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 3일째
대청소 삼일 째. 서재에서 멀리 강 풍경이 보이는 게 신기하다. (오늘 베란다를 치우면서 걸려 있던 이불들을 다 치웠다)
오늘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8시 전화
9~10 옷방
옷 / 가방
이부자리
수납장 / 양말통
1030~12
베란다 (30분)
세탁 용품
수납장
발코니
신발장 (1시간)
신발
수납장 옆
수납장
12~1 점심
12시 당근 픽업
1~3 미술 및 아트 용품 / 필기도구 1
영수증 (2시간)
3~5PM 일지 쓰기/브런치
5~6 저녁
6~1030 세미나 어시스팅
어제 새벽 두 시 쯤 자고 7시 50분쯤에 일어났다. 8시에 전화가 있어서 분명 10분 전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도대체 누가 매너 없이 알람을 맞춰 놨냐는 식으로 일어났다. 아침의 나는 내가 아니다;;
전화의 마지막에 대청소를 하고 있고 어제 공책을 버리면서 느꼈던 감정을 나눴다. 피드백을 받기로 ‘내 삶을 내가 선택한다’를 얻어보라고 하셨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지금 한 선택을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선택한 것에는 100% 내가 책임으로 존재한다. 순간 순간의 선택이 나를 만든다. 내 삶의 모든 선택이 100 % 나의 책임이고 원인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어떤 삶과 미래를 살고 싶은 지 생각했을 때, 내가 바라는 나는 미래를 위해 도약하는 나이다. 미래의 나는 앞으로 가는 길이 걸림이 없어 가볍고 경쾌하다.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고 매 순간 순간에 깨어서 온전히 모든 것을 느낀다. 무엇이 필요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없어도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사랑을 느낀다.
전화를 하고 아침을 준비하며 오늘 청소를 시작할 옷방으로 들어갔다. 옷방에는 지난주까지 시차 적응을 하며 잠 못 이루던 나 때문에 펴 놓았던 이부자리가 그대로 있었다. 이번 주 옷방을 신경 쓰지도 못할 정도로 집중했구나, 하며 들어가 이불을 개고 물건을 분류할 공간을 만들었다. 이불을 개면서 옷 방 구석에 있던 물티슈와 진공 포장 식량이 각각 한 상자씩 보였다. 파트너의 캠핑 용품. 아무리 보이지 않는 공간에 있지만, 안되겠다 싶어 상자를 부엌으로 꺼냈다. 어제 부엌 수납장에 거대한 두 상자가 들어갈만한 공간이 있는 걸 봤다. 그 앞에 물티슈와 식량 상자를 놓았다.
어젯밤에 나온 쓰레기들을 신발장 근처에 쌓아놓았는데 보는 것만으로 답답했다. 욕심을 부려 두 번에 갔다 와야 할 양을 한 번에 가져 가느라 쓰레기가 넘어지고 다시 줍고를 반복했고 음식물 쓰레기, 일반 쓰레기 50 리터 (이건 내가 청소를 해서 나온 게 아니다. 원래 있던 쓰레기를 비워야 했다), 종이 박스 두 상자에 가득 채운 종이, 플라스틱과 고철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나갔다. 낑낑대며 나갔다 오긴 했지만, 현관문의 한쪽을 차지했던 쓰레기가 사라지니 후련했다. 물론 어제 나온 버릴 물건 중 중고로 팔거나 기부하려는 목적으로 한 구석에 왕창 쌓아 놓은 게 아직 있긴 하다.
9~10 옷방
옷 / 가방
이부자리
수납장 / 양말통
바로 손 씻고 앉아서 아침을 먹고 옷 방 청소를 시작했다. 옷을 눈으로 보고 있자니, 무엇을 버릴지 별 감흥이 오지 않기에 옷걸이에 걸린 것과 서랍에 있는 옷들을 모두 바닥 한 쪽에 내려놓았다. 옷 속에 숨겨 있던 스웨터도 찾고 (영국 가기 전에 가지고 가려고 찾았었다! 결국 못 찾고 갔지만…) 그리고 하나하나 만져가며 거울에 비춰가며 옷을 골랐다.
