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감사하는 육아로 돌아서며
제제가 2학년때 까지는 말그대로 저학년이다보니, 담임선생님께서 쉬는 시간에도 제제 곁을 지켜주시고, 반 아이들의 융화에 도움을 많이 주셨다. 하지만, 3학년은 보다 공부하는 학년, 중학년으로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 학년이 올라가,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가 정교해질수록, 제제는 외로운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어떤 언어치료보다, 대화해야할 상황에 놓였을 때, 그 상황에 잘 어우려져 있는 편이 제제에게 더 맞춤 치료일 것 같았다. 그래서 3학년 부터는 주3회 보조선생님이 제제와 함께하면서 학교생활에 도움도 주시며, 대화에도 활력을 더해주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그렇게 해보고 있다. 공부양이 늘어나고, 집중시간은 여전히 짧은 편인 제제, 그리고 책상이나 주변정리를 잘 못하는 부분, 화장실을 스스로 잘 안가는 생활적인 불편한 부분도 보조선생님이 함께 하면서 개선되어야할 부분이었다. 보다 편안한 가운데 제제가 학교생활을 할 수 있고, 담임교사 혼자 제제와 다른 아이들을 동시에 케어하면서의 어려움도 덜어드릴 수 있어서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 욕심은 본래 끝이 없는 법. 제제 혼자 학교를 왔다갔다 하는 동안에는, 도대체 학교에서 제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어 속이 답답하고, 안개속을 눈감고 걷는 것 같았는데, 이제 보조선생님이 제제 곁에 계시니, 제제의 일과를 더욱 선명하게 전해 듣고싶어졌다.
선생님! 매시간 제제가 배운 과목의 타이틀, 그러니까 새롭게 아이가 집에서 익혀가야할 내용을 한줄로라도 써주시면 좋겠어요! 라는 부탁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제제 어머니, 걱정이 많으시지요? 제제가 잘해내고 있는 부분도 많아서, 더 많이, 더 자주 칭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라는 답이 왔다.
그 메시지를 받고는, 한동안 머리가 하얘졌다. 무언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더 생각해보니, 나는 뒷통수를 한 대 맞는듯이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랬다. 그것은 나의 과도한 통제욕 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 아이에게나 보조선생님 모두에게 부끄럽게 여겨졌다. 나 자신만 봐도, 어디 매일매일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제제의 하루를 사진 찍듯이 완벽하게 안다고 한들, 그 모든 것을 집에서 뒤쳐지지 않게 준비하고, 쫓아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음악시간에 배우는 리코더 연주곡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제제는 한음 한음씩을 짚는 게 어렵다. 영어시간도 그랬다. 제제는 영어를 좋아하고, 영어 책읽기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3학년 교과시간에 나오는 영어는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다. 하지만, 쓰기 훈련을 많이 하지 않아서, 대소문자를 섞어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어느 순간 손을 보고, 넘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제제에게 인생을 바꿀 중요한 내신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니, 큰 걸림돌까지는 아니다.
제제가 다른 친구들과 박자를 맞춰가는 것은 애초에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제제는 이미 제제가 할 수 있는 한 충분히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제는 자기만의 호흡과 리듬으로 수업시간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성과와 무관하게, 제제 너 자체로 너무 귀하고, 너의 모든 장점이 친구들에게 큰 귀감이 됨을 말해주어야 할 것이었다. 천근아 선생님께서 어느 방송에서 하신 말씀이 심장에 콱 들어와 따스하게 박혔던 것을 기억해 본다. "우리 자폐아이들이 교실에 없어보면,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공기를 다른 아이들도 느낄 것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었다. 제제를 도와주려고 한껏 힘쓰는 아이들. 제제가 없으면, 그냥 약육강식의 경쟁의 각박한 교실이기에, 우리 제제의 존재 자체가 선한 영향력이라는 그 말씀을 다시 새겨보았다. 그러고보니, 제제가 잘 지내고 있음에 감사함이 느껴졌고, 제제의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커졌다. 그날은, 보조선생님의 따스한 말씀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와 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