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아서 5살부터 매년 한 두 번씩 동네 안과에 들려 시력 검사를 하곤 했다. 시력 검사를 할 때에는 기계에 눈을 붙이고 감빡이지 않고 기계를 들여다봐야 했는데 그 기계 안에는 들판에 놓인 빨간 집 그림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그 그림이 참 신비로우면서도 이상하게도 몇 초 동안만은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병원에서 벗어나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간 것만 같은 편안한 기분마저 들기도 했다. 스웨덴의 풍경이 딱 그런 느낌이다. 넓은 바다와 호수 끝없는 들판과 숲, 일정한 높이의 나무가 신비로우면서 조금은 지루하기도 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스웨덴의 자연에서의 가장 특별한 풍경은 Archipelago(군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스톡홀름은 Archipelago라고 부르는 3000개의 섬들이 이룬 도시이다. 스톡홀름 시내는 4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20분 정도만 차를 타고 외각으로 나가면 모양도 크기도 다양한 수 천 개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오늘은 스웨덴의 Archipelago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미술관 Artipelag미술관에 대해서 소개해보고 싶다.
섬 그리고 미술관
스웨덴에는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 정말 많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려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이 남아있다. 내가 사는 작은 대학도시 웁살라 안에서만 해도 17개의 박물관이 있고, 스톡홀름은 더 많은 수의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 있어서 할 일이 없을 때 갈만한 곳들이 굉장히 많다.
Artipelag는 자연과 문화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다. Art, Activities와 Archipelago를 합성해서 만들어진 이름만으로 예술과 활동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을 지향한다는 의도를 찾아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스톡홀름에는 3000개의 작은 섬들이 있다. 아래 왼쪽의 사진은 비행기에서 찍은 스톡홀름의 섬들이다. 스톡홀름의 메인 공항인 arlanda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도착 직전에 하늘에서 이렇게 작은 섬들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깨끗한 공기, 해변, 절벽 그리고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산 까지 있는 Artipelag는 스웨덴의 자연을 압축해서 담고 있는 곳이다. 특히나 이 미술관은 Archipelago에 자리 잡고 이라서 스웨덴의 군도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나는 운이 좋게 30도까지 올라갔던 날씨 좋은 여름날에 이 곳에 갔었는데, 사람들이 해변가에 앉아서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물에 들어가 수영도 하고 있었는데, 나도 너무 물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옷을 가져가지 않아서 아쉬웠다.
Artipelag 후문으로 나가면 800m가량 되는 나무로 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해변을 옆으로 두고 걷다 자연스럽게 산으로 향하게 된다. 걷다 보면 수심에 따라 서서히 바다색도 바뀌어가는 것도 볼 수 있고 요트 정류장도 구경할 수 있고, 스웨덴스러운 자연을 다 체험할 수 있다.
나는 블루베리를 너무 좋아해서 블루베리 나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 번은 이곳에서 블루베리를 발견하고 싶어서 땅만 보고 걷다가 블루베리도 발견하지 못하고 주변은 제대로 구경도 못한 채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다음에 갈 때에는 꼭 블루베리 시기에 맞춰서 가서 채칩도 하고 풍경도 제대로 다시 보고 싶다.
내가 갔을 때는 '블루밍스 버그 그룹'에 관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블루밍스 버그 그룹은 1906년부터 1930년까지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소설과 예술가의 모임으로 버지니아 울프, 덩컨 그랜트, 바네사 벨, 경제학자 존 케인즈 등이 가입된 사회 활동가 집단이다. 전시에는 이들의 그림 작품, 책뿐만 아니라 일상 사진, 생활했던 곳의 가구와 인테리어, 제작했던 의상 등등 다양한 전시품을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은 일상의 많은 것들을 함께 했기에 관계 또한 복잡했다. 전시 팸플릿에는 중심인물들의 소개와 더불어 인물 간의 관계도 설명이 되어있었는데, 연인 가족관계를 넘어 불륜과 동성애 등 다양한 관계들로 얽혀 있었고 전시관 중 한 곳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만든 영화 'Carrington'이 상영되고 있었다.
블루밍스 버그 그룹은 인테리어도 아름답게 가꾸면서 함께 살고 있었고, 그 당시 사용했던 물품들이나 인테리어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와 함께 Artipelag를 간 친구는 얼마 전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했는데 인테리어 전시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영감을 얻어서 테라스에 담장을 놓고 덩굴나무를 심어야겠다고 했다.
재미있는 점은 Artipelag는 음식을 하나의 Activities로 본다는 것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을 식사시간에 끼니를 때우는 것을 넘어서 미술관과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체험 요소로 만들었다. 식당의 어느 자리에 앉아도 창문을 통해 자연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또 실외의 테라스에 앉아서도 식사를 할 수 있는데 이 곳에서는 미술관의 건축물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는 카페테리아와 뷔페가 있는데 뷔페는 먹어보지 못했지만 경치도 좋아 보이고 음식도 맛있을 것 같아서 다음에 부모님이나 친구가 스웨덴에 방문한다면 꼭 같이 먹어보고 싶다. 나는 카페테리아에서 스웨덴식 샌드위치를 먹었다. 딱딱한 빵 위에 마요네즈를 뿌리고 엄청나게 많은 양의 새우들과 방울토마토가 올라가 있다. 양이 적을 것 같았지만 하나를 먹으니 배가 충분히 불렀고, 맛도 퀄리티 있는 신선한 맛이었다.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와 함께 먹으니 더욱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Artipelag는 자연과 건축의 조화, 음식과 전시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있고, 그곳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스웨덴스러운 미술관인 것 같다. 내가 스웨덴에서 얼마나 살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스웨덴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많이 그립고 생각나는 곳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