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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의 세계

죽은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는 입체적 소비

by Joy Kim

아침에 눈을 뜨면, 요즘 내가 하는 일이 있다. 집에 있는 물건들에게 생명력을 더해주는 일이다. 이름하여 ‘재의미화’ 작업. 세상에 물건이 생겼다는 것은, 애초에 어떤 인간의 필요에 의한 창조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물건을 구매할 당시의 본래 가치에 맞게 사용빈도를 높이거나, 이제 나에게 의미가 없어진 물건이라면, 지금 당장 그 물건에 대한 갈급함이나 애정이 높을 사람에게 그 물건이 가게끔 보내주는 일을 시도해 본다.

내가 이런 작업을 하는 물건들은 주로, 죽어있는 물건들인 경우가 많다.
험하게 표현하면, 주인인 나에게서 그 가치를 상실한 것에 가까운 물건들.

드레곤 디퓨전. 작년에 나의 그 가방은 나에 의해 29만원에 구매대행으로 사들여졌다. 나는 여름에만 유행하는 그 위빙 가죽 가방이 신기했다. 고속터미널역, 신세계백화점 주변을 걷다 보면, 고야드 가방 만큼이나, 몇 분만에 한 명씩, 그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후기를 찾아보니, 가죽이라, 물건을 조금이라도 많이 넣어 토트백처럼 들면, 팔에 자국이 남는단다. 그 후기를 읽는데, 굳이 사보지 않아도, 벌써 팔이 아플 것 같고, 가죽이 아래로 쳐질까봐, 물건을 마음껏 못 넣을 것 같은 느낌이 딱 든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가방을 드는 건지 궁금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예쁘다! 예쁜 것 같다. 그 가방의 자연스러운 쳐짐이 주는 매력 때문일 수도 있고. 여름 가방인데, 마냥 싸구려는 아니라서 일 수도 있겠다. 구제틱한, 꾸안꾸 느낌이 좋은 걸 수도 있고. 가죽 소재 특성상, 누구와도 같은 가방처럼 보이지 않는 매력이 어필을 한 것일 수도. 그렇다쳐도, 29만원 까지나 안 줘도 그런 가방은 많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그 인기의 비결은 들어보지 않는 한 해결이 안 됐다. 사람들은 팔이 아프다는 후기를 읽고도, 왜 살까. 무엇보다 같은 가방을 든 사람들이 많음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들고 다닌다. 나의 멋쟁이 친구들 중 한 명도 그 가방을 아주 잘 들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나니, 백번 고민하다 결국 나도 구매버튼을 눌렀다. 아무 가방이나 들고 다니기 보다, ‘근본있는 가방’-많은 사람들의 애정을 받는 가방-을 들고싶은 마음이, 한국인들의 쇼핑 문화임을 자주 느끼기도 하기에. 충동적으로 구매 버튼을 눌렀지만, 마음이 찜찜하다. 아무래도 반품을 하게될 것 같아, 구매취소 버튼을 눌렀는데, 이미 가방은 출고되어 우리집 앞에 도착해 버렸다!

한국 사람들은 혼자만의 지극한 개성보다는, 내 쇼핑이 근본이 좀 있으면 좋겠는 마음이 큰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핫한 걸 좋아한다. 나만 하면 조금 불안한가? 다른 사람들도 나의 그 무엇을 같이 하는 데 대해 묘한 자부심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파리나 뉴욕 사람들은 제멋대로 입고 다닌다. 계절감 같은 것도 그닥 신경쓰지 않으며. 일본만 해도, 튀게 입지 않는 점은 비슷할지 몰라도, 한국만큼 쏠림현상이 심하진 않았다. 20대 대학생만이 살 수 있던 1만엔짜리 ‘청춘열차’ 티켓으로, 나는 도쿄에서 후쿠오카까지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며 여행을 해보면서, 지역마다 특색있는 옷차림에 큰 재미를 느꼈다. 특히나, 고베는 화려한 디자인이 많고, 레오파드의 고장 같았다. 스타킹, 신발, 레깅스, 모자, 모든 품목에서 레오파드가 많은 지역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반포동에서 익숙한 에르메스 신상 슈즈를 대치동 어느 모퉁이에서 보게 되었을 때, 직감적으로, 엇 저거슨! 어느 아울렛에서 샀을까? 올해 상품이 아닌 것 같은데? 저 색상은 마이너하며, 비인기 제품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갖는다. 그러니까, 신상이라 할지라도, 한국은 다수가 좋아하는 색깔이 있다. 그 색깔부터 재고가 빠진다. 나쁘게 말하면,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의 신상이 아니면, 어딘가 모르게, 가품인가? 하는 의혹까지 내 생각이 미쳐있다. 비슷한 물건을 사보지 못했는데도 그 느낌만은 선명하다.

“이 신상, 반응 괜찮나요?” 아니 점원한테, 남의 선택을 물어보는 내가 한심하면서도, 그러고 있는 나를 본다. 그러니까 나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 되도록 많은 이들이 똑같이 선호한다면, 내 취향이 꽤 쓸만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 쏠림에 대해 신뢰하고 안도하는 경향도 있으며.

