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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Jan 03. 2018

<러빙 빈센트> 사랑했던 그를 사랑하다

'반 고흐' 뒤 '빈센트'의 이야기

영화 <러빙 빈센트>(2017)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흐. 우리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 고흐로 익숙한 화가의 실제 이름은 '빈센트', 정확히는 빈센트 빌럼 반 고흐다. 반 고흐는 그의 성으로, 한국식으로 치면 본관이 고흐(독일 도시)라는 뜻이다. 그는 현재 미술 교과서에 실리며 후기 인상주의 거장으로 평가받지만, 살아생전에는 그림이 팔리지 않아 생활고를 겪는 무명의 화가였다. 


정신질환으로 평생 고통받았던 고흐. ⓒ<러빙 빈센트>


  온갖 칭호를 가진 고흐의 생애는 처절하고 우울하며 불운하다. 익히 알고 있는 모습이다. 늘 동생 테오에게 신세를 진 나약한 형. 130여 점의 그림 중 단 한 점을 판 무명 화가. 동료 폴 고갱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강한 집착을 보인 남자. 자신의 귀를 잘라 술집 여인에게 선물하고 끝내 스스로에게 총을 쏜 정신병자. 죽고 나서야 그토록 바라던 인정과 명성을 얻은 예술가.  

 

  그러나 이러한 문장들이 빈센트라는 사람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예컨대 빈센트가 살던 시대에는 이미 사진술이 발달했음에도,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발견되지 않았다. 빈센트의 표정, 분위기, 생김새를 짐작하는 일은 지인들의 증언, 그리고 빈센트가 직접 남긴 글과 자화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빈센트의 진짜 얼굴은 아직 미지의 영역에 있다.






  영화 <러빙 빈센트>는 바로 이 '진짜 빈센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르망은 아버지인 조셉 룰랭으로부터 빈센트의 마지막 편지를 배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수신인은 빈센트의 동생 테오. 아르망은 이미 죽어버린 미치광이가 달갑지 않지만 그와 우정을 나눴던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한다. 


  화구상 탕기 영감, 빈센트의 주치의 폴 가셰, 빈센트가 숨을 거뒀던 여관 주인… 아르망은 빈센트의 주변 인물들을 찾아가 그와 테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데 뭔가 미심쩍다. 테오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다른 가족들과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게다가 묘하게 엇갈리는 사람들의 진술이 하나같이 마음에 걸린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아르망의 편지 배달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한다. 



 

 

  누군가는 빈센트가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려 지내기 바빴다고 기억하지만, 다른 이는 그가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했다고 묘사한다. 빈센트가 자살을 시도할 때 사용한 권총도 원래 빈센트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총은 평소 빈센트를 짓궂게 놀리던 부잣집 아들 것일 수도, 경계심이 과했던 여관 주인의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빈센트가 타인이 쏜 총에 맞아 살해당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아르망은 빈센트가 그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돕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아르망은 진실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빈센트의 지인들은 그를 만류한다. '동생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동네 불량배가 쏜 총에 맞아 죽은' 따위의 수식어 대신 '예술적 고뇌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예술가'의 명예를 안겨주기 위해서. 그들이 빈센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종국에 아르망을 멈추게 하는 건 빈센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결국 내가 한 일입니다.

 

 빈센트는 자신의 뜻대로 죽음을 그렸다. 모진 말을 했던 동료, 괴롭힘을 일삼았던 이웃 주민을 비롯, 그의 죽음을 불러온 요인 전부를 자신의 우울함 뒤에 가려두었다. 그가 스스로를 광기 속에 남긴 덕에 독설가, 사기꾼, 무능력한 의사, 그리고 살인자는 그저 방관자로서의 죄책감만 안게 됐다.


  '사랑하는 빈센트가'. 실제로 빈센트 반 고흐는 편지를 쓸 때마다 늘 'Loving Vincent'라는 끝인사를 남겼다. 문자 그대로, 그는 사랑을 하며 지낸 것이다. 테오를, 조셉을, 가셸을, 사람들을, 자연을, 예술을. 영화가 보고자 했던 빈센트의 모습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토록 모두'를' 사랑했던 사람이다. 



예술과 기술이 접목된 정성스러운 작업. ⓒ<러빙 빈센트>


  동시에 모두'가' 사랑하는 빈센트이기도 하다. 영화의 존재 자체가 빈센트를 향한 존경과 사랑을 보여준다. 감독은 빈센트의 작품 세계를 영화화하기 위해 10년의 시간을 투자했고, 배우는 자신의 얼굴이 그림으로 덮일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출연에 응했다. 전 세계에서 발탁된 107명의 화가들은 2년 동안 고흐의 작품 130여 점과 촬영본을 토대로 62,450장의 유화를 그려냈다. 이 모든 노력이 모여 생동하는 빈센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고흐를 잘 모르지만, 빈센트를 조금 더 알게 됐다. 사랑하는, 사랑했던 빈센트를. 


사랑하는 빈센트. ⓒ<러빙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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