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의 미학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6)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금산(이주봉)은 늘 혼자다. 그는 아내를 여의고 고향 금산에서 홀로 지내면서,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해 베개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놈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서울로 가서는 전화 한 통 없다. 그는 이발관에서 혼자 일하고, 집 근처 호프집에서 벽을 보며 술을 마시고, 수영장에서도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금산이 암에 걸렸단다. 의사는 자꾸만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꽤 심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금산은 자신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딱딱한 표정을 짓는다. 노트에 빼곡히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더니, 대뜸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아들을 데리고 금산으로 와달라고.
금산은 아들 스데반(오정환)과 그의 여자 친구 예원(고원희)에게 자신을 주연으로 한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예원은 금산이 직접 쓴 시나리오에 흥미를 보이며 각색과 촬영을 자처한다. 스데반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화가 나지만 예원의 설득에 못 이겨 연출을 맡기로 한다. 금산은 소품부터 로케이션까지 책임지며 주도적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금산은 늘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일기에 기록하지만 절대 그들과 가까이하지 않는다. 자영에게서 자신과 같은 외로움을 발견해 반가웠지만, 자영이 동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는 걸 막기 위해 그녀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다.
아이만 남겨놓고 떠나간 옛사랑, 멀어지는 자신의 꿈, 마음의 고향 서울, 아내의 죽음, 아들의 방황… 모두 잡지 못하고 바라만 봤다. 아내와 어린 아들이 담긴 옛날 비디오를 보며 눈물을 흘릴 때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금산이 영화 제작을 결심한 순간은 영상을 보던 금산이 입에 강냉이를 욱여넣다 된통 사레들린 때, 숨이 끊어질 뻔했던 위기의 그때였다.
멀리서 바라보기. 영화는 그 정점에 있는 예술이다. 영화는 피사체를 담기 위해서 언제나 '거리'를 가져야만 한다. 비추고 싶은 물체에 카메라 렌즈를 바로 갖다 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필연적인 간극 사이에 빛과 소리를, 시간과 공간을 채워 넣으면 영화가 된다.
평생 멀리서 응시해온 금산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할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영화'일 수밖에. 늙은 남자의 아집이나 심통, 또는 철없는 일탈처럼 보일지라도, 그는 묵묵히 영화를 완성해나간다. 금산에게 영화란 언제나 바라 왔던 배우의 꿈에 닿게 하는 사다리이며, 멀찍이 떨어져 스스로를 볼 수 있게 하는 주마등이다.
금산의 영화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는 찰리 채플린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정확히는 찰리 채플린을 좋아했던 아내를 향한 오마주일 것이다. 한 남자가 영화를 보다 강냉이 모양의 사제폭탄을 무심코 삼켜 버린다. 온갖 방법을 써도 폭탄을 꺼낼 수 없게 되자, 남자는 직접 폭탄을 터뜨릴 장소를 물색한다. 마침내 '죽을 자리'를 찾은 그가 폭파 버튼을 누르지만 결과는 불발이다.
영화가 완성되자 금산은 그간 지켜봐 왔던 사람들을 상영회에 초대한다.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정작 주인공 금산은 상영회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바라보게 할 뿐이다. 언젠가는 터트려야만 할 감정(또는 비밀)을 속에 품은 채 끙끙 앓아야 했던 금산의 삶. 강냉이에 목이 메어 실감한 죽음. 모든 과정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리는 결말.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이 남긴 이 말은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를 모두 관통한다. 금산은 끝까지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다. 스스로를 비극에 빠트리지 않는다. '병마와 싸우다 죽은 불쌍한 남자' 대신, '인생을 우스꽝스러운 영화로 만들어낸 유쾌한 남자'로 기억되게끔 한다. 그게 바로 금산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방법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마침내 금산, 미스터 모는 근사한 희극의 주인공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