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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14. 2024

내가 나에게 허락한 소박한 사치의 후폭풍.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14

        지난해 12월 갑자기 나에게 몰아닥친 물건 정리의 기세를 이어가던 1월 어느 날. 싱크대 전체가 탈탈 털렸다. 그리고 나도 함께 털렸다. 당당하게 물욕이 없다고 했던 사람이 나일 리가. 집이 없어도, 차가 없어도, 명품이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물욕이 없는 건가? 집안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쏟아지는 데 정신이 혼미해졌다. 대체 이게 물욕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늘 하던 대로만 하(려)는 사람. 그릇이 아무리 많아져도 주로 쓰던 것만 쓴다. 새 옷을 사도 결국엔 입던 것만 입고, 음식도 먹던 것만 먹는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만나던 사람만 보고, 새로운 관계를 넓혀가는 것에 크게 흥미도 미련도 없다. 평생을 이런 관성에 순응하고 살아왔기에 이 법칙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는 법. 아무래도 나에게는 기분이 어쩌다 한 번씩 롤러코스터를 탈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던 듯싶다. 특히나 식생활에 관해서는. 그때의 기분에 따라 결심 직후에 곧바로 장비와 재료를 구입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따르면 샀으므로 이미 반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는 개뿔. 내가 모든 면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완전하게 꽂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다. 살 때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는 그냥 사는 것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다. 산 것들이 끝내 내 일상에 안착하지 못하고 싱크대 수납장에만 자리 잡게 된 데에는 꾸준함의 부재가 가장 크다. 그리고 또 하나. 선택의 폭이 다양하게 주어진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골고루 누리려는 사람이 아니란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갑자기 감자전이 먹고 싶다. 하지만 나는 강판이 없는걸? 뭐가 문제야. 집 근처에 다이소가 있잖아. 바로 출동. 유비무환. 이제는 준비가 되어 있어서 갑자기 감자전이 먹고 싶어도 걱정 없다. 하지만 그날 이후 감자전에 대한 식탐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 만들어 먹어 보니 왜 가게에서 비싸게 파는지 이해하게 됐고, 먹고 싶으면 그냥 사 먹자는 마음만 커졌다.   

   

        강판의 수명은 나에게 온 첫날 끝이 났다. 그날 딱 한 번 쓰고 싱크대 상부장 붙박이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으니까. 고구마를 쪄먹고 싶다고 사 온 스테인리스 접이식 찜기는 그나마 양배추쌈을 먹고 싶다는 욕구의 등장으로 몇 번 더 외출을 했다. 그래봐야 한 다섯 번은 되려나? 그것도 전자레인지를 쓰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 얼마 후 전자레인지를 사버렸다. 완전한 대용품이 생겼음에도 유비무환의 정신을 지켜 ‘혹시 모른다’며 수납장에 박아두기만 한 게 벌써 몇 년인가. 수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라면은 어쩌다 한 번 먹으면서도 면기가 따로 있어야 했고, 그런 식으로 볶음밥 먹을 때, 비빔밥 먹을 때, 스파게티 먹을 때, 군만두 먹을 때 등등 매 끼니를 대비한 그릇들을 준비했다.


        이쯤 하면 눈치챘겠지만 사실 나는 유비무환의 정신을 따르려던 게 아니었다. 


        '내가 나한테 이 정도도 못 해?'


        늘 그놈의 ‘이 정도의 사치’가 문제였다. 명품을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식기가, 주방 도구가, 텀블러가, 맥주컵이 소박한 욕망인 건 틀림없었다. 소박했기 때문에 쉽게 허락했고, 허락하면 할수록 순간적으로는 나를 아끼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분이란 태생적으로 시시때때로 변할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 금세 시들해졌다. 다시금 싱싱한 기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허락이 필요했다.      


        계속된 허락의 남발. 그로 인해 발생한 행복의 지속 기간은 역시나 길지 않다. 특히나 가능한 하던 대로만 하(려)는 사람인 나에게 취미에 없던 요리도, 어쩌다 한 번씩 생기는 식탐도 항상성이 전무했으므로 그때뿐인 의욕에 불과했다. 그때뿐인 것들에 너무 많은 공간을 내어줬다. 더군다나 내가 쓰는 것만 쓰는 사람이라면 내가 정말 쓸 것들을 위해 공간을 써도 결코 넉넉하지 않은 것이 원룸살이다. 물건들 하나하나의 차후 거취를 정하며 그때뿐이었던 욕망을 모두 정리하기로 한다.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안녕... 소박했지만 그래서 여러 번 행복할 수 있었고, 쉬운 행복이라서 금방 잊힌 나의 주방 동지들. 내가 너희들이었다면 어두운 곳에서 처박혀서 제대로 능력 한번 발휘 못 하고, 자리만 지키느라 너무 서러웠을 것 같아. 무책임한 주인 만나서 그동안 맘고생 많았어. 고심 끝에 남겨두기로 한 친구들은 내가 잘 써 볼게. 약속해.      


         주방에서의 작별식을 마쳤다. 훨씬 더 후련했고, 다행히 미련은 조금도 없었다. 한번 자신감이 붙은 물건들과의 이별은 주저대신 가속력만 더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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