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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ra Kim Jun 08. 2022

수수와 함께 하노이를 거닐다

49개월 둘째와 엄마 단둘이 여행담

베트남 하노이에 다녀왔다. 친구가족이 주재원으로 5년째 머물고 있었다. 비행기로 네 시간 반이면 가는 곳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간 왕래가 막혀 있었다. 올 연말이면 온가족이 5년간의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다. 그전에 자신이 살고있던 아름다운 한 세계를 나에게 공유하고 싶었을 친구의 따스한 마음이 나를 초대했다.


지도 보는 것도 서툰 나이지만,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그나마 어렵지 않은 과제였다. 제제는 일곱살에 이사를 하면서 유치원을 두 번, 세 번 옮기며 적응에 몸살을 앓던 중이었다. 나는 고민끝에 하노이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다행히 제제는 새로 다니기 시작한 유치원을 좋아했다. 제제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대안을 찾기도 어려웠다. 세 번째 다니게 된 유치원에 잘 적응하길 바랐다. 유치원을 옮길 때마다 '힘들다'라는 글자 안에 다 담기에 버거울 정도로 나와 제제는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맞지 않는 환경에 몸을 구겨넣으려 충분히 애썼던 제제와 그것을 바라보며 함께 시간을 견뎌온 나. 우리각자에게는 '일시정지'가 필요했다. 둘째 수수는 언제나 엄마와의 시간을 굶주려 했다. 늘 유치원에서 자기보다 일찍 돌아와 치료를 다니는 언니가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을 터다. 남편은 수수와 엄마 단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아직은 나 혼자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은 지독한 훈련의 시간이 될것 같다고 생각한 남편.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여행은 우리 각자에게 아주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제제는 제제대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고속버스도 타보고, 도자기 그릇 만들기도 해보았다. 예술의 전당도 가고, 키즈카페도 가고, 한강도 거닐었다고 한다. 어른 두세명이 자신을 오롯이 봐주는 충만한 시간. 제제와 매일 영상통화를 하면서, 혹은 보내온 사진들의 제제는 한껏 행복해 보였다. 아빠가 쉬는 일요일에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대동해, 동물원도 다녀왔다. 그야말로 외동놀이의 끝판왕, 왕놀이를 실컷했다고 한다. 수수는 수수대로 처음 공항도 가보고, 처음 비행기도 타보았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처음 가보았다. 늘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나무와 꽃들, 40도에 육박한 찌는 듯한 무더위, 그리고 갑작스런 스콜과 잦은 천둥번개도 경험해 보았다. 베트남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쌀국수를 마음껏 먹었으며, 매일 더웠기에 매일 수영할 수 있었다. 잭프룻, 드레곤프룻, 패션푸룻, 애플망고 등 싱싱한 과일도 마음껏 먹었다. 무엇보다 엄마를 나누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던 것이 가장 좋았을 것 같다.


나는 간만에 남녀노소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동안은 제제와 수수 엄마로서의 만남에 제한되었다면, 하노이에 거주하는 대학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고, 길을 걷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질적인 시간에 놓일 수 있는 여유를 누렸다. 두 아이와 혼자 씨름하다 번아웃 되어 늘 피곤한 상태에서 밤과 아침을 맞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충분히 멍때렸다. 더운나라의 수영장, 그 시원한 물과 완연히 일체된 아이를 두고, 나또한 긴 자유를 얻었다. 온동네 아이들이 학원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에서 수수 또한 언니 오빠들과 격의없이 신나게 수영하고 또 수영했다.


친구가족은 나를 프렌치, 일식, 태국, 베트남, 베지테리안, 이탈리안, 중식, 한식당으로 이끌었다. 몸무게는 늘었지만, 한국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음식을 매끼 챙겨 먹었다. 잘 먹고 잘 잤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몸소 체험했다. 한국에서 비즈니스 호텔 정도의 가격으로 허니문 여행에서나 갔을, 훌륭한 시설의 호텔도 경험해 보았다. 구름 위를 걸었던 시간이라고 해야할까.

여행은 언제나 끝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꿈에서 깨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행의 감격도 오래지 않아 끝날 것이다. 하지만, 여행하지 않았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여러가지 전환의 생각들은, 작은 것이라도 일상을 바꾸게끔 꼭 적용하자고 다짐했다. 만남의 폭을 넓힐 것, 서로의 지경을 넓이는 데 언제나 도움을 주고받을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넓히고 지속할 것. 그리고 매일 운동할 것. 즐겁게 요리하고, 나 자신을 아름답게 하는 일에도 에너지를 쏟을 것. 영어로된 텍스트를 계속 읽을 것. 매일 여행하는 시선으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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