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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Nov 19. 2019

주(住)는 중요하다

한국 밖에서 학생으로 살아남기  #1



이 글도 역시 2016년 초에 쓰였다. 아직 영국에서의 삶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호주에서 집이 없어 서러웠던 일만 적혀있다. 런던 기숙사 계약이 만료된 이후, 파란만장했던 "남의 집 얹혀살기"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이 부분은 이후 외전 격으로 실어볼까 한다. 런던에서의 경험은 "내가 내 돈 주고 사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집"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줬다. 셰어하우스는 괜찮다. 부엌이나 거실은 공유해야 하지만 내 방이 있으니까. 돈 받으며 일하는 오페어도 추천하지는 않지만 정말 많이 양보해서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따로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만큼이 내 집세라고 하는 오페어는 정말이지...


어쨌든, 결론은, 주(住)는 중요하다. 정말 중요하다.)는 중요하다



집 없는 서러움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의식주라고 했다. 나는 옷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한 것이고, 먹는 것도 죽지 않기 위해선 당연히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주(住), 집에 대해선 글쎄? 하는 생각이었다. 정말 가난한 여행자로 여행하면서 노숙을 많이 해봐서였을까, 기숙사가 없는 호주 학교로 교환을 가면서 "집이야 구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호주에서 지낸 첫 10일 동안을 존재하지 않는 시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간단히 말하자면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한국 밖에서 학생으로 살아남으려면, 아니 그냥 살아남으려면 '집'은 꼭 필요하다. 


학교에서 호스텔 가는 길목. 평화로워 보이지만 밤이 되면 돌변한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영국 QUB와 달리 기숙사가 없는 ACU는, 심지어 학교와 계약을 맺은 숙소도 없는 이곳은 호주에 도착하기 전 안내 책자를 주며 학생들에게 선택하라고 한다. Semester in Australia라는 사이트를 이용해 숙소를 구할 수도 있고, 첫 며칠 동안은 근처 호스텔에서 머물며 집을 직접 구하는 방법을 추천하기도 했고, 홈스테이도 선택지 중 한 가지였다. Semester in Australia는 조금 비싼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괜찮아 보였기에 신청 메일을 보내봤는데 답장이 오지 않아서 결국 나는 ACU에서 추천(!)한 '호스텔에서 며칠 지내기 방법'을 선택했다(학교에서 추천한 호스텔에서 머물렀다는 말이 아니다). 집은 직접 보고 구해야지 좋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기 때문인데, 맞는 말이지만 땅을 치고 후회했다. 
'집은 호주에 도착하기 전에 구했어야 했어.'


:: 물론 앞으로 펼쳐질 내 삶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땅을 치고 후회했던 것이다. 임시 숙소에 있다 보면 처음에 집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크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살 집은 기숙사가 아닌 이상 직접 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학생이고, 학교에서 기숙사를 제공해준다면? 학교랑 연계된 기숙사가 있다면? 기숙사로 들어가라. 초반의 정착 스트레스가 정말 많이 줄어든다. (벨파스트. 멜버른. 런던. 밴쿠버 경험을 모두 합쳐봤을 때, 처음 도착해서 짐을 마음껏 풀고 정착준비를 했던 벨파스트와 런던 때가 초반 기분이 제일 좋았다.) ::


호스텔을 떠나는 날을 기념하여. 창밖의 풍경은 다신 보고 싶지 않았다. 다시 보긴 했지만.


호주, 특히나 멜버른은 집값이 높다. 시티 센터 쪽이라면 더더욱.
ACU는 시티 센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고, 내가 머물 곳을 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한국에서 통학의 괴로움을 맛볼 대로 맛보았기 때문에 값보다는 거리였다. 호주로 떠나기 전, 잠시 머물 호스텔을 찾아보았을 때 멜번의 숙박비에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리투아니아에선 더 좋은 시설을 가진 호스텔이 1박에 8유로 밖에 안 했는데! 학교에서 그나마 가깝고 제일 싼 호스텔은 믹스룸 4인실이 1박에 3만 원 정도였다. 10일 치를 계산해보니 무려 30만 원. 하지만 더 나은 곳을 구하기 어렵다 생각하여 예약을 했다. 그리고 멜번에 도착해, 교환학생을 방치했던 ACU에서 제공해 준 최고의 서비스인 Chauffeur service (고급 차량에 개인기사 서비스라고 표현해야 하나)를 통해 난생처음 타보는 벤츠-였는지 아우디였는지-를 타고 미리 알려준 내 호스텔까지 편안하게 도착하려는 찰나, 친절했던 기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이 지역은 위험한 곳이니까 가능하면 빨리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기를 추천한다."

