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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주 Feb 03. 2017

가지 못한 길은 존재하지 않는 길

영화 [라라랜드]

라라랜드를 본 지 한달 반쯤 지났는데, 페북에서 또 트위터에서 아직도 이따금씩 올라오는 감상을 읽으면서 영화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는 보고나면 누구나 자신의 지난 날 속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영화의 흥행 수준에 비해서 유난히 영화에 대한 감상을 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런 만큼, 사람마다 이 영화에서 제각각 다른 것을 읽어내고, 다른 장면을 인상적이었다고 꼽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렇게 제각각인 감상에서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꿈을 좇느라 엇갈릴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사랑을 되돌아보는 사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결국 꿈을 잡을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하는 사람.
아직은 미숙하지만 남다른 반짝임을 갖고 있는 누군가를 알아보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일에 대한 열정과 관계에의 헌신이 양립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읽는 사람.
역할이 주어지길 기다리는 대신, 하나의 판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경험의 힘을 이야기하는 사람.

사랑과 관계, 꿈과 열정, 일과 프로페셔널리즘. 

보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각각의 맥락이 그토록 다른 무게로 다가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사람이 다르다는 데 새삼 놀란다.


솔직히 나는 이 영화를 좀 무덤덤하게 봤다. 뮤지컬의 어법에 늘 어색함을 느끼는 편이라서 스토리에 몰입하기 전에 자꾸 웃음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 집중을 못하다가, 한 장면에서부터 갑자기 나만의 상념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라이언 고슬링이 집으로 돌아간 엠마 스톤을 찾아가 오디션을 보러 가라고 설득하는 장면이었다. 
희박한 확률을 좇기에는 자기의 꿈에 대체 어떤 실체가 있는지 더 이상 확신할 수 없게 된 엠마 스톤. 

그런 엠마 스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이게 바로 "그" 기회라고 손을 끌어당기는 라이언 고슬링. 


영화를 보는 우리는 엠마 스톤이 LA로 돌아가 오디션에 응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에서 저런 장면과 마주해도 같은 마음일 수 있을까. 연거푸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 수십 수백 번의 지난 오디션들과 바로 이번의 오디션이 다를 것이라는 증거가 현실에서는 결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의 상상이 스크린 위로 흘러갈 때, 나는 그 대신 "그때 LA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의 상상이 영화의 엔딩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리고 LA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인생이 꼭 나빴으리란 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는 한 가지 길밖에 테스트해볼 수 없고, 그 한 가지 길을 가지 못할 다른 길과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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