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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Oct 07. 2020

9. 날씨 in 시카고


어느새 가을이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경량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내가 시카고로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해 준 시카고의 단점 두 가지가 있었다. 바로 치안과 날씨. 전자는 높은 범죄율이었고, 후자는 혹독한 겨울 추위였다.


전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진짜로 그랬다. 특히 총기사고가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하는 듯 했다. 총기로 사망하는 사람이 주말 평균 10명 이상이라고 하니 확실히 범죄도시의 악명이 있는 듯 하다.


다만 다행인 것은 내가 사는 교외 지역에서는 총기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총기사고는 시카고 도심 근처에 있는 흑인밀집 거주지역에서 대부분 일어난다. 그래서 나 역시 시카고 총기사고 뉴스를 보면서 그런갑다 할 뿐 남의 일 보듯이 하게 된다.


하지만 후자인 날씨에 대해서는 다르다. 생활에서 뼈 시리게 체감이 되기 때문이다. 시카고의 날씨는 추위로 악명이 높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기온 하강도 하강이지만 미시건 호수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진짜 무시무시하다고 한다. Windy City, 시카고의 명성은 겨울이 되서야 그 진가를 드러내는 모양이다.


미시건 호수는 칼바람 뿐만 아니라 눈 올 확률까지 증가시킨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유식하게 “Lake-effect Snow” 라고 하는데, 겨울철 찬 공기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호숫물 위를 지나면서 다량의 수증기가 발생하여 대류성 구름을 형성하게 되고 이것이 다시 대륙에 닿으면서 눈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게 다 미시건 호수 때문이다.


암튼 이런저런 연유로 시카고는 10월부터 5월(?)까지 언제든 눈이 올 수 있다고 한다. 차고에 눈 치우는 커다란 기계가 있을 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이미 한 타임 늦은 것 같다. 여름 내내 잔디 깎고 이제 좀 쉬나 했더니, 겨울 내내 눈 치우게 생겼다. 육군 병장 송병장의 혹한기 훈련은 시카고에서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겨울이즈커밍하다보니, 날씨에 꽤나 많이 신경쓰게 된다. 혹시나 눈이 내리지는 않을까 갑자기 추워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이다. 물론 솔직하게는 눈 많이 와서 집 안에 갇힐까봐 걱정이다. 눈 많이 올 땐 출입문 살짝 열고자야 할 것 같다.


암튼 날씨 걱정에 요즘 일기예보를 자주 보게된다. 그런데 미국 뉴스의 일기예보는 우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결이 조금 다르다. 특히 시각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고기압과 저기압의 위치, 시간대별 이동경로 및 그에 따른 날씨 변화를 현란한 그래픽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때로는 구글어스앱 같은 3차원 그래픽을 이용해서 도심 날씨를 빌딩 숲과 함께 휘황찬란하게 보여줄 때도 있다. 내 무료한 시신경이 일기예보에 자극받아 호강하고 있다.


하나 더, 기상캐스터(미국의 경우 weatherman or weatherwoman)도 상당히 적극적이다. 그들은 우리처럼 한반도 지형 위에다 기온, 강수량 정도를 간단히 표시해 놓고 정형화된 멘트를 덧붙이는 형태의 의례적인 기상예보를 하지 않는다. 마치 지구과학 강의하듯이, 때로는 약간 약(?) 팔듯이 액티브하게 날씨를 설명한다. 가끔은 일기예보 내용보다는 그들의 액션에 흠뻑 빠져 넋을 잃은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시카고 폭스뉴스 채널의 weatherman 아저씨는 꽤나 인상적이다. 다소 과체중인 그 아저씨는 항상 꽉 끼는 검정양복을 입고 신사답게 진행하는데, 몸이 커서 화면 거의 절반을 가리지만 전달력은 매우 좋다. 매일 같은 양복을 입고 나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Mark Strehl 이라는 분인데 Youtube 에 영상이 있으니 재미삼아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아저씨, 사실 저 팬이에요. 좋아요 구독 눌렀어요. (수줍)


날씨와 관련한 미국인들의 행동 중 특이하면서도 가장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우산을 잘 안쓴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사는 동네 기준이다) 그들은 왠만한 비는 그냥 맞으면서 생활한다. 사실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저걸 왜 그냥 맞을까 몸에도 안좋을텐데. 그런데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무언가 번뜩하는 게 있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비는 곧 산성비, 더러워서 맞으면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아니다. 그들의 대기는 매우 깨끗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쩌면 그들에게 비는 하늘로 올라간 수증기가 다시 물이 되어 내려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서 깨끗한 물이 내린다고 생각한다면 좀 젖는 불편함만 빼면 반드시 우산을 써야 할 필요는 사라진다.


그렇게 생각한 이후에는 나 역시 편하게 비를 맞게 되었다. 우산은 두고 다닌지 오래고, 갑자기 비가 와서 좀 맞더라도 불편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게 되었다. 준서도 그냥 맞고 다닌다. 참 좋다.


우리도 옛날에는 그랬을 것 같다. 산업화 전 매일매일이 푸른 하늘이던 시절 말이다. 물론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우산 따위는 안사는 날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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