그렇게 10일간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집이 없으면 먹기도 싫더라


쌀 과자 사진 뒤로 살짝 보이는 곳이 내가 머물렀던 호스텔. 난 2층 침대의 2층 자리를 차지한 걸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곳이 위험한 지역이라는 것은 다음날 바로 등교하며 깨달았다. 길거리의 위험인물을 대하는 것에 어느 정도 도가 텄다고 자부했음에도 우선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으니 겉으로 티는 안 냈으나 많이 놀랐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 7월의 멜번은 금방 어두워졌고, 내 걸음은 더 빨라졌다. 호스텔에 무사히 도착하면 안도하긴 했으나 그곳에서 나는 완전히 편안할 수 없었다. 호스텔 주인 부부는 나이가 지긋하고 상냥하신 분들이었는데, 호스텔 분위기는 '히피들의 집합소'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곳에서 오래 머물며 단기로 일을 하며 여행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평소 같았으면 멋지다고 생각하겠고 그들과 어울리려 노력했겠지만,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나는 '이곳을 빨리 떠나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샤워 물은 정말 따뜻했다. 정말로. 믹스룸의 착한 독일 남학생들과 친절한 주인아저씨를 포함, 내가 그 호스텔에서 얻은 좋은 추억은 그러하였다.


하루에 한 끼. 극도의 스트레스는 나를 먹게 하는 게 아니라 먹지 않게 했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집이 없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다. 값싼 호스텔은 나의 선택이었고, 이 상황을 이겨내리라 하는 승부욕 아닌 승부욕도 있었지만 스트레스는 날 계속 괴롭혔다. 끊임없이 한국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부모님께 연락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고, 영국에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왜 지금 사서 고생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문득문득 떠올랐다. 서러움이 솟구쳤지만 울지는 않았다. 날 더욱 스트레스받게 만든 것은 이상하게 노트북만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작은 스마트폰으로 매일 밤 열심히 집을 찾았고, 한국에서도 자취방 한 번 구해본 적 없는 나는 그렇게 외국에서 방 구하기라는 신세계를 처절하게 접했다.


또한 나는 먹지 않았다. 요리를 할 수 있는 좋은 주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다른 모든 활동을 하기 싫어했던 것 같다. 나는 배고픔을 잘 참는 편이었고, 돈도 아낄 겸 잘 먹지 않았다. 물론 아예 먹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지만. 그 와중에 건강 챙긴다며 Vegetable Juice를 샀던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이렇게 아이러니할 수가.


나중에는 내 favourite이 된 nudie와 웬만하면 다 먹는 내가 결국 던져버린 아시안 마켓에서 산 빵




새롭게 태어나다


호주의 여러 집 타입 중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인 셰어를 열심히 찾아보던 중 부모님은 내게 한인 셰어는 절대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호주에 갔으니 영어를 써라! 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집세가 정말 부담되긴 했지만,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어쩔뻔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눈물 나게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 UniLodge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하는 날,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호주에서의 삶을 추억할 때, UniLodge로 가기 전은 호주에서 지낸 시간에 쉽게 포함되지 않는다. 마치 다른 세계도 아니고, 다른 우주에서 살았던 것처럼 동떨어진 기억이다.


감격스러운 나의 방. UniLodge@Melbourne


그래서 쓰고 보니 신세한탄 글이자, 내가 쓴 글인데도 읽으면서 인상이 찌푸려진다. 왠지 너무 부정적이어서! 하지만 부디 나의 절실한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한국 밖에서 학생으로 살아가는 부분에서, 집은 정말 중요하다.



그렇게 주(住)의 중요함을 깨달은 나는 드디어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스마일!


UniLodge Level 2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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