영국에서 막 돌아왔을 때 나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상기하면서 분류했다. 과감할 때는 과감했고 고민할 때는 ‘중요한 건 고민하지 않는다’를 기억하며 분류하려고 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옷은 좋아한다는 게 분명해서 바로 골랐는데, 정말 자주 입지만 보풀이 올라온 일명 내 유니폼 스웨터, 좋아하진 않지만, 필요한 기본 티들은 어떻게 할 지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고 (분명히 버린다면 같은 색으로 비슷한 디자인으로 살 텐데 말이다) 이번에 런던에서 한 캐리어 가득 가져온 옷들 중 아직 입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할 지 고민했다.
가장 좋은 건 입어보기. 아무리 괜찮아 보이는 옷이라도 입어보면 바로 아닌 게 느껴져서 런던에서 기부하고 온 옷들이 있었다. 멀쩡하고 괜찮은 옷 중에서도 20대의 내가 된 것 같아서 1초만에 가지고 있지 않기를 결정한 옷도 있었고 한때 엄청 쓰고 다녔던 베레모도 한 번 써보니, 바로 아닌 게 느껴져서 벗었다. 엄마에게 선물 받은 옷의 경우는 좀 달랐다. 잘 입지 않고 완전히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지만, 가지고 있으면서 입는 것들이 있었다. 이렇게 적고 나니 버리는 게 맞는 거라는 걸 다시 깨닫는다.
옷 방에 미술용품과 필기구가 있는 상자가 있어, 서재로 따로 빼놓고 (오늘 오후에 서재에 있는 미술용품과 필기구를 청소할 예정이었다) 약속한 한 시간이 돼, 베란다로 나가, 일단 빨래 걸이에 걸려있던 이불을 내려왔다. 나는 파트너에게 영국에서 가져온 이불 커버를 건넸고 그는 이불을 커버 속에 넣는 작업을 했다. 베란다에는 딱히 세탁 용품과 파트너의 텐트 관리 약품, 택배 상자를 제외하고는 물건이 없었다. 베란다에 있는 모든 택배 상자까지 치우고 수납장을 여니, 거기도 상자가 있었다.
택배 상자가 필요한 일이 있어 택배 상자를 일부 모아 놓는다. 대강 치우고 나니 약 10분? 15분정도 지났을까? 그만할까, 다음 장소인 신발장으로 넘어갈까 생각하다가 이왕 하는 거 정말 다시는 하지 않아도 되게 하자며 수납장 안, 쌓아 놓은 택배 상자까지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하자고 다짐했다. 상자를 다 꺼내, 그 중에서도 전혀 사용할 것 같지 않은 상자를 따로 떼 버렸다. 이사 올 때부터 있던 나만한 연식의 소화기도 버리자고 꺼냈다. 그리고 상자를 정리해 수납장을 열면 상자가 크기 별로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했다. 예정됐던 30분이 끝나고 나니 10시 30분이었다.
어라? 베란다가 끝나면 11시여야 하는데? 알고보니 옷방과 베란다 청소 사이에 30분의 쉬는 시간을 두었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이 여세를 몰아 바로 신발장 청소로 옮겨갔다.
신발장 (1시간)
신발
수납장 옆
수납장
신발장 구역도 옷 방과 마찬가지로 수납장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 한쪽으로 모았다. 작은 공간이지만, 물건이 꽤 많았다. 상비약, 마스크, 작은 수납 가방, 장바구니, 우산, 화장품, 택배 용품, 지로용지, 악세사리 등. 상비약은 부엌 수납장으로 옮기고 기쁨을 주지 않는 가방을 골라내고 쓰지 않는 화장품도 골라내고 귀걸이와 악세사리를 하나하나 살폈다. 버리고 싶은 만큼은 버리지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정리하고 나니 11시 30분이었다.
12~1 점심
12시 당근 픽업
아까 쉬지 않은 30분을 지금 쉬기로 했다. 12시에 당근 픽업이 있었고 파트너와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그는 오늘 인플루언서 백패커와 함께 백패킹을 간다. 이참에 오후에 할 미술/아트용품/필기도구/영수증 한 곳에 모아야겠다고 싶어서 모았다.
점심을 나가서 먹기로 했고 1시간 안에 먹고 들어오는 게 어려울 것 같아 1시 30분까지 30분을 추가로 점심 시간에 쓰기로 결정했다. 그 후 그대로 2시간동안 미술/아트용품/필기도구/영수증을 처리하고 30분 줄여 1.5시간동안 일지와 브런치를 쓰고! 펼쳐 놓으면서 벌써 무엇을 버려야 할지가 보였다. 어제는 버릴 게 없어보였는데 이제는 잘 보여서 좀 뿌듯했다.
