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지나 돌이켜보니, 서른 중반의 나는, 왜 그리도 아이들을 뒤로하고, 내 시간을 갖기 위해 애를 쓴 건지!"
평일에는 18개월, 35개월인 첫째와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시간, 주말에는 아이들이 잠들고 난 시간, 이때 육아맘에게' 달콤한 나만의 시간'이 찾아온다. 요즘 책 한 자 읽을 시간, 뉴스기사 헤드 조차 읽을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는 내게, 두 아이를 키운 지인은 말한다. "그 시간이 영원하다면 형벌이지. 하지만 앞으로 아이들 하고 살 부비고 투닥거릴 시간이 1~2년에 끝난다면, 할 만 해질꺼야. 다시 돌아간다면, 내 시간에 대한 욕심은 조금 내려놓을 것 같은데, 현실육아맘은 그게 참 어렵지?" 위로와 격려의 말이 뒤따랐다.
그렇다. '엄마로서의 삶에 집중하는 것'과 '나를 위한 시간을 갈망하는 삶'. 그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나를 본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순간, 육아맘에게도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는 것이다. 늘 여행같은 삶을 살 수는 없어도, 작은 새로움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아이를 더 잘 기를 비타민이 되는 것이므로, 포기가 어렵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를 꿈꿨던 사람이 맞나? 이렇게 내 시간에 대한 욕망이 컸으면, 애초에 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에만 만족했어야 하는 건데, 하는 자책도 뒤따른다. 원래 남의 떡은 커보이는 법이다. 하나만 낳을껄 그랬다는 마음 말이다. 외동으로 자란 나는, 나이가 들수록, 엄마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엄마와 닮은, 같은 또래의 자매가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되면서, 엄마가 돌아가시면 나는 세상에 오롯이 홀로인 것 같은 마음을 대비해, 나는 아이를 둘 이상 낳자고 생각했는데. 책임으로부터는 이토록 도망가고 싶은 것도 어쩔 수 없는 터.
아이를 등원버스에 태워보내고, 얼른 집을 치우고, 배낭을 메고 밖을 향하는 나의 뒷모습이 엄마로서 썩 멋지지 않을까봐, 유별난 자기방어를 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사실만을 생각하며 오늘도 집을 나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