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2016)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씽: 사라진 여자>에는 지선(엄지원)과 한매(공효진), 두 명의 엄마가 등장한다. 지선은 이혼 후 육아와 생계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워킹맘이다. 지선은 홍보대행사에서 광고주 응대, 보도자료 작성, 행사 개최 등 밤낮없이 일 하지만, 돈이 모이지 않는다. 일할 동안 아이를 돌봐줄 보모를 고용하고, 월세에 양육권 분쟁을 위한 변호사 수임료까지 지불하고 나면 겨우 생활비가 남을 뿐이다.
한매는 중국 출신으로, 국제결혼 후 한국에서 지낸다. 농촌에 거주하는 어느 노총각이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지참금을 주고 데려온 것이었다. 그녀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가 겨우 딸을 출산한다. 그러나 아이는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는다. 한매는 아픈 딸을 치료하기 위해 도시로 도망치고,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며 아이 수술비를 마련한다.
영화의 큰 틀은 지선이 자신의 딸을 납치한 보모 한매의 뒤를 쫓는 내용이다. 지원을 따라가면 한매가 납치범이 되는 과정, 즉 과거가 보인다. 한매의 법적 보호자인 남편은 아이의 치료를 거부했다. 그녀는 위독한 아이를 위해 불법 장기이식까지 시도했지만 그마저 실패, 결국 아이를 잃었다. 한매와 아이를 병실에서 내보낸 사람이 바로 당시 의사의 아내였던 지선이다.
지선과 한매가 벼랑 끝에서 마주하기까지, 수많은 이유들이 두 사람을 낭떠러지로 몰아세웠다. 남편, 가족, 일터, 사회, 전부. 지선의 작은 횡포가 모든 일의 원인처럼 보이겠으나, 이는 원인이 아닌 결과다. 혼자 버거웠던 지선이 가정에 소홀한 남편에게 요구한 '책임'은 '권력 남용'으로 변질됐고, 한매에겐 '횡포'로 전해졌다. 마침내 비극이 완성된 것이다. 한 명의 여성이 소름 끼치는 납치범으로 전락하는 비극이.
'여자'를 지워버리고 '엄마' 또는 '괴물'을 새겨 넣기에, 여자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엄마가 되기를 거부해도 괴물이고, 엄마가 되려 해도 괴물이다. 하지만 임금격차, 맞벌이 부부 비율, 가사 분담률, 평균 노동시간, 보육 시설, 출산 지원금, 육아 휴직에 대한 인식 등 관련 통계만 놓고 봐도 괴물은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 덮어 씌우는 허울에 불과하다.
엄마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마땅한가. 그에 앞서 아이를 낳아 제대로 기를 수 있는, '좋은 사람'으로 키워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긴 했나.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 왜 카페에서 사치를 부리냐", "돈이 없으면 아예 낳지를 말았어야지" 따위의 비난은 엄마를 '시민 또는 인간으로서 어떠한 권리도 누릴 자격이 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이념을 내포한다. 시끄러운 아이를 보면 눈살부터 찌푸리는 (한때는 아이였던) 어른들의 세상이다. 그들이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의 피를 빨고 있다.
맘충. 영어 '맘(mom)'과 한자어 '충(蟲)'이 합쳐진 이 해괴한 단어는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엄마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엄마를 벌레로 칭한 것이다.
'진상'은 어디에나 있다. 거리에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고, 점원에게 돈을 던지고,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불량 시민들은 흔하다. 불량뿐이겠는가. 시도 때도 없이 성추행, 폭력, 살해 등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의 존재를 언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비하적인 호칭은 그중 가장 약한 이들을 겨냥한다. '틀딱충'(노년), '급식충'(청소년), 그리고 '맘충'(육아를 도맡은 여성).
다른 이름들이 온라인상에서 사용되는 것에 그치는 반면, 맘충은 실질적인 호명으로 이어진다. 벌레로 낙인찍힌 엄마는 배척의 대상이 된다. 엄마는 공공장소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손가락질받는다. 민폐를 끼칠 것이 뻔하다는 지레짐작에서 기인한 것이다. 노키즈존은 애초에 아이를, 결국 아이를 곁에서 돌봐야 하는 엄마를 거부한다.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은 수유 현장을 몰래 찍어 유포하기도 했다.
맘충은 존재 자체에 대한 혐오를 시사한다. 물론 일부 엄마들의 만행은 옳지 않다. 하지만 이를 일반화해서 힐난하는 것 또한 옳다고 볼 수 없다. 예컨대 중년 남성의 범법률이 아무리 높아도 (딸 같아서 만졌다고 변명할지라도) '대디충'이나 '파파충' 같은 단어로 불리지는 않는다. 같은 부모라 해도 아빠는 혐오에서 비켜난다. 이쯤에서 자문해야 한다. 엄마가 벌레로 불리는 동안 아빠, 가족, 이웃, 나아가 사회 구성원 전체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엄마에 붙은 벌레의 의미.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들>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