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연말연시
어떤 날은 위로 받기 위해 글을 쓴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누군가의 위로가 아니라, 쓰고 비워냄으로서 작별할 수 있는 그런 위로.
미혼 때는 매일 야근하던 날이 오늘 같았다.
팀의 막내. 일의 규모나 프로세스를 거의 가늠하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일들을 쳐내던 그때.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일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그때.
지금 생각해보니, 팀장이라고 딱히 그것을 다 알았겠나 싶다.
그는 그대로 인생의 어느 골목을 헤매고 있었을 터.
그러고 보면, 삶은 반복된다. 그리고 언제나 내 앞에 놓여진 문제로 힘들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꿈꾸는 삶을 살아갈 어느 장래의 날도
무척 고단한 일상은 연속될 것이다.
올 한해는
모두들 "저 아이는 또래 아이보다는 조금 더 아기인 것 같애" 라고 생각하는
우리 첫째를 기르며 엄마의 자세를 가다듬었다.
사실, 나는 올해 조금은 피해사고가 생겼다.
발달이 빠른 아이를 둔 엄마들이, 실은 우리 아이와 노는 걸 기피하는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
그렇게 어차피 오래가지 않을 사이라면, 애초에 기대하지 않고 만나지 말자, 하고 마음의 문을 닫게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시간이 지나니 괜찮았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나로 살아가는 나날 중에 어느 한 날이었음을 받아들인다.
굳이 우리 아이보다 생일이 빠르고, 조금 빨리 걷고 말하기 시작한 아이들 사이에서
아이에게 스트레스 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는 우리 집에서 두 아이를 내가 기르고 있다.
그러니 두 아이가 있는 시공간이 벌써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하나의 사회인 것인데,
조바심 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이를 (괜한 열심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데려갔던 나를 반성했다.
나는 내향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러니 사회성을 기른답시고 아이를 여기저기 끌고다닐 일이 아니었다.
나한테도 없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알았으니 반복하지 말자.
다시 나의 나다움으로, 아이들과 집에서 도란도란 책 읽고, 끼적이는 것으로
우리 아이들과 나는 행복해지고 있다.
사실 첫째는 언제나 남의 집에 가서도, 책장 앞에 앉아있던 아이였다.
그러니, 그 아이의 호흡을 우선하는 게 더욱 중요할 것이다.
파티를 열어주고, 체험의 현장에 데려가고,
그런 것에 너무 현혹되지 않기로 한다.
나와 아이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돌아보고,
다시 아이가 좋아할 그 다섯 살과, 세 살을, 2020년을
계획하는 연말연시를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