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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공장 Jun 30. 2022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의 이름과 성별이 바뀌었습니다

최근 친구와 얘기하다가 둘 다 알고 있는 친구가 성별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에서 여자로. 



성별을 바꾼 친구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국가 출신으로 그동안 자신을 게이로 알고 있었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몰랐던 친구도 아니었지만 한참을 맞는지 아닌지 고민하다가 바꿨다는 말을 들었다. 



반 정도 쓴 소설이 있는데 한 캐릭터가 트랜스 젠더라 관련해서 트랜스 젠더인 사람들을 여럿 인터뷰하고 그들이 겪는 이슈를 알아보기 위해 자료를 찾아봤었다. 



기억에 남았던 건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자신의 정체성을 쉽게 찾았던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거의 20년이 걸렸던 사람도 있었다. 굉장히 개방적인 부모 밑에서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문화권에서 태어났는 데도 그렇다. 



내 성별을 아는 게 그렇게나 어렵고 오래 걸릴 일인가? 내 정체성과 관련된 것인데 그걸 헷갈려한다고? 처음 인터뷰하며 의문을 가졌던 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얼마나 나에게 호의적인 사회에서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생물학적 성과 내가 느끼는 성이 일치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별과 사회가 그동안 허용해온 성별이 일치했고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살면서 인종 문제도 거의 겪지 못했다. 의사전달에 불편함이 없고 몸도 건강하다.  즉, 별로 어려움을 겪을 필요가 없는 나에게 호의적인 환경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살면서 다양한 차별을 겪긴 했지만 미미했다.



우리가 내가 좋아하는 걸 찾고 잘하는 걸 찾는데 몇십 년씩 걸리듯이 어떤 사람들은 성별에 관한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갖기까지 몇십 년이 걸리기도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별에 관한 경험을 할 기회가 많이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



대학교에서 굳이 젠더 수업을 찾아 듣기 전까지 젠더에 관해 생각해볼 경험이 없었다. 그나마도 주로 페미니즘과 여성에 관한 수업이었다. 유럽의 개방적인 국가로 교환학생을 가고 이후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젠더 문제를 몸소 경험하거나 인지하고 변화를 만들려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됐다. 그때도 기껏해야 젠더 하면 여성 인권과 LGB, 퀴어, 논바이너리, asexual의 이슈를 경험했을까. 그동안 트랜스젠더에 관한 경험은 전무했다. 한 책을 쓰기 전까지는. 



우연하게 트랜스 젠더인 캐릭터를 넣으면서 내가 모르는 세상을 이해해야 했다. 아주 사소한 지칭 문제부터 화장실 문제, 자살률, 폭력이 발생하는 빈도라는 사회문제까지 다양하게 접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알고 있었지만 무의식, 의식적으로 무시했던 트랜스 젠더와 성별에 관한 정보가 튀어나왔다. 



몇 년 전 꽤나 유명했던 영화도 트랜스 젠더를 다룬 것이고 그 당시 내가 좋아했던 넷플렉스 드라마 캐릭터도 트랜스 젠더, 친구가 좋아하던 당시 세계 1위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트랜스 젠더였다. 내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트랜스 젠더 이슈가 많았다. 성별을 바꾸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단체들을 지나가면서 왠지 모르게 불쾌했지만 내 일 아니기에 그냥 지나갔던 것도 기억해냈다.



남자였던 자신이 처음 전통적인 성 역할을 부인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던 인터뷰이는 그 당시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히피 그룹에 들어갔다고 했다. 나는 남자이지만 여성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과 맞지 않는 걸 느껴 불편했다고 했다. 그 후 자신이 게이인 줄 알아 게이 그룹에 들어갔다고 했다. 거기도 불편해 나왔다고 했다. 정말 우연하게 트랜스 그룹에 들어가 자신이 그동안 의문을 갖고 고민하던 것들이 한순간에 풀리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 후 인터뷰이는 바로 성별을 바꿨다고 했다. 많이 돌아가긴 했지만 다행히 가족들과 친구들의 지지가 있어 트랜지션의 과정이 어렵지 않았다고,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 고생하고 심지어 삶을 마감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했다. (인터뷰이는 너무나 담담하게 말했고 오히려 내가 더 불편했다.)



