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다: 신체, 정서, 지능 등이 발달하거나 성숙함
2020년 11월, 네이버가 5단계 역량 레벨 도입으로 쏘아 올린 작은 공은 HR 담당자 사이에서 '직급체계 부활의 신호탄'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네이버를 중심으로 실제 일부 ICT 기업에서는 직급체계에 준하는 제도를 기획 및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 문화 조성을 목표로 직급체계를 전면 폐지했던 ICT 기업 내에서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아닐 수가 없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1ZAK4F1FGL
예상컨대 해당 기업들은 직급파괴라는 실험적인 시도 이후에 나타나는 부작용(side effect)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궤를 같이 하여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수평적, 창의적 조직문화 확산을 기치로 기존 연공서열 중심의 다단계 직급체계를 간소화하는 추세이다. 과연 직급체계가 가지는 어떠한 속성과 의미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직급과 관련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직급체계는 반드시 필요할 것일까?'라는 물음과 함께 '왜 필요한 것일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이 글을 써 내려간다.
직급체계의 의미는 크게 회사와 직원 관점으로 양분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회사 관점에서 직급체계는 개인이 가진 역량과 경험이 반영된 보상 지급 기준이자 조직을 운영하는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직원 관점에서는 일종의 사회적 신분이자 조직 내 성장을 체감하는 가늠자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듯 양자 간 의미는 다소 상이하지만 조직 운영 및 조직 생활 영위를 가능케 하는 중추(backbone)로서 직급체계가 가지는 함의는 매우 중요하다. 사실 직급 개편 진행 시에 고도화된 기술적인 방법론이 있는 것이 아닌 회사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와 같은 의미를 고려했을 때 상당히 신중한 접근과 숙고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약 4년간 무(無) 직급 회사를 다니면서 승진 경쟁 및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고 상호 이름으로 수평적인 호칭을 하는 등의 이점은 있었다. 하지만, 직급체계 부재로 말미암아 나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이 느끼는 정서적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 예를 들어, "승진하면서 느끼는 재미나 변화 모멘텀이 없어 굉장히 무료하다. 직급이 없으니 조직 내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길이 없다"는 의견과 "다른 회사 친구는 승진할 때마다 연봉 앞자리가 바뀌는데 난 연봉을 크게 점프업 할 방법이 없다" 등의 내부 볼멘소리가 여전하다. 또한,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 확산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호칭만 ~님으로 부를 뿐, 여전히 군대식이고 위계적이다"라는 블라인드 게시글도 본 적이 있다.
이렇듯 왜 직원들은 조직 내 피라미드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인정받고 싶어 하며, 과거 직급체계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필자는 '성장 체감 부족'에서 출발하여 직급체계와 관련된 복잡한 실타래를 풀고자 한다. 선천적으로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심리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정'을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입증받고, 이는 자신감의 원동력이 되어 삶의 목표까지 연결된다는 메커니즘이다. 결국 명칭은 다소 상이하나 직급체계, 역량/성장 레벨 제도 내에서 조직 내 개인은 자신의 위치를 공인받고, 다음 단계로 위치를 옮겨가면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욕구가 기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내부 직급 개편을 기획/준비할 때 단편적인 직급체계 변화만 가져갈 것이 아니라 동기부여/성장과 관련된 보완 장치를 충분히 마련하고, 타 인사제도(예: 평가, 보상)와 유기성을 고려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 또한, 개인적으로 역할 중심(role-driven) 직급체계로 정비할 경우 과감하게 직급별 체류연한을 없애고 능력과 역할, 성과 중심으로 조직 내 도전과 성장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국내 기업문화 정서상 체류연한을 배제하는 것을 어렵겠지만...).
결국 새로운 인사제도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제도 자체의 완결성과 타 제도 간 유기성도 중요하겠지만 직급체계를 폐지/축소/부활하는 명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변화에 따른 직원 간 유불리를 사전에 예측/대응하는 등 감성적인 부분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직급체계 자체가 수직적/위계적 조직문화를 조장하고 성장 정체를 유발하는 것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직원들의 성장을 촉진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과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대전제도 요구된다.
단순 인사제도 설계로 끝나는 것이 아닌 현업에 새로운 제도가 잘 정착되고 운영되기 위해서 다양한 요소를 확인/점검하고, 對 직원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문화적 요소(soft factor)도 고려하는 인사 업무가 참 어렵고 복잡다단함을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