아까 옷 방에서 찾았던 것 외에도 아직 건들지 않았던 전자기기/은행 및 여행 용품도 추가했다.
점심 시간이 짧으니 12시 정각에 만나자고 당근 픽업하시는 분께 신신당부를 했기에 5분 전에 나가, 도착하면 연락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얼마나 걸리는 지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당근: ooo쪽인데 시간을 못 맞출듯 합니다.
나 (응? ooo라고요? 여긴 ㅁㅁ인데??) 지금 ooo세요?
당근: ooo에서 가고 있어요.
나는 그럼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테니 언제 도착할지 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음식점으로 이동. 파트너는 점심을 후다닥 먹고 약속 장소로 가야한다고 했고 나도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한 시 전에는 올 수 있는지 물었다.
문자를 바로 읽었지만 그는 답이 없었다.
생각보다 밥이 빨리 나왔고 나와 파트너 모두 빨리 먹어, 20분도 안되는 시간 안에 이동 + 식사를 완료했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빨랐다! 중간중간에도 길이 엇갈릴까봐 내가 어디 있는지, 밥을 먹고 이동하니 원래 약속 장소에서 보자는 둥, 도착 시간을 알려줘야 맞춰서 나가겠다는 말을 했다. 한편으로는 만약 이 사람이 1시 이후에 오면 거래를 못하겠다고 결심했다.
집에 돌아오니 12시 50분쯤. 1시 시작 되기 전, 시간 맞춰 돌아왔다. 당근에 전화 기능이 있어 누르니 “상대방이 차단하여 전화할 수 없습니다”라는 알람이 뜨더라. 전화 기능은 처음 사용해봐, 여러 번 누른 끝에 문자를 보냈다. 문자가 전송되지 않고 같은 알람이 떴다.
헐! 차단 당했다!
기다린 건 나고 오고 있다는 사람은 그인데 왜 내가 차단을 당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못 오면 못 온다고 하거나 상황을 말하면 되는 데 그게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도 솔직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나로서는 이해는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굳이 너무 어렵게 산다고 느꼈다)
밥을 먹으면서도 사실 당근 픽업이 신경이 쓰였는데 이래서 버리는 게 생각할 게 없고 심플할 거라고 했는지 몸으로 깨달았다. 하루빨리 비운다 (해치운다) 의 목표에서 보면 그냥 버리는 게 가장 쉽고 간단할 것 같았다. 생각할 거리도 없고. (“안돼”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는 한다)
1~3 미술 및 아트 용품 / 필기도구 1 /영수증 (2시간)
오후에 청소하면서 들을 것을 찾다가 영국에 있을 때 듣지 못한 영국 에이전시와 작가의 출판 인터뷰를 켰고 청소가 아닌 인터뷰를 듣는 것에 집중하는 게 느껴지면서 음악을 듣기로 마음을 바꿨다. 무슨 음악을 들을까 하다가 Natalia Lafourcade가 떠올랐고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멕시코 음악이라고 치니 바로 나왔다. Los Angeles Azules의 Nunca es suficiente 를 들었다. 듣고 있으니 조만간 멕시코나 라틴 아메리카를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76BgIb89-s&ab_channel=LosAngelesAzulesVEVO
노래 정말 좋다. 흥에 겨워 춤추면서 치웠다.
이로써 물리적인 청소는 끝이 났는데
추가로 발견된 엽서/스티커 상자를 처리하느랴 영수증 파일은 완전 잊어버렸고, 파일철 하나, 편지와 추억이 담긴 작은 상자 하나, 공책 한 상자가 추가로 발견 되었다!!!!!
오늘은 정리가 아닌 버리기에 집중을 해서 폭탄 맞은 집 같다. 물건이 별로 없다, 했는데 아니였다. 괜찮다고 놓아둔 것들이 쌓여 눈덩이가 되었다.
3~5PM 일지 쓰기/브런치
노트북이 중간에 애러가 났다. 노트북도 외장하드들도 얼른 청소해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오늘 1030쯤 일정이 끝나면 내가 있는 공간을 좀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아니다, 아직 열지 않은 상자들을 치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