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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Oct 05. 2023

카페에서 안 생긴 일

안생겨요

 카페에서 생긴 일이라면 다양하다. 카페에서 알바가 잘 생긴 일, 카페에서 알바가 좀 생긴 일, 카페에서 알바로 돈 생긴 일, 카페에서 공부로 지식 생긴 일, 카페 구석에서 여행 계획이 생긴 일, 커피 마시고 기운이 생긴 일, “이 근처 미술학원 어디 있는지 아세요?”로 시작해서 2시간 동안 사이비에 반감 생긴 일.


 모든 동네에 카페가 넘치게 생기고 그 안에 넘치는 일들이 생긴다.      


 대학 가면 애인이 생긴다는 선생님만 믿고 열심히 공부만 했을 대학교 새내기의 뒤통수를 치던 “대학가도 안 생겨요.”라는 말이 있다. 참고로 나는 대학 때 생겼었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카페에서 소개팅해도 안 생겨요.” 어설펐던 3년의 첫 연애 이후로 남자친구가 안 생긴다. 내년이면 이제 어엿한 마법사가 된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이제는 어차피 안 될 일로 여겨져 소개팅이 들어와도 계속 거절한 지 오래다. 혼자였던 시간이 길어지니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심지어 시간이 아깝고 귀찮다. 인생 전체에서 연애는 한 번의 ‘사건’ 같고 ‘순간’ 같은 일이었구나!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소개팅에 나가면 재밌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얘기도 많이 하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웃긴 말도 해주고 듣는 데엔 소질 없지만 잘 들으려고 노력한다. 데이트도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먼저 제시한다. 솔직히 분위기 좋은 것 같다. 나 소개팅 좀 하는 듯?


 ‘그런데 왜 안 생기냐?’고 물어본다면 좀 찔리는 사정이 있다. 바로 내 성격이 이상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유쾌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세 번의 만남,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 다가오면 불편하고 싫어진다. 선 긋고 거리 두는 성격,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오래 걸리는 성격 때문에 항상 세 번 정도 재밌게 놀고 불편해져 더 만나지 않는다.


 졸업 후 돈 없이 집에서 놀았을 때 했던 소개팅이 있다. 대학 동기가 금융권 취업을 뽀개고 들어간 회사의 동기를 소개해 줬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실을 어필하던 그는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작은 거짓말이나 과장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역시나 세 번 재밌게 만났다. 네 번째 데이트에서 사귀자는 고백을 받았다. 아직 큰 호감이 없는 상태였지만 거절하면 못 만나니까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승낙해 버렸다. 계속되는 소개팅 실패에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해 본 것이다. 그날 식당에서 나와 지하철 타러 가는 길에 손잡으려는 걸 뿌리쳤다. 그다음 데이트에서 영화 시작하자마자 손잡으려는 걸 뿌리쳤다. 그는 화가 났는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핸드폰을 보면서 한숨을 쉬더라. 나는 좌불안석으로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냥 만나지 말자고 말하고 서둘러 도망쳤다.


 먼 기억을 꺼내지 않아도 올해 7월에 같은 일이 있었다. 회사에서 오랜만에 친구랑 카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카톡은 회사에서 해야 타자가 빨리 쳐져서 많이 말할 수 있다. 친구는 소개팅하겠냐고 물어왔다. 별생각 없이 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고 그냥 던져본 말이었는지 놀라서는 “네 스타일 아닌데 괜찮아?”라며 발을 뺀다. “요새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없어서 한번 나가볼래.”라고 솔직히 말하고 번호는 목요일쯤 전달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가보고 싶던 미술관에서 보기로 했다. 모르는 사람과 전시회에서 작품감상은 처음이었는데 재밌었다. 식사까지 한 후 카페에서 대화 나눠보니 성격은 잘 맞는 느낌이었다.


 다음 데이트는 연남이었다. 책방도 좋아하는 나는 연남으로 불러서 가보고 싶던 책방을 다니며 읽고 싶은 책도 샀다. 그날은 식사하면서 맥주도 마셨다.


 이제 한번 남았다. 내 소개팅의 패턴대로 간다면 이번이 마지막이다.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이젠 선 넘고 다가올 걸 미리 걱정한다. 내가 생각해도 우습지만 고민하다가 이미 지쳐서 상대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고 카톡 답장도 드물게 한다. 두 번 모두 서울에서 만난 게 미안했는지 파주로 오겠단다. 별로 안 친한 사람이 동네에 오는 게 불편했지만 하는 수 없이 파주에서 만났다. 집에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영화관으로 공유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좌석을 찾아서 앉자마자 내 귀로 더운 김이 훅 들어온다. “혹시 자리 불편하지 않아요?” 오... 귓속말! 이건 예상치 못했다. 나는 괜찮다고 ‘안 귓속말’을 전하고 영화 보는 내내 손이 안 잡히기 위해 팔짱을 꼈다. 식사 후 그가 미리 알아봤다는 카페에 따라갔다. 그의 차를 함께 타고 이동했다. 주차하는 사이 먼저 가서 카페 내부를 보았다. 좁은 벤치에 두 명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야 하는 곳이었다. 테이블 맞은편엔 의자가 없다. 오... 역대급! 역시나 예상치 못한 전개였지만 다행히 만석이었다.


 다른 카페를 찾아 다시 이동했다. 마침내 평범한 카페에 마주 앉아 커피와 디저트를 시켜놓고 이야기 나누는데 점심 먹은 게 체 했는지 두통이 생겼다. 오른쪽 관자놀이가 콕콕콕콕. 집에 가고 싶었다. 한 시간 넘게 참다가 머리가 아파서 집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원래 공유자전거 타고 혼자 씩씩하게 집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통 때문에 그의 차에 신세를 졌다. 내가 안전벨트를 매느라 방심한 사이 “열은 없어요?”라며 내 이마를 만졌다. 오 안돼... 개기름! 이마에 찍히던 두 개의 지문,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집은 노출됐지만 몇 동인지는 숨기려고 아파트 앞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무시당했고 결국 동 앞에서 내렸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나는 선 긋기에 대실패한 패잔병이 되어 집에 돌아와 머리를 감쌌다. 약은 먹었냐는 카톡의 1은 없애지 않을 것이다. 패자의 소심한 복수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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