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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델루나와 존재와 시간

- 하이데거가 달의 객잔에 왔다면?

by 모현주



열심히 보던 드라마 "호텔 델루나"가 어제로서 종영되었다. 주말에 못봐서 이제야 다시 보기로 보긴 했지만 너무 어두워지지 않을까 라는 우려를 다행히 잠재우고 결말을 잘 맺은 것 같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왜 자꾸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이라는 책이 등장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에서까지 장만월 (아이유)을 저승으로 잘 마중해 준 구찬성 (여진구) 이 공원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 드디어 기억해 낸, 1300년 전 만월이와 처음 만나고 달의 객잔을 그녀에게 알려줬던 것처럼 그녀를 또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실존이라는 것은 어떤 텅 빈 개념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보기에 긍정적으로 채워 넣은 것이라는 의견을 내어 당시 철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사실 그의 실존 개념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기독교적이면서도 윤회 등 동양 사상과도 연결되기도 하다. 물론 개인의 관점이 조금 강조된다는 것은 그 당시 전통/주류적 입장과는 좀 달랐을 테지만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던 하이데거는 히틀러의 나치 탄압에 열렬히 동조하고 반유대주의를 실천한 것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증거들도 많아서 완전히 부정하기는 힘들 것 같다.

사실 하이데거의 사상은 읽기에는 굉장히 난해하다고 하지만 중심 아이디어를 자세히 보다 보면 그리 새로울 것이 없기도 하다 (그만큼 그 당시 철학이 나 신학이 삶과 유리되어 있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절대 동의하지 않으려 했겠지만, 지금의 긍정 심리학과도 연결성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호텔 델루나는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버린, 죽음을 맞이해버린 이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를 해소할 때까지 달의 객잔에 머무르거나 원한에 가득 차 악귀가 되기도 한다. 죽음의 영역을 관장하는 마고신과 사신, 그리고 달의 객잔은 최대한 이들이 긍정적으로 자신들의 생을 마무리 할 추가적인 시간 혹은 기회를 선사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수되었을 때 꽃 한송이와 함께 저승으로 인도된다.

호텔 델루나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문득 하이데거가 달의 객잔에 머무른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사상에 동조했던 이들에게 많은 배신감을 안겨주고, 유태인들에게 원한을 샀을텐데. 그리고 작가님이 하이데거의 팬이라면 이 드라마는 하이데거에게 픽션 방식의 선물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하이데거와 아렌트를 구찬성과 장만월에 대비시켜보니 좀 많이 이상하긴 하지만 말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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