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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현주 Sep 07. 2019

"공감의 배신"

- 공감에 대한 문제제기



흔히 공감이나 감정이입은 선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더 나아가 도덕적 행위에 공감이 아주 중요하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심리학자인 폴 블룸은 이러한 견해에 명백히 반대하며 "공감에 반대해야 한다"고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사실 책 제목을 보고 좀 반가웠던 것은 언젠가부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다. 공감이 꼭 선하다고 할 수도 없으며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타인의 상황이나 감정을 섣불리 안다고 생각하며 지나치게 감정 이입할 때도 많다. 이는 사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 일으킬 때가 많다.

그가 공감이 가장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도덕이나 윤리에 필수적이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도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선한 인간은 공감을 잘하고, 사이코패스는 공감을 못한다는 세간의 견해는 절대 정확한 것이 아니다. 공감이 꼭 선한 행위의 동기가 되지도 않고, 공감의 부재가 꼭 악한 행위의 이유가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감정 이입이 잘 되는 특정 대상에 대한 공감보다는 보다 폭넓게 적용 가능한, (예컨대 우리는 다 같은 인간들이라는 등의) 연민 의식이 도덕적 행위에 더 연결될 때가 많다. 또한 사기꾼이나 사이코패스는 타인을 매우 잘 파악하며 인지적 공감 능력이 상당히 뛰어날 때가 많다. 그가 부족한 것은 오히려 기본적 연민 의식, 혹은 충동을 누르는 자제력이라는 것이다.

여러모로 흥미롭고 관심 가는 의견들이나 예시들이 많이 제시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의 의견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는 폴 블룸의 지나친 감정과 이성의 이분법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공감을 지나치게 감정의 영역에 놓고, 자제력과 같은 것은 이성의 영역에 한정한다. 그러나 생각과 감정은 그렇게 칼로 자르듯 명쾌하게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그에 따르면 분노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에 속하는데 과연 그럴까. 분노는 내게 해를 끼치는 것에 대한 반대 표현이다. 혐오 같은 감정도 사실은 매우 명확한 차별적 계산/인지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하는 공감이 무조건 선하다는 식의 생각이 위험하다는 데는 나도 정말 공감하는 바이다. 예컨대 폴 블룸과는 달리 감정과 생각이 그렇게 분리되지 않는다고 볼 때에 있어서도, 특정 대상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는 것 자체로 건강하게, 옳게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시 감정에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책들은 이해하기가 쉬운 편이 아니다. 그래도 이 "공감의 배신"은 마사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에 비하면 훨씬 쉽게 읽을수 있는 대중서에 속한다. 감정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들이 계속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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