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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Mar 12. 2021

이희우에서 이훈우로

1920년 12월에 이훈우건축공무소를 개업한 건축가 이훈우는 이듬해 3월, 《동아일보》에 자신의 건축사무소 광고를 실었는데, 내용을 보면 실질적인 개업광고에 해당한다. 그는 광고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본인이 예전에 일본에 유학하여 관립 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뒤 총독부에 봉직하여 실지와 기술을 연구하였다가


《동아일보》 1921년 3월 18일자, 이훈우건축공무소 광고


이를 통해서 이훈우가 일본에서 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20년 이전에 일본에서 건축과를 개설한 고등공업학교는 도쿄고등공업학교와 나고야고등공업학교 두 곳밖에 없었다. 두 학교의 졸업생 명단 중 나고야고공 쪽에서 이훈우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이훈우는 1911년 3월 25일에 학교를 졸업하였고, 나고야고공의 수업 연한은 3년이었기 때문에, 1908년에 입학한 것이 된다.


일본 관보 1908년 4월 23일, 나고야고공 입학허가자 중 '한국인 이희우'
나고야고등공업학교 일람(1909~10년) 중 건축과 2학년 '이훈우'


1908년 당시 나고야고공 건축과 입학자 중에서 외국인으로 입학한 학생은 2명인데, 한 명은 청나라에서 온 쉬투이(許推)였고, 다른 한 명은 한국인 이희우(李喜雨)였다. 그런데 1910년 3월에 발행된 나고야고공 일람 중 건축과 2학년 명단에는 여전히 외국인이 2명 기재되어 있는데, 이희우 대신 이훈우가 그 자리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희우가 1908년에 나고야고공에 입학한 뒤, 1910년 3월 이전에 이훈우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희우는 왜 이름을 이훈우로 바꾸었을까? 일본에서 생활하기 편하기 위해서 이름을 바꾸었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醺(술 취할 훈) 자는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한자가 아니며 특히 인명에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본어 발음 측면에서 보아도 喜雨(きう)보다 醺雨(くんう) 쪽이 더 발음하기 어렵다.


1900년대 당시, 한국 사람들이 개명하는 일은 그렇게 특이한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신문 자료나 관보 등을 살펴보면 개명하였음을 선전하는 내용의 기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개인마다 개명하게 된 사유는 제각기 다를 것이다. 어쩌면 각각의 사례들로부터 나름의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이훈우의 개명 이유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해둘 수밖에 없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건대 본국에 있는 아버지나 집안에 의해 결정된 개명이었을 것 같다. 사실 이훈우의 큰형 이은우도 이형우에서 개명한 이름이다. 단, 이은우의 경우 1907년 무렵에 개명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훈우와 시기가 조금 다르다.


《조선일보》 1929년 9월 11일자 기사 중


이처럼 쉽게 잘 쓰지 않는 한자를 이름자로 쓰게 된 탓에 이훈우는 수난 아닌 수난을 겪게 된다. 그는 조선총독부에서 재직하던 시절에 조선총독부 경복궁 신청사 건축에 참여하였고 훗날 신청사가 완성되고 나서 1929년에 간행된 『조선총독부 청사 신영지』에 전(前) 직원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책을 펼쳐 보면 그의 이름이 이훈우(李勳雨)라고 적혀 있다. 발음은 같지만 전혀 다른 한자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선총독부 청사 신영지』를 참조한 연구들에서는 이훈우의 한자 이름을 '李勳雨'로 표기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조선일보사 평양지국 사옥의 설계인으로 신문기사에 이름이 소개될 때도 이훈우(李薰雨)로 잘못 나왔다.


이훈우는 자신의 이름을 바꿔서 괜히 혼란만 가중되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래도 자신의 새 이름에 나름 만족하면서 살았을까? 분명한 것은 훈우(醺雨)라는 이름 한자가 동명이인의 사례를 찾아보기 거의 힘들 정도로 유니크한 이름이라 확실히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李醺雨 이름 세 글자를 검색 엔진이나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 보면 검색 결과에 나오는 인물은 아마도 건축가 이훈우가 유일할 것이다. 개명의 이유라는 것이 어쩌면 바로 이 유니크함의 추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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