어느 여름, 일본여행을 갔을 때였다. 오키나와에서 손꼽히게 인기있는 국수집 앞에 긴 줄을 서서 들었던 이야기로 기억한다. 일본 사람들의 대화가 나는 참으로 재밌었다.

“저 사람들, 한국 사람들이야. 여기 맛집인줄 알고, 줄 많이도 섰네.”
“한국 사람들인 거, 어떻게 알았어?”
“딱 보면 알지. 일단 선명한 색, 단색 옷 입은 사람들이 많잖아. 일본 사람들은 애매한 색의 옷으로 튀는 거 안 좋아하잖아. 거기다가, 한국에서 어떤 옷이 유행하는 지, 딱 봐도 알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슷하게 입어. 봐봐. 썬글라스도 모자도 다 비슷한 거 썼어. ”
“그러고 보니, 그러네!”
“카메라도 봐봐. 다 비슷한 거 들고 있는데, 카메라 가방 마저도 다 비슷하다구!”
나는 그 사람들 줄 뒤에 서있다가 나도 모르게 “나르호도! (정말! 역시나!)라는 감탄사를 해버리고 말았다. 엿듯다가 그만, 너무 동의가 되어서, 감탄사를 내뱉은 것이다. 한국인 앞에서 뒷담화 한 게 들킨 냥, 그들은 스미마셍 스미마셍! 예의 바르게 내게 사과의 고개를 숙였지만, 나는 그들의 통찰에 오히려 고개가 숙여졌다.

어쨌든 그 가죽가방은 올여름에도 인기를 더해, 다양한 디자인으로 출시됐음에도 불구, 내가 구입한 기본 스타일의 가방은 해가 바뀌면서 호가가 40만원에 달하게 되었다. 나는 27 만3000원에 당근에 내놓고서, 그 가방의 가치를 열심히 탐구했다. 처음에, 하트(내 가방에 관심을 표했다가, 내가 가격을 내리면, 하트 표시를 해놓은 사람들에게 가격 정보가 가게 돼 있다.)가 46개나 달렸다. 그런데, 팔리지는 않았다. 27만 1000원으로 가격을 내리니, 하트가 50개 달리긴 했지만, 사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은 없다. 조회수가 9000에 달하자, 택배비를 내주면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그렇지만 나는 거부한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 가방과 작별할 날이 올까봐, 열심히 들고 다닌다. 그런데, 몇 번 들다 보니, 역시나 좋았다 싫었다 한다. 그럴 때 나는 26만원으로 가격을 내린다. 그러면, 딜이 성사되어, 그 가방은 나보다 더 그 가방을 갖고 싶었던 사람에게로 가고, 내 통장에는 26만원의 새로운 돈이 꽂힌다. 시한부 사랑처럼, 나는 요즘 이렇게 덜 애정했던 나의 물건들과 헤어짐을 하고 있다. 대신 구매자는 다수가 드는 이 사랑스런 가방과의 애정을 다시 시작할 것이며.

요즘 내가 열심히 팔고있는 것 중에는 플리츠플리즈 브랜드 옷도 있다. 도쿄 공항 면세점에서 작년 여름, 18만원, 19만원에 구매한 반팔 검정색 탑과 딥그린의 긴팔 탑이 있었는데, 검정색이나 진한 쿨톤 컬러 옷이 내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다음부터는 거의 새 옷인 채로 옷장 한켠에 잠들어 있었다. 블랙은 어느 착장에도 가장 기본이라 소장해 두는 편이지만, 딥그린 컬러는 정말 집에서만 입고 그대로 보관만 해왔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강남 신세계백화점에서 현재 같은 제품이 35만 5000원 혹은 4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그 브랜드는 기본 디자인인 경우, 제품 자체를 적게 만들어, 금방 품절이 되곤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옷을 30만원 정도에 내놓았다가, 반응에 따라, 금액을 낮춰서, 결국은 판매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내가 더 선호하는 새 옷을 사는데 그 돈을 사용하거나, 내 옷장을 다이어트 하면서, 통장에 수입이 생겨 흐뭇해하며 마무리를 하게 된다. 옷장에서 자고있던 생물체를 밖으로 내보내어, 현금을 만들어,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이 더위에 힐링이 될 향이 좋은 샴푸 선물을 건네어도 더 좋을 일이며.

옷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깨끗하게 읽은 책이나 한 철에 겨우 한 두 번 입은 옷이나 구두를 되파는 일또한 흥미롭고 보람있다. 돈을 벌어 좋을 때가 많지만. 내가 꼭 필요하지 않음에도 다수의 선택이 궁금해 소비했던 것을 돌아보게 되며, 앞으로의 소비생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고,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과감하게 정리하며 생기는 공간의 자유함도 크다. 물건이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재미도 쏠쏠하며. 꼭 돈으로 쌓이지 않더라도, 낡은 거실 놀이 매트 3장을 버리면, 3천원을 심지어 지불해야 하지만, 내게 융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그 역시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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