아직 어느 문화에서도 젠더에 관한 논의는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의 힘이 강한데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젠더, 특히 트랜스 젠더에 관한 얘기는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LGBTQ* 중에서도 LGBQ와 달리 트랜스 그룹은 성 선호도가 아닌 성 정체성에 관한 이슈다. 인터뷰를 했던 한 트랜스 여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LGBQ 그룹에 들어갔던 적이 있는데 왠지 모를 소외감과 이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LGBTQ  (요즘은 LGBTQIA2S+까지 세분화되긴 했지만 여기선 좀 간소화했다.)

Lesbian 레즈비언, 여성 동성애자;
Gay 게이, 남성 혹은 여성도 포함한 일반적인 동성애자;
Bisexual 양성애자;
Transgender 트랜스젠더, 출생 성별과 자신이 느끼는 혹은 표현하는 성별이 다를 경우 (반대의 경우는 시스 젠더라고 부른다); 
Queer 퀴어 (요즘은 Queer and questioning이라 부르기도 하며 성 선호도와 성 정체성을 포함하기도 한다.) 

(혹시나 용어나 뜻에 문제가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몇 주 전 한 도시를 방문했을 때 두 명의 어른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 걸 봤다. 

“아이의 출생 인권을 보호해주세요.” 

그리고는 트랜스 젠더를 반대한다고 적혀있었다. 



출생 인권을 존중하라고? 그럼 트랜스 젠더를 당연히 옹호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해 그 근처를 서성였다. 옆에 있던 친구가 해석해주기로는 출생 인권을 ‘보호’ 한다는 차원에서 출생 시의 성별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라고 했다. 차별을, 인권을 이런 식으로 풀어나간다는 그들의 논리에 화가 났다. 인권을 정말 제대로 이해했다면 사랑받을 권리, 내가 나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을 걸고 싶었다. 도대체 뭘 알고 저렇게 주장하는 건지. 무슨 생각과 논리인 건지. 오히려 사회적으로 소수인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는 게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저지하고 싶었다. 결국 친구의 반대로 그냥 지나쳐가야 했지만 다시 돌아가서 물어보고 싶다.



트랜스 젠더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출생 성별을 나중에 아이 본인이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 동의하게 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성별에 대해 간섭할 수 없고 부모의 동의 없이 4살부터 성별을 법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한다. 성별에 관해 학교에서 배운다고 했다. 이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젠더에 관해 좀 더 배우고 싶다면 누구에게 듣고 배우고 얘기를 나눠야 할까? 



멕시코의 서울대라고 할 수 있는 UNAM에서는 LGBTQ 그룹이 젠더에 관해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쉽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페미니스트들로 시작된 그룹이 LGBTQ로 확산되면서 학교에 대대적으로 정책을 바꿔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한 것.



내가 UNAM에 있었던 19/20년에도 대대적으로 페미니즘 시위가 일어났다. 한 여학생을 스토킹 하던 교수가 결국 그녀를 강간했고 다른 교수진과 학교는 그 교수를 감싸려고 했다. 결국 학생들의 손으로 사건이 처음 일어난 단과대학은 수업이 중단됐고 다른 단과대로 시위는 번져갔다. 당시 멕시코에 퍼져있던 페미니즘 시위와 같이 겹쳐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랬었는데 이젠 성소수자 그룹이 젠더에 관해 수업을 한다.



젠더에 관해서는 아직 나아갈 길이 멀다. 그건 한국도 그렇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계속 목소리를 내서 서로 얘기하고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게.. 결국은 내가 최대한 나다울 수 있게,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출생 인권'을 보호해달라는 피켓을 보고 화가 났던 건 만약 그 피켓을 트랜스 젠더였던 사람이 봤다면, 그 옆을 지나가게 된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찔함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트랜스 젠더의 평균 수명은 시스 젠더에 비해 현저히 낮다. 자살, 혐오 폭력 등으로 인한 아르헨티나의 트랜스 젠더 평균 수명은 30-32세라고 하니 누군가의 피켓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쉬운 방법은 관심이다. 잘 모르니까, 나랑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니까 무심코 넘어갔던 것들을 한 번 되돌아보자. LGBTQ 지인이 있더라도 그들에게 묻기보단 (꽤나 무례한 질문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일단 직접 찾아서 공부해보자!



그동안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젠더 이슈에 관해 영화든 책이든 유튜브든 좋으니까 간접 경험을 해보는 저녁 보내면 어떨까? 



Photo by Mateus Campos Felip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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