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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Sep 18. 2020

6. 프로스포츠 in 시카고


미국 하면 프로스포츠를 빼놓을 수 없다. NFL, MLB, NBA, NHL.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댈러스 카우보이, 뉴욕 양키스, LA 레이커스 등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팀들이기도 하다.


NBA는 한 시즌 수입만 9조 원에 달하고, MLB 한 시즌 방송 중계권은 6천억 원에 달하며 NFL 한 팀당 평균 가치가 3조 원에 육박하니 프로스포츠가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자전거 타고 동네 마실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지나가면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다. 어떤 집은 야구를 보고 있고, 다른 집은 농구를 보고 있으며, 또 다른 집은 미식축구를 보는 식이다.


그들은 보는 것 외에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농구골대가 설치되어 있고, 방과 후 초등학교 그라운드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코치로부터 야구를 배우기도 한다. 공원에서 아빠와 아들이 캐치볼 하는 건 늘상 있는 일이다.


왜 그렇게 프로스포츠를 좋아할까 싶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아마도 스포츠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인 것 같다. 미국 인구 중 대부분이 교외에 살고 있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는데, 정말 근처에 아~~~무 것도 없다.


집 옆에 집, 그 옆에 또 집, 옆에 또 집, 집, 집......


준서가 미국 와서 제일 궁금해했던 게 왜 동네에 GS25가 없냐는 거였다. 한국은 편의점, 크린토피아, 파리바게트가 한 세트로 묶여서 동네 어디든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으니 신기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동네에 코인 노래방이라도 있으면 자전거 타고 가서 혼코노로 금영 69033이라도 한 판 때리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 갈 데가 없다.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집 고치고 잔디 깎고 러닝하고 자전거 타고 개 산책까지 시켜도 시간이 남는다. 그러니 남는 시간을 프로스포츠로 채우는 듯하다. 그렇다고 억지로 본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대를 이어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지난주 일요일(13일)에는 시카고 베어스(Chicago Bears)의 미식축구 개막전이 있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여기서는 엄청난 일로 다가온다.


개막전 일주일 전부터 시카고 지역 뉴스에 계속 풋볼 이야기가 나오더니 개막이 다가오자 뉴스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에서 본격적으로 풋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막 전날에는 특집 방송을 편성해서 전술, 데이터, 개인 기록 등을 정리해 주는 자상함까지 보여줬다. 얘네들 이럴 때 보면 진짜 진지하다.


드디어 게임데이가 돌아왔다. 경기 시작 30분 전쯤 되니 거리가 적막해진다. 동네를 바쁘게 싸돌아다니던 청설모들도 이내 상황 파악을 하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온전히 시카고 베어스만의 시간이 되었다.


경기는 시작했고, 동점과 역전을 반복하다 6-23으로 뒤진 채 3 쿼터를 마쳤다. 첫 경기부터 난조였다.


한화이글스의 30년 팬으로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는 경기력 난조는 삼시세끼와 같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 본토에 와서 집관한 첫 경기여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는 얘네가 곰 흉내 내는 또 다른 한화이글스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러다 측은지심에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칠까 두려워 티비를 끄고 가족들과 외출을 준비했다. 그런 건 한화이글스 하나면 충분하니까.


밖에 나오자 몇몇 사람들이 울분을 못 참고 뛰쳐나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구글에 2013년 한화이글스 개막 이후 13연패 검색해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웃끼리 총격전 일어날 것 같아 참았다. 조용히 차를 끌고 근교로 나갔다.


두어 시간 정도 즐거운 외출을 마친 후 돌아와 보니 동네 공기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백인 형님들의 얼굴에서 온화함이 느껴졌고 산책하는 개들에게서도 뭔가 평온함이 느껴졌다.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혹시 하는 생각이 들어 스마트폰으로 스코어를 확인해 보았다.


베어스가 4 쿼터에만 21점을 따내 27-23으로 승리해 있었다.


What a game…


그 순간, 이러니 내가 풋볼을 미워할 수가 있나, 하는 표정의 백인 할아버지가 베어스 티셔츠를 입고 내 앞을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다.


그들이 프로스포츠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승부를 뒤집는 짜릿함.


다음 경기부터는 좀 더 진중히 지켜봐야겠다.


(2020. 9. 16.)



ps. 준서는 축구를 더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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