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밖에서 학생으로 살아남기 #2
해외에서 절약하며 살다 보면 "Free"라는 것만 보면 지나가다가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이든 공짜로 먹을 기회가 생기면 티 안 나게, 하지만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게 된다. 이번 글에선 벨파스트에서 겪었던 Free lunch만 적었지만, 멜버른에서도, 런던에서도 나는 기어코 공짜밥을 찾아내고 말았다. 이 글이 과거에 적었던 마지막 글이기 때문에, 이후에 공짜밥 관련해서 멜번과 런던 이야기를 추가로 적으면 좋을 것 같다. 캐나다에선 아직 공짜밥을 찾지 못했다. 돈을 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절약해야 하는, 이젠 집세까지 내가 내야 하니 더 빠듯한 살림인데. 얼른 찾아야 할 텐데 큰일이다.
영국과 호주, 두 번의 교환학생 경험과 그 사이의 길고 짧은 여행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고 말이다.
물론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본래 내가 목표로 했던 문화적 차이도 직접 경험할 수 있었고, 내 시각을 넓힐 수도 있었고, 그리고 사실 그냥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들을 정말 많이 했지만, 진부하다면 진부할 수 있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다 제쳐놓고 나서 남는 것은 '생존력'이었다. 나는 혼자서 카우치 서핑을 하며 여행을 했던, QUB에 같이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언니처럼 용감하지도 않고, 남미 여행을 혼자 다녀온 멋진 여성들에 비해 안전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염려심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생존력은 분명 자랑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사실 요즘 국내 내일로 여행과 파리, 오스트리아를 같이 여행했던 친구의 고백에 적잖이 충격을 받으면서도 그 덕분에 나의 생존력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다. 내가 최고의 여행 메이트라고 생각하는-하지만 실상은 내가 힘들게 했던,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그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나의 여행 일정은 시쳇말로 '빡셌다.' 혼자 다닌 여행은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존력이 공짜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묻는다면, 공짜밥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생존'이라고 하니 조금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어쨌든 한국 밖에서, 그것도 물가가 정말 높은 영국에서 공짜밥은 하늘이 내려준 (그리고 Free Lunch는 교회에서 제공했기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표현인) 선물이었다.
벨파스트로 출발하기 전, 나보다 이전에 이곳으로 파견되었던 선배들의 보고서를 읽다 보면 Free Lunch라는 말이 간간이 나왔다. 그때는 그렇게 큰 흥미를 갖지 못했었는데, 내가 처음으로 이 Free Lunch를 접하게 되고, 그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은 벨파스트에 도착한 지 1주도 안돼서였다. 화 수 목요일에 각각 Free Lunch를 제공해주는데, 내가 애용했던 것은 화요일과 목요일의 Free Lunch였다. 수요일의 Free Lunch는 소문에 의하면 격주로 제공된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가보았을 때 제공하지 않았기에, 아쉽게도 수요일은 공짜밥을 먹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다 같이 찾아갔으나, 각자의 수업시간이 맞지 않는 날에는 혼자서도 찾아갔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에서 점심을 해결할 때는 간단히 샌드위치나 음료로 때웠을 뿐, '어딘가에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남의 눈치를 보게 되는 한국 사회의 특성 때문인지, 내 내면의 성격 탓인지, 아니면 그 둘 다-가장 가능성이 높은-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경험 이후로 나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그곳이 교회였고, 선교를 위해 하는 점도 있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푼이 아까운 상황에서 공짜밥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사실 목요일의 Free Lunch는 굶는 것은 잘해도 한 번 먹으면 멈추지 않고 먹는 나에겐 점심이라기보단 간식과도 같았다. 아니 어쩌면 1년 동안 겪어야 했던, 뭐든지 아쉬운 상황(특히 음식과 관련해서)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부터 음식 남기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던 나이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다 먹어치우진 않았었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온 지 1년이 넘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음식 남기는 것을 불편해하는 동시에 아쉬워하고, 하루 종일 굶을 수는 있어도 무언가 먹을 것이 생기면 끝없이 먹는다. 요즘은 조금 팔불출 같다는 생각에 고쳐보려고 하지만, 공짜로 무언가 먹을 기회가 생기면 가슴이 설레는 것을 진정시킬 수가 없다. 의식주 중에서 식은 정말 생존을 향한 본능인가 싶기도 하다.
화요일의 Free Lunch는 내가 정말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좋아했는데, 아쉽게도 남긴 사진을 찾지 못하였다. 목요일에 제공해주는 교회와 다르게 교회 규모도 더 작고, 가는 길도 찾기 조금 힘들지만 종류별로 다양한 Soup에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soup은 크림스프였는데 영국의 soup은 건더기가 들어있는 국과 비슷해서 먹으면 꽤 든든했다)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빵, 그리고 매주 달라지는 사이드 음식들은 이것이 정말 Free가 맞나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나중에 아주 잠깐 동안 영어 도움을 받은, 한국인 부인이 계신 목사님이 그 교회에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그 Free Lunch 시간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었다.
우리나라에선 무료급식소,라고 하면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그것과 비슷한 곳을 영국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또한 가장 중요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 Free Lunch를 한국의 무료급식소와 전혀 다른 곳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학생이어서 그랬을까? 한국이 아닌 영국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시식코너에서 시식을 하려고 하면 느끼는 그러한 감정을, 난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그곳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아쉬워했을 정도였으니.
이곳에서 '그러므로 한국 사람들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라는 식의 훈계식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새삼스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느꼈을 뿐이다. 나는 공짜밥이 전혀 창피하지 않았고, 그저 참으로 감사했을 뿐이라고.
아직 쓰지 못한 '공짜밥'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친구의 초대는 보답해야 하지만, 훌륭한 공짜밥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짜가 아닐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