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일에 남기는 2016년 1월 23일의 일기
아니 사실은 바람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맑다
이런 날씨에 손님을 기다리는 것은 무어 가당키나 한가
온열기도 테이블도 다 내 중심으로 세팅하고
그간 밀린 독서의 날로 정하고
아 그 전의 오늘의 웹서핀.
아 그래 내가 이런 글 나중에 봐야지 저장해 뒀었지
아 이런 일들 있었구나
홍야홍야 살피다가
방치하고 잊고 있던 내 블로그에서 여름의 끝에 들었던 병철선배 부고에 부친 글을 읽는다
아..그래 이런 시기였어.
누군가가 떠나면서 그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이야기 (일리가 없으니까) 보다
내가 나한테 하는 당부 같은 것.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죽음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어디선가 보고 듣고 읽은 적 있는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나도 모르게 겉 멋든 중2병처럼 무언가 미사여구를 보태어
스스로 생각을 치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냥 내 생활은 그대로이고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는
보통의 나날들이니까.
그래 그 여름에 선배의 장례이후 나는 그 영향을 받아 열심히 살았을까
오히려 허망함 앞에 무기력하게 마음 추스리지 못했지
게다가 새 가게의 첫 가을, 비수기를 겪으며
그 허망함은 배가되어 상당히 힘든 9-11월을 지나왔다
모두가 즐겁고 흥 넘치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듣게 된 재운씨의 의식불명 소식은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운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건강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모든 근육이 풀어진 상태로 누워있는 그를 보러 갔을 때
사실 나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전 부고로 그가 진짜 떠나갔다 소식을 들었다.
장례에는 가지 않았다.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친구들 조언을 받았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병철 선배와는 달라서, 그의 장례는 슬픔 말고도 더 -한 더께가 있는 듯 보였다.
영화 축제에서
사람이 나이 들어 죽어가는 것은 나이를 나누고 삶의 지혜를 덜어주다
그 모든 것이 끝나면 새 아기로 태어나기 위해 영원한 곳으로 떠난다고 했지.
그렇다면 갑자기 생을 마친 이들의 못 다 채운 나이와
미완의 지혜는 어디 나눌 곳도 없이 사라지고 말아야 할까
물론 그를 기억하고 그의 못다 한 생을 기리며 더욱 열심히 살아갈
주변 사람들에게 그 몫이 나누어진다고도 생각은 들지만
그 “찬란할” 미래를 대신할 수 없다.
나는 그와 깊은 친분은 없지만
한 번 만나 밥 한 끼를 못 먹은 것이 너무나도 미안타
내 가게에 불러 돈을 안 받든지, 바가지를 씌웠든지 뭐든지 했어야 했다.
더 많이 농담을 나누고, 서로를 '까면서' 더 막역했어야 했다.
올 여름 쯤이면 그의 와이프와도 꽤 안면식이 늘어
함께 만나 밥 먹는 일이 즐거울 것만 같았다.
지난 가을
내 짧게 가게 비운 그 사이
그가 두고 간 서귀포 명물 케이크 두 조각을
그저 맛있게 먹었어야 했다.
그 누구라도 ‘지인’으로 알고 지낸다면
친구가 될 때까지 호기심도 가지고 설레임도 가지고
다음에 만나서 뭐라도 같이 먹고 같이 놀자고 기대하기 마련일텐데
그 이상을 넘기 전에 친구의 친구로 그저 아는 사람으로 남아버린 것이
유난히도 그에게는 미안하다.
날씨는 여전히 눈이 날리고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이 부시게 맑고 밤처럼 어둡다
앞으로 서귀포에서 또 이만큼 눈을 볼 수 있을까 싶었던
며칠 전의 설경이 또 펼쳐지려나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올해 지인의 부고와 함께 시작한 마음처럼 심란하게 맑고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