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서민서패밀리 Sep 30. 2020

8. 로드트립 to South Dakota


추석이다. 해외에서 맞이하는 첫번째 명절이어서 감회가 새롭다. 군대 시절 빼면 명절때 항상 고향에 내려갔던 것 같은데 갈 수 없는 이 상황이 꽤나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할 일이 없지는 않다. 가을학기 개강으로 사실 많이 바쁘다. 매일매일 퀴즈에, 텍스트북 리딩에, 과제도 매주 있다. 교수들은 또 겁나 부지런해서 언제 찍었는지 강의도 미리미리 녹화해서 올려준다. 그리고 그걸 미리 보고 들어와서 강의시간에 같이 토의해보자고 한다. 오마이.  



"The place where fun comes to die."
재미가 죽음을 맞이하는 곳, 바로 시카고대를 묘사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풋 했지만 점점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 유머도 자꾸 영향을 받아 약해지는 것 같아 한국예능을 보면서 꾸준히 코미디 공부를 하고 있다. 할 게 참 많다.



지난 주에는 미국 입국 한 달을 기념하여 3박4일 사우스다코타주 여행(왕복 1,800마일 총 28시간 운전)을 다녀왔다. 꽤 긴 시간 운전을 해야 했지만 그냥 출발했다. 어차피 운전은 차가 하는거니까. (1마일 = 1.6킬로미터)



첫째날 6시간 운전, 둘째날 8시간 운전, 셋째날 6시간 운전, 넷째날 8시간 운전 후 집에 도착했다. 내가 여행자인지 트럭운전수인지 순간순간 헷갈렸지만 그래도 Badlands 국립공원과 Rushmore 국립공원을 보면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정말 멋진 풍광이었다.



미국 고속도로에서의 운전은 대부분의 자동차가 크루즈 Cruise control 기능을 이용해서 한다. 속도를 지정하면 알아서 그 속도에 맞추어 정속으로 달리는 기능이다. 대부분의 차가 70마일 정도로 크루즈 운행하기에 앞 차와의 거리가 크게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는다. 그냥 줄지어 간격 유지한채로 달린다고 보면 된다. 차도 많지 않다.



크루즈로 운행하면 아무리 운전해도 피곤하지 않다. 발은 가만히 있고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면서 운전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미국 고속도로는 길도 일자로 반듯하여 핸들도 거의 움직일 필요가 없다. 말그대로 꿀운전이다.



미국 고속도로에서는 오토바이도 운행을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나는 첫 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내 창문 옆에 갑자기 백인 할아버지가 서(?)있어서 정말이지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자세히 보니 그 할아버지는 헬맷도 안쓴 채로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70마일로 달리고 있었다. 시속 110 km/h. 그러더니 심지어 나를 앞질러 달려갔다. 프론티어 정신의 발현을 눈 앞에서 보는 듯 했다.



미국 고속도로의 경우 제한속도는 있지만 과속카메라는 없다. 대신 경찰차가 숨어 있다가 과속하면 얄짤없이 잡아낸다. 가다보면 갓길에 경찰에게 잡혀있는 차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반대 차선에서 대낮에 갑자기 헤드라이트를 깜빡깜빡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앞에 경찰차가 숨어있다는 신호이다. 상부상조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미국 고속도로에는 우리 나라처럼 도로표지판이 많지 않다. 한국은 이런저런 표지판이 정말 많은데 미국은 정말 딱 필요한 최소한만 세워 놓는다. 대신 개인들이 세운 광고 간판이 꽤 많다. 몇 번 출구에는 맛집이 있다, 박물관이 있다, 쇼핑몰이 있다, 이런 식이다. 기억나는 기발한 간판은 멕시코 타코 음식점인데, “트럼프가 맛있는 우리 타코 막으려고 장벽을 세우고 있다. 와서 확인해봐라." 였다. 카피라이트 전문가가 타코를 굽고 있었다.



미국 고속도로에는 한국과 같은 형태의 휴게소는 없다. 쉼터 개념의 Rest area 라는 곳이 있지만 화장실과 콜라 자판기 뿐이다. 주유소나 식당을 이용하려면 출구 Exit 로 나가야만 한다. 보통 Rest area 에서 화장실을 많이 이용하는데, 그 숫자가 많지 않고 표지판도 갑자기 나오는 경우가 많아 화장실 가려면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나처럼 화장실 찾아 삼만리를 할 수 있다.



로드트립의 백미는 역시 풍경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일자로 쫙 뻗은 도로,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지평선 등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스펙타클한 풍경에 감동을 받는다. 어쩌면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로드트립에 나서는 건지도 모르겠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힘든 순간도 포기하고픈 순간도 있겠지만 그래도 힘을 내 또 도로를 치고 나가는 것, 미국인들은 로드트립을 통해 인생을 배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첫 로드트립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웠다. 오랜 시간 운전대를 잡고 있어서 힘든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 되었다. 벌써부터 또 다른 로드트립을 계획하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