이용당하기 또한 쉽다는 것. 사실 이 문제는 앞서 말한 ‘아무나’에게 털어놓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100% 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아무나'가 아닐 것이라는 그 사람에 대한 오판. 또 미처 파악할 수 없었던 ‘저의’를 가진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고. 거기다 아무리 굳건한 사이였더라도 인간관계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주장처럼 누군가 자신을 배신(?)할 경우 나의 이야기는 그 사람의 손에 칼을 쥐어주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이 상황을 막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절대 나의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지금 당장의 고통과 괴로움이 더 클 때가 있다. 나의 잘못이든, 상대의 잘못이든 ‘이거 나만 이상해?’라고 물어보고 싶을 때도 있고. 지친 영혼을 달래줄 달콤한 위로 한 스푼이 필요할 때도 있고. ‘괜찮아’ ‘할 수 있어’라는 격려가 듣고 싶을 때도 있고. 아주 가끔은 정신을 번뜩 들게 할 만큼 혼나고 싶을 때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고백에는 상대방이 해야 할 답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을 뿐, 그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철벽 방어할 수 있는 방패를 찾은 것이 아니다. 또다시 예기치 못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때는 온다. 만약 그렇다면, 그때마다 또 털어놓고, 위로받는 것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까. 언젠가는 자신도, 내 사람들도 지친다. 아무런 진전 없이 무한 반복되는 푸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설령 고백의 시작이 ‘답정너’였더라도 원하는 답을 얻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자기 고백이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힘을 가지려면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단순히 선과 악, 맞고 틀림으로 결론 내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놓치고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 그런 자기 확신만이 타인에게 쉽게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인정을 하는 건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아니, 엄청 어렵다. 그럴 때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이 있다. 나나, 그 사람이나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러면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는 게 훨씬 쉬워진다. 물론 나 자신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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