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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Aug 23. 2018

한국 청년들에게 포기를 허하라



허태균 교수 <어쩌다 한국인>이라는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이 있어 적어본다.


미국과 일본에서 유학한 저자는 한국을 포함한 세 나라 간 비교 심리학 연구를 직접 피실험자가 되어 수행한 듯 보인다. 이를 통해 한국인을 여러 Koreanism 으로 분류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인터넷 용어로 "종특" 정도로 번역 가능할 듯하다.


평소에 도대체 내가 왜 이럴까 하는 분들이나, 주위 한국인들을 보며 도대체 왜 저럴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분은 완독 하면 좋을 듯하다. 읽고 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전체 내용 중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한국의 교육 문제였다. 교육계에 종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취학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어서 눈에 훅 들어왔다. 소제목이 "포기를 권장하자" 였다.


최근의 여러 보도에서는 한국의 청년들이 과거와 달리 악착같지 않다고 얘기한다. 좋은 직장에 취업해도 금방 그만두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 많은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현상을 걱정한다. 상대적으로 어려움 없이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난 청년들이 너무 쉽게 포기하고, 무의미한 소소한 재미만을 찾아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마치 이런 청년들 때문에 한국의 경제가 더 나빠진다는 듯이 얘기한다.


위 내용에서 언론과 기성세대가 걱정하는 것은 결국 청년들의 포기이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무엇을 포기한다는 것일까? 아마도 취업, 명예, 돈 등 세속적인 성공일 것이다. 70~80년대 경제발전기에 열심히 일해 대한민국을 일군 기성세대의 눈에 세속적인 성공 외에 다른 재미를 추구하는 청년들이 마뜩지 않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분들은 그러한 삶을 살아왔으니. 


그렇다면 그분들의 생각이 맞을까? 우리나라만 바라보고 판단하면 시야가 좁을 테니 universal 하고 보편적인 결론을 위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자. 특히 선진국은 어떨까?


이미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선진국의 대부분은 저성장의 문제를 경험해왔다. 미국, 캐나다, 유럽의 많은 선진국들, 일본과 같은 나라의 청년들이 근무 강도보다는 개인 시간을 중요시하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그들만의 삶을 추구하며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한 청년들도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우리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그대로 대입하자면, 선진국 젊은이들의 이기적인 삶은 선진국의 경제를 더 나쁘게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세속적인 성공이 없는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는 행복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게 안 좋아지니. 


그러나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그들은 4만 불을 너머 5만 불의 국민소득을 가지고 있으며 행복지수도 우리 바람처럼 낮지 않다. 오히려 모든 청소년들이 세속적인 성공을 강요받는 한국은 자살률 1위에 행복지수도 하위권이다. 해외에 나가서 만나게 되는 미국, 유럽인들의 삶은 그저 부럽기만 하다. 


작가는 기존에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있던 "세속적 성공 만능주의"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당하다.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한 청년의 비율로만 보자면 선진국들도 한국 사회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차이는, 그들은 스스로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할 기회를 어려서부터 아주 체계적으로 제공받아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삶 자체를 포기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이 포기한 세속적인 성공을 대체할 만한 수많은 다른 가치를 사회로부터 제공받기 때문이다. 그것이 종교, 문화, 예술, 봉사 등의 무엇이든 간에, 어려서부터 세속적인 성공을 이룰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 간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포기한 게 아니라 선택한 것처럼 느낀다. 아니, 실제로 선택한 거다. 자신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다. 왜? 그게 재미있고 의미 있으니까. 누가 칭찬을 해주지 않아도, 누구로부터 처벌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선택해서 산다. 어찌 보면 평범하지만 행복한 소시민의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말 그들의 생각, 태도가 아름답지 않은가.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한다. 공부를 잘해야만 성공하고 열심히 노오력해야 행복해지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아니 그것은 이미 거짓말일지 모른다. 


행복은 공부를 통한 세속적 성공과 등가가 아니다. 행복은 다양한 가치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옛날의 고리타분한 가치에 매몰되어 있다. 바로 세속적인 성공이다.


하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청년에게 똑같은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삶을 권하고, 강요하고, 칭찬한다. 한국의 교육체계에서는 세속적 성공과 그것을 위한 학업만이 거의 유일한 가치다. 그래서 한국 청년들은 세속적인 것 외에 다른 가치를 모른다. 그들의 포기는 진짜 포기다. 가진 것도 없이, 아무 의미도 없이 그냥 실패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에서는 여전히 포기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영원히 실패하는 거라고 강요한다. 마치 그들 때문에 한국 사회가 어려운 것처럼 얘기한다. 어찌 보면 그들은 실패자이자 피해자다. 취업을 못해서, 성공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평가할 다른 가치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재미와 의미를 잃은 실패자이자 피해자다.  


"공부해야 성공하고 잘 산다"는 몇몇 머리 좋고 공부 재능 있는 청소년들에게만 의미 있는 말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말은 자이언티(Zion.T)의 "행복하자, 우리"이다. 


청소년 모두가 각자 다른 행복 공식을 가지고 있다. "공부=행복"과 같은 쌍팔년도 공식을 주입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에게 세속적 성공의 포기를 허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허태균, 어쩌다 한국인, 중앙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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