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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몸으로 점차 나아가는 제제를 바라보며,

엄마 역시 초경 무렵 느꼈던, 불편감과 다시 만나, 화해하는 시간

by Joy Kim

제제는 지난주 성장 클리닉에서 뼈 사진을 엑스레이로 찍었다. 현재, 만 8세 4개월인 제제는 만 11세의 뼈 나이로 성장해 있었다. (제제가 무서워해서) 피검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전문의의 예상으로는 대략 앞으로 1년 후에는 반드시 초경을 시작할 것이라 했다. 더 늦기 전에, 피검사를 해서, 그 결과를 토대로, 성장 지연 주사를 맞을 것을 추천받았다. 당장 해야할 피검사도, 3개월마다 성장지연주사를 맞히기도 수월하지 않을 제제라 걱정이 많다. 차라리, 제제 몸에 맞게 찾아오는 초경을 환영해주고, 적절한 가르침과 훈련으로 나아가는 것이 나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제제는 현재 집 아닌 공간에서 용변 보는 것도 피하는 편이라, 아무래도 초경을 받아들이면, 학교에서 아이가 스스로 그 과정을 감당하기가 무척 힘들 것 같다. 제제도 걱정이 되는지 자꾸만 묻는다. "주사를 안 맞으면, 피가 나면서 어른이 돼버리는 거야? 그러니까 주사를 맞아야해?" 스스로 다짐하듯, 피검사 하러 갈 날을 하루하루 받아들이고 있는 제제.


제제 엄마인 나는, 비교적 모든 2차 성징이 빠른 편이었다. 5학년 때 초경을 했다. 3학년 때 가슴이 제법 나오기 시작하자, 체육 시간에 마음껏 달리는 일이 불편해졌고, 브레지어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남자 아이들은 넓은 등에 아무것도 없는 보통 여아들과 달리, 내 등을 가로지르는 브래지어의 끈이 신기하고 궁금했는지, 와서 만져보고, 툭 치고 머쓱하게 도망치기도 했다. 그런 장난을 하는 아이는 정해져 있었는데, 그 아이만의 호기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여러 아이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으므로.


제제가 이제, 나의 그 3학년 나이가 되었다. 몸을 씻길 때면, 허리가 잘록해지고, 여성의 몸으로 조금씩 자라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서늘하고도, 묵직한 두려움을 느낀다.


모든 남성을 싸잡아 나쁘게 말하려는 마음은 없다. 다만, 남녀 공히 우리에게 있는 동물적 본능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고, 혹시나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가면, 나는 덜컥 겁이 나는 것이다. 제제가 아무래도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잘 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보니, 제제의 빠른 성장이 달갑지만은 않고, 실은 무척 두렵기까지 한 것이다.


그건 순전히 제제에게만 해당되는 일만은 아니다. 나 역시 제제와 다를 바 없는 십대 이십대를 보내왔을 터. 나의 몸이 여성의 몸으로 되고 난 이후부터, 그러니까, 남녀의 구분이 없다 싶히 한 무렵에서 구분이 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넘어온 후로는, 그런 본능의 일들은 나에게도 자주 불편함과 긴장감으로 끝내 이어져, 나를 마음의 고단함에서 지쳐쓰러지게 했고, 말끔한 해결이랄 지, 시원한 해소랄 것에 다다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등에 있는 브래지어를 탁 치고 도망가는 3학년 같은반 어린 남자 아이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얼굴만 붉혔던 일도 그 시절이 기억으로 또렷하다. 늘 가슴이 드러나지 않는 옷을 입고, 되도록 구부정한 자세로 다닌 것도 그무렵 부터일 테다. 5학년 때에는, 불가리 향이 늘 스며있던, 같은반 서태지에게 심장이 쿵콰대다 못해, 괜히 학급시간에 조목조목 대들었다가, 사이만 멀어지기도 했고. 실은 오래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말이다. 6학년 무렵에는, 가까운 지인 가정의 중학생 오빠의 다정하지만, 숨이 턱 막힐 것 같았던 갑작스런 신체 접촉이, 어떤 생경함에 더해 공포의 기억으로 처리돼 있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더 자라서, 대학에 입학해, 보다 나 자신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을 때로 넘어왔을 즈음에도, 그런 종류의 두려움은 늘 스스로 처리하기에 낯설고 다루기 어려운 면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주의 텍스트를 건네며, 가르쳐주었던 그래서, 1학년 여학우들을 든든히 지켜줄 것 같았던 선배(심지어는 교수님)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는, 함께한 진보적인 텍스트와는 전혀 다른 몸짓을 해올 때, 혹은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느껴졌던 물리칠 수 없는 무거운 권력감 같은 것에 대해 아무도 드러내놓고 말하거나, 쓰지 못했던 것도. 나 역시도 그런 이야기는, 여자 쪽이 너무 쉬워 보이게 굴었을 것이라는 굴레에 놓일까봐 차마 내놓지 못한 이야기로 남아있는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제제 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그러니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는 날마다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엄마이든, 시터이든 안전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공백없이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강남 학군지에서도 사각지대는 존재하기에. 아이가 타고 오가는 학원 셔틀버스도 두려운 마음이 들고, 동네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오래된 스포츠 시설에서도, 젊은 남자 선생님이 여아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는 괴담이 오가고, 태권도 같이 열린 공간에서 하는 스포츠 이지만, 오가는 길에서 여아 혼자 남자 선생님에게 갑작스럽게 신체접촉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이야기며, 다소 거북함을 느끼는 남아에게 젤리를 건네며, 자주 볼에 입을 맞추는 학원 여자 원장 선생님 이야기까지...그저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여부를 떠나 걱정이 되기 시작한 엄마가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제 슬슬 자신들의 몸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해주고, 그들의 몸이 귀한 생명을 열 달 동안 기를 수 있게 성장 중임을 설명해 나가는 중이다. 생물학적으로 몸이 준비되고 있긴 하지만, 그 외에도 한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날 수 있는 토양으로서의 가정에 대해서도 아이들과 할 얘기가 무궁무진 할 것 같다.


제제가 세상에 오기까지, 엄마와 아빠가 어떤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을 보내왔는지, 그럼에도 엄마아빠 역시 인간적으로 여전히 부족한 존재로서, 너희들과 좌충우돌 함께 성장하고 있음에 대해서도 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몸의 변화 앞에서, 어미가 될 몸이 어떤 준비의 마음을 가져야 할 지, 그 축복된 몸으로의 성장을 감사하며, 자기 자신을 얼마나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하는지까지, 말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삶에서 예기치 않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엄마에게 툭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애써가야 함을 엄마인 나 스스로에게도 주지하며, 아이들과 더 잘 지내야겠다는 다짐도 다시금 해보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 삶의 여러 지점에서의 변화는 생각지 않은 순간, 찾아온다. 초경을 맞이하기 까지, 이번에도 차근차근 제제에게, 수수에게 설명해 나가야 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성장하며 혼자 어찌하지 못하고, 묵묵히 감내해온 내 안의 여러 감정들이나, 불편했던 기억들을 대면하며, 나 스스로도 다시 화해의 시간을 가져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건강한 한사람 한사람으로 함께함 또한 감사로 환기하게 되며, 이 시절이 더없이 소중해진다. 이 시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저편으로 넘어갈 것이다. 아직은 부모에게 완전한 의지를 하는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나는 진정 의지할 만한 언덕이 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되는 요즘. 아이들의 몸의 성장을 받아들이며, 엄마인 나도 또 이렇게 커나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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