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 반응. 여러 번 말을 해야 겨우 알아챌 것이라고 했다. 아이는 계속 책만 본다. 시각과 청각의 욕구를 끊임없이 충족시켜주라고, 뇌가 계속 명령한다고. 마치 굶주린 자처럼 허겁지겁 책을 보고, 책장을 넘기며 나는 소리에 허덕인다고. 우리 첫째는 3개월 무렵부터 엄마인 내가 책을 열심히 보여주었다. 아이를 임신 했을 때, 나는 국어와 논술 수업을 계속 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아이 아빠와 아이 앞에서 늘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것이 뇌의 잘못된 신호에 의한 과한 활동이라니. 속상했다.
아이는 시각 청각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세상과 벽이라도 쌓은 듯, 계속 책만 팠다. 집에서나, 유치원에서나, 친구집에 놀러가서나 한결같이. 그 욕구가 우선되다 보니, 다른 욕구는 밀려났다. 동생이 첫째를 괴롭혀도, 얼굴에 무언가 묻어도, 배가 고파도, 친구들이 놀자고 불러도, 엄마가 아빠가 선생님이 어떤 지시사항을 말해도, 바위 같은 얼굴로 진지하게 책만 봤다. 자폐 검사를 받아보진 않았지만, 상호작용에 대한 부분이 검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검사를 받아보면, 자폐 스펙트럼 안에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늘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치료사 선생님 앞에서 긴장해서 아이의 행동이 평소보다 과하게 나타났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아이를 한 시간 반 가량 지켜본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랬다.
얼마간의 치료가 필요한 아이다. 지시사항에 무반응에 가깝게 행동하고, 상호작용에 관심이 덜한 것의 원인은 이와 같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아이는 매일 자란다. 검사 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또 얼마간 성장했다. 그러니, 나아지고는 있었다. 다만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을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세상의 속도,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므로. 차분한 마음으로,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되,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치료와 도움도 계속 받아야 할 것이다. 아이와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다. 아이가 반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면서 혼자 대열에서 자꾸 빠져나와 휘청이는 것을 추억으로 이야기할 날을 기다려 본다.
2020, 다가오는 새해에도 아이에게 조바심 내지 않은 엄마, 아이가 그 자신답게 잘 자랄 수 있게, 아이 내면의 고유한 빛깔이 더 빛을 발할 수 있게, 돕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 2019년에 했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