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월 31일, 할로윈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할로윈이 뭐 하는 건지도 잘 몰랐었다. 그저 이상한 옷 입는 외국 문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사실 별 감흥도 없었고 인식도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의 할로윈은 좀 다르게 느껴졌다. 단순히 코스튬 입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교감하는 하나의 축제로 보였다. 각자 개성 있게 꾸민 아이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을 받았고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예전에 비해 덜하다고는 해도 여전히 많은 집들이 사탕 통을 내놓거나 직접 사탕을 주었고 해피 할로윈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른들은 자신의 어릴 적 할로윈 추억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선물해주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게 느껴졌다. 겪어보니 왜 할로윈을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입국할 때만 해도 할로윈은 생각도 없었다. 그때가 8월 중순이었으니.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할로윈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일단, 마트에서 큰 호박을 내다팔기 시작했다. 호박은 Jack-O-Lantern의 재료이다. 펜으로 호박에 그림을 그려서 칼로 파낸 후 안에 초를 켜놓고 집 앞에 내놓는 것이다. 미국 호박은 주황색에 모양도 동글동글해서 랜턴으로 만들면 참 예쁘다. 준서랑 세 개 만들었는데 시간도 별로 안 걸리고 어렵지도 않았다. 덕분에 아들과의 추억이 +1 되었다.
다음으로, Affy Tapple 같은 사탕을 여기저기서 팔기 시작했다. 해골은 기본이고 드라큘라, 미라, 거미, 좀비 등 호러 영화 단골 캐릭터들이 쿠키에 등장했다. 준서 학교에서 Affy Tapple을 팔길래(공립초등학교는 이래저래 Fund-Raising이 많다) 뭔지도 모르고 사봤는데 생사과에 캐러멜을 입힌 거였다. 웬 사과일까 했는데, 어원을 찾아봤더니 원래는 Taffy Apple(사탕 사과)인데 할로윈이라 장난스럽게 Affy Tapple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 개 이상은 절대 못 먹을 정도로 달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직 시작도 아니다. 본 게임은 사람들이 집을 꾸미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에 몇몇 집이 호박을 집 앞에 내놓길래 그냥 저 정도 하나 싶었다. 그리고 거기에 조금씩 조명이 달리기 시작했을 때도 예쁘고 괜찮았다. 그런데 하나 둘 집 밖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하면서 음산한 기분이 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앞마당 나무에 해골 및 마녀들을 걸면서부터 뭐지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거는 것도 아니고 거의 다 목을 매달아 놓는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애교다.
진짜는 앞마당을 무덤으로 만드는 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묘비 정도 놓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관짝을 갖다 놓고 공동묘지를 만들고 있었다. 밤에는 보라색 조명도 틀고 스산한 안개도 스멀스멀 깔아놓는다. 집 앞을 저리 해놓으면 온종일 마음이 심란할 것 같은데 그 앞에서 웃고 떠들면서 잘 지내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물론 대부분 집이 많든적든 저렇게 꾸미다 보니 크게 무섭지는 않다. 준서 등교길에만 공동묘지 집이 두 개 정도 보이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간다. 한국 시골 동네에 딱 한 집만 저러고 있다면 정말 오싹하고 무섭겠지만 여기서 할로윈 시즌에 저 정도 하는 건 그냥 일상이다 보니 보고 오 잘 꾸몄네, 하고 웃으며 지나가는 정도에 그친다.
동네마다 한 집 정도는 정말 대박으로 정성 들여 잘 꾸민 집이 있다. 우리 동네에는 초대형 호박(성인 명치 정도 되는) 몇 개를 가져다가 앞마당에서 얼굴 조각을 직접 하는 아저씨가 있다. 그 아저씨는 할로윈 기간에 맞춰 몇 주 동안 천천히 호박에 얼굴을 조각한다. 앞에서 주민들이 사진을 찍어도 묵묵히 조각만 할 뿐이다. 국어책에 나오는 방망이 깎던 노인이 생각날 정도였다.
옆 동네에는 놀이동산 유령의 집보다도 훨씬 더 리얼하게 꾸며놓아서 사람들이 줄 서서 관광하러 오는 집도 있다. 우리도 가봤는데 저 정도면 전기요금이 도대체 얼마나 나올까 싶을 정도로 퐌타스틱 그 자체였다. https://youtu.be/viIUk9RlueQ 준서는 이 집은 좀 무서워했다.
하지만 내 맘 속에 1등인 집은 따로 있다. 저번 주 낮에 차 타고 지나가면서 아내에게 저 집은 폐가인가 보다 라고 하자마자 집에서 사람이 나와서 깜짝 놀란 집이다. 할로윈을 위해 자기 사는 집을 폐가로 만드는 살신성인의 자세에 진심 박수를 보낸다. 근데 진짜 폐가인 줄 알았다.
아이가 있는 집들은 할로윈이 바쁘다. 특히, 코스튬 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같은 초짜들이야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르기가 쉽다. 할 게 많기 때문이다. 준서는 요즘 Ninja 만화에 푹 빠져있어서 닌자로 변신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닌자복을 사고 쌍칼과 표창 장난감까지 구입했다. 이런 걸 다 파는 마트가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하지만 원래 여기 살던 애들은 매년 코스튬을 해왔기 때문에 고르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준서 같은 반 친구 엄마는 애가 원하는 캐릭터 옷을 파는 곳이 없어 직접 만들고 있다고 했다. 알면 알수록 미국 엄마들 참 힘들다.
코스튬이 다되면 학교에서 하는 퍼레이드도 준비해야 한다. 코스튬 입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행사이다.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행사인데 올해는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다. 학교에서 2주 연속 가정통신문에 할로윈 전날 코스튬 입고 오지 말라고 써놓은 걸 보면 오래전부터 당연히 그렇게 해왔던 전통인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도 할로윈 당일 오후 3시부터 일몰 전까지 하는 Trick or Treat은 막지 못했다. 시카고 시장이 기자회견에 악당 코스튬을 입고 나와 행사를 자제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소용없었다. 준서는 같은 반 여자 친구들 2명과 같이 Trick or Treat을 돌았다. 준서는 닌자, 한 아이는 엘사, 남은 한 아이는 여자 좀비(!)였다.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면서 사탕 통이 터지도록 트릿을 받은 준서는 엄청 행복해했다.
우리 집은 대형 울라프 인형 앞에 사탕 통을 두었다. 아기가 있어 직접 트릿을 주지는 못했지만, 집 안에서 아이들의 다양한 코스튬을 보는 재미도 있었고 사탕을 가져가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뿌듯함도 있었다.
아이들은 물론 어린 시절 즐거운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어른들까지 할로윈은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 같았다. 집 앞에 불 피우고 앉아서 아이가 올 때마다 사탕과 함께 안부 인사를 건네는 미국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런데 내년에는 나도 한 번 그렇게 해봐야겠다. 간지 나더라.
준서가 축제의 한 복판에서 여러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게 되어 나 역시 기분이 좋다. 준서는 벌써부터 내년 할로윈이 기대가 된다고 한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사라져서 아이들의 멋진 퍼레이드를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Happy Hallow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