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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공장 Oct 24. 2024

스위스에서 수영하기

탈의실부터 수영하는 모습까지 모든 게 문화 충격이었던

본격적으로 수영장에 간 지 횟수로 두 달째가 됐다. 사실 오늘 다시 두 번째 달 회원권을 끊었고 지난주 초에는 하루권을 끊어서 갔으니 정확히는 약 5주 정도 갔다고 하면 될 것 같다. 매주 두 번, 수영장에 가려고 한다. 수영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많다. 발목이 좋지 않았고 장시간 컴퓨터 앞에서 하는 업무에 어깨와 팔이 저리기 시작했고 몇 년 만에 하는 풀타임 직업에 저질 체력을 최대로 느끼고 있었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느끼던 찰나 한 동료가 점심을 먹으면서 자신은 수영을 다닌다고 했다. 직장에서 굉장히 가깝고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에 사무실로 돌아와 가장 먼저 구글 지도에 수영장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가 나왔고 그중에 동료가 말해준 것으로 보이는 유력한 후보가 있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자전거로 약 10분 거리. 모든 것이 비싼 스위스 물가에 혹시나 하며 입장료를 검색해 봤는데 한 달 입장료는 약 한 끼 식사 정도였다. 안 가 볼 이유가 없었다. 다만 가을의 초입을 맞아 대청소가 있을 예정이고 바로 다음 주부터 일주일 동안 수영장이 닫는다고 했다. 생각난 김에 바로 수영장을 가고 싶긴 했지만 동시에 수영 모자도 준비해야 하고 한 달 입장료를 낼 걸 생각한다면 대청소 기간 이후부터 등록해야겠다고 당장 운동을 시작하지 않을 합리적인 이유를 나 자신에게 제시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등록은 안 하겠지만 한 번 수영장에 가보자는 마음으로 혹시 몰라 수영복을 챙겨 출근을 했다. 그냥 한 번 가보기만 할 건데... 뭐.. 하는 마음으로 점심시간에 자전거를 끌고 수영장에 갔다. 


카운터에 가서 인터넷으로 알아본 금액이 맞는지 그냥 묻기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대청소는 다른 지점에만 해당되지 내가 간 수영장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 수영 모자 없는데.." 


마음속 큰 부분에는 수영을 하고 싶지 않은.. 운동을 하고 싶지 않은 나의 진심이 튀어나왔달까.


"수영 모자 없어도 돼."

"응? 수영 모자 없는데  수영할 수 있어?"

"응!"


더 이상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딱 30분만 수영하고 가자는 마음으로 나를 달래며 회원가입과 한 달 결제를 하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여러 나라에 살아봤지만 생각해 보면 한국이 아닌 곳의 실내 수영장을 간 건 스위스가 처음이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입구부터 문화 충격이었다. 


계단으로 내려가면 정면에는 기다란 세면대와 양쪽으로 여자들이 사용하는 공간과 남자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나뉜다. 작은 칸으로 나뉜 여자들의 탈의실과 남자들의 탈의실 문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양팔을 쭉 뻗은 크기의 각각의 탈의실 칸의 양쪽은 잠금장치가 없는 문으로 되어 있다. 문이 닫혀 있으면 굳이 몸을 숙여 발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가면 정면에는 잠금장치가 없는 락커와 왼쪽에는 수영장이 그대로 보인다. 


한국의 수영장에는 탈의실/락커/샤워실/화장실이 있는 곳에서 수영장에 가기까지 여러 개의 칸막이 혹은 보이지 않는 블라인드로 나름의 맨몸 보호 장치가 있지만 내가 간 스위스의 수영장은 입구부터 탈의실, 수영장까지 굉장히 뚫려있는 구조였다. 락커를 둘러보고 있는데 남자 직원이 지나다니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자판기에서 자물쇠를 따로 살 수 있었는데 스위스 물가가 그렇지.. 문구사에서 5천 원이면 사고도 남을 자물쇠는 하나에 약 만 오천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효율주의자로서 집 어딘가에 있을 자물쇠를 단지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고 싶진 않았다. 모든 걸 가방에 꾸겨넣었다.


샤워실도 놀랄 노자였다. 맨 안쪽 두 칸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오픈되어 있었다. (마지막 두 칸은 안 보이게 처리되어 있었다) 지나가다가 쉽게 샤워하는 사람들이 보일 것 같았다. 한국도 굉장히 오픈되어 있지만, 한국과는 다르다. 앞서 말한 대로 한국은 탈의실과 샤워실 자체가 수영장과 일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과 분리되어 있지만, 여기는 수영장에서 나가는 곳까지 한눈에 보기 좋게 열린 공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탈의실 한쪽 벽면에는 수영복을 벗고 씻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여 있었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또 문화 충격. 


발이 닿지 않는다. 수영장의 깊이가 2.9미터라고 적혀있다. 웬만한 수영은 할 줄 알고 또 트랙이 말도 안 되게 긴 게 아니라서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설마 죽기야 하겠어?!)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는 건 큰 두려움으로 작용했다. 일부러 맨 가장자리에서 안전하게 있었다.


또 문화 충격이었던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명 '개구리헤엄'이라는 평형으로 수영을 했다. 그중에는 화장을 지우지 않고 귀걸이도 하고 있고 머리에 물 한 방울 묻지 않은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더 놀라운 건 다들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수영했다. 운동을 꽤 오랫동안 쉬었던 나는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수영하면 적어도 1~2분은 헉헉대고 벽을 잡고 매달려 있어야 했다. 옆에서 유유자적 고개를 내밀고 떠다니며 쉬지 않고 트랙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살겠다는 의지로 수영하는 나와 여유로 가득한 다른 이들을 끊임없이 비교했다.


30분만 하고 갈 건데 30분은 어찌나 긴지. 야외 수영장도 있다고 되어 있어서 움직이는 시간으로 시간을 죽여볼 겸 야외에도 나가봤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기후 이변이었던 기나긴 여름이 정말 끝나고 가을이 시작된 게 느껴졌다. 야외 수영장도 작지 않았다. 6-8 개의 트랙이 있을까? 길이는 실내보다는 짧았지만 충분했다. 전체 트랙에 수영하고 있는 사람은 총 3명. 한 트랙을 나 혼자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익사하지 않으려 맨 가장자리에 수영하러 들어갔다. 정신이 번쩍 나는 차가운 물. 정말 가을이 왔다는 게 느껴졌다. 실내보다는 얕았지만 아직도 바닥에 발이 닿진 않았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해도 몸에 난 닭살이 사라지지 않았다. 수영하는 와중에도 계속 시간을 체크했다. 그리고 몇 시간 같았던 30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물에서 나왔다.


바람은 불고. 몸은 젖었고. 닭살이 굵게 올라왔다. 생각해 보니 샴푸와 바디워시는 챙겼지만 수건을 가져오지 않았다. 이런. 옷으로 닦아야지. 그렇게 수영한 것보다 헉헉대고 쉬는 시간이 더 많았던 첫 수영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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