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이 요즘 대세다. 줌이 뭐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재 미국 내 교육에 있어서는 줌 없이는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되는 상황에 와있다. 줌은 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을 말하는데 학교, 회사, 공공기관을 막론하고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업무 표준으로 자리 잡은 코로나 시대에, 안전을 보장하면서 업무효율까지 높일 수 있는 줌이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미국 대학원에 다니는 나 역시 웹 세미나에서 수업까지 모두 줌으로 진행하고 있다. 며칠 전 준서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이 있다길래 어디서 하나 봤더니 어드레스에 줌 웹주소가 적혀 있었다. 속으로 헐 했지만 코로나 시대에 이런 건 그냥 어쩔 수 없는 변화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2020년 올해의 단어를 꼽으라면 코로나 다음으로 줌을 꼽을 것 같다.
암튼 요즘 내 생활의 반 이상이 줌이다. 줌으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줌에 익숙해진 내 모습을 본다.
수업은 어느 건물 몇 호실에 직접 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줌 웹주소를 주소창에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줌 웹주소가 없으면 강의에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꼭 기억해야 한다. 내 컴퓨터 메인화면 메모장에는 강의, TA, QnA, 웹 세미나를 위한 줌 웹주소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https://uchicago.zoom.us/j/98495304608?pwd=M1VVK0N6amEyTlVSVitjc1lGM0ZtUT09 뭐 이런 식이다. 이런 거를 긁어서 복사, 붙여넣기 하고 입장하면 나와 같은 상황의 학생들이 한가득 모여있다.
수업 중에 궁금한 점은 직접 채팅으로 물어본다. 보통은 들어와 있는 모든 구성원이 다 볼 수 있는 공개채팅이지만, 특정인에게만 몰래 채팅을 보낼 수도 있다. 한국의 귓속말 기능 같은 거다. 그래서 가끔 수업의 내용은 진지한데 웃으면서 타자를 치고 있으면 대체로 이 기능을 사용하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물론 재밌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어차피 내가 화면으로 뭘 보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수업 진행 중에 소규모 토론이 필요하면 강사가 브레이크아웃룸으로 인원을 쪼개어 보낸다. 60명 강의를 10개로 쪼개면 5-6명이 소회의실에 각각 배정된다. 느닷없이 소회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하이 가이즈로 시작해서 주제별 토론도 하고 구글 doc으로 공동 과제도 작성한다. 근데 분명히 랜덤으로 돌리는 것 같은데 맨날 만나는 애들만 만난다. 물론 그래서 더 친해진다. 그러다 다시 본 강의실로 돌아오라는 명령이 오면 바이 씨유 하면서 헤어진다. 인생사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했다.
수업이 끝나면 물리적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다. 주소창에 다음 수업 줌 웹주소만 복사, 붙여넣기 하면 된다. 따라서 허경영 씨가 주장하는 순간이동이 가능하다. 아침부터 이 수업 끝나고 저 수업으로, 또다시 다른 수업으로 접속과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캠퍼스를, 아니 온라인 강의실을 온종일 누비게 된다.
다만 아쉽게도 방과 후에 한 잔 하기 위해 따로 만나는 것 따위의 낭만은 없다. 온라인이기도 하지만, 서로 시차가 나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는 막 잠에서 일어나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하루를 시작해야 하고, 어떤 친구는 수업을 듣고 나면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곧바로 자야 한다. 시카고대 근처 하이드파크 뒷골목 파전집에 가서 마셔라 마셔라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줌 수업을 한 달 넘게 하다 보면 대충 캐릭터 강한 아이들도 나온다.
수학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은 지속적으로 채팅창에서 아이패드로 수업하는 조교의 배터리를 걱정한다. 보통 수업할 때 강사가 본인의 화면을 공유하면서 진행하는데, 첫 수업에 40%로 시작해서 3%로 끝난 게 화근이었다. 이후 이 학생은 수업보다 조교 배터리에 관심을 집중한다. 배터리를 100%로 시작하면 today no battery issue라고 하고, 60% 이하인데 충전 안 하고 있으면 no charging? 이라고 쓴다. 충전 안 하는데 20% 이하로 떨어지면 조용히 혼자서 채팅창으로 카운트 다운을 한다. 19%, 15% 이런 식이다. 분명 수업을 진행하는 조교도 채팅창을 보고 있을 텐데 미동도 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한다. 나 같으면 충전을 할 만도 한데 곤조로 버틴다. 이 정도 수준까지 오면 내가 수업을 듣는 건지 배터리 전쟁을 관전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이다. 암튼 걘 오늘도 그랬다. 정말 만나보고 싶다.
아이를 안고 수업을 듣는 학생도, 지속적으로 친구를 데려와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도 있다. 집이 너무 지저분해서 내가 가서 치워주고 싶은 학생도 있다. Anyway 재밌다.
줌 수업에 익숙해져도 사회적 동물인지라 사람이 그리운 건 사실이다. 직접 만나서 같이 대화하고 아이 컨택하기를 모두가 고대하고 있다. 올 겨울은 어렵더라도 내년 가을에는 모든 동기들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로나가 끝나야 한다. 정말 간절히 백신의 빠른 개발을 기대한다.
(2020. 9. 11.)
ps. 동기들이랑 파전집 같이 못 가서 한인마트에서 냉동파전 사서 구워 먹음. 한국사진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