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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Oct 26. 2020

12. 학교 과제 in 시카고



이제 곧 중간고사 시즌이다. 시카고대는 쿼터제(3학기제)여서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된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돼서부터 과제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퀴즈를 보다가 이제는 중간고사를 본다고 한다. 진짜 추진력 하나는 인정한다.

덕분에 학생들은 자연스레 집에서 공부만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공부를 통한 자가격리, 새로운 코로나 대응책의 발견이다.

학교 과제는 대부분 팀별 과제이다. 랜덤으로 배정된 팀에 들어가 다른 팀원들과 협업하면서 답을 도출해 내야 한다. 따라서 열심히 할 마음이 크게 없었던 나였지만 대한민국 국격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대충대충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과제는 보통 1주일 말미를 주면서 내준다. 만약 이번 주 수요일에 과제 1이 나오면 다음 주 수요일 점심이 마감이다. 그런데 마감일 오후 즈음되면 다음 과제인 과제 2가 또 나온다. 그건 또 그다음 주 수요일 점심까지 내야 한다. 그다음 주 수요일에 과제를 내고 나면 오후에 또 과제 3이 나온다. 그다음엔 4가 5가... 이 반복의 끝을 교수님은 과연 알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마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보는 듯하다.

팀이 배정되고 과제가 부여되면 재빨리 팀원들에게 연락해서 과제에 대해 상의해야 한다. 경제학 과목에서 내가 배정된 팀은 미국 아이 2, 인도 아이 1, 그리고 나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첫 번째 과제 주제가 발표되고 만 하루가 다 지나가는데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학교 사이트에서 이메일 주소를 찾아 팀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일 아쉬운 놈이 하는 거다.

"헤이 가이즈 우리 같은 팀이야 각자 과제에 대해 답안 작성해보고 x일 오후 4시에 줌으로 만나서 답안 정리해볼래?"

하나 둘 답이 온다. 대충 뭐 알았다는 이야기를 미국인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길게도 늘어놓는다. 인도 아이는 대뜸 우리 오늘 당장 답안 작성해서 내일 점심에 만날까 라고도 한다. 보통 이런 뻥카 치는 애들이 마감까지 안 해오는 경우가 많다. 대충 무시하면 된다.

과제를 열심히 다 풀고, 드디어 디데이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약속 1시간 전쯤, "모든 문제를 다 풀어야 하는 건가?"라고 뜬금없이 묻는 아이가 나타났다. 그때 내일 당장 만나자고 하던 아이다. 설레발은 역시 과학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약속시간인 4시에 줌으로 모였다. 거의 안 해온 아이도 있고 반만 해온 아이도 있다. 뭐 뀐 놈이 성낸다고, 이들 중 한 명이 오늘은 대충 하고 내일 다시 제대로 해보자고 역제안을 한다. 이쯤 되면 이 과목이 경제학인지 인간 본성에의 탐구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무시하고 일단 시작한다.

결국 다 풀어온 두 명이 답안을 정리했다. 안 풀어본 아이들은 풀어보고 혹시 다른 의견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그래도 체면은 세워줘야 하니까.

사실 과제는 혼자 하나 여럿이 하나 어차피 혼자 풀어봐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다만 팀의 경우 팀원 간 답이 엇갈릴 경우 서로 토론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쩌면 이것이 교수님이 제일 바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나 무임승차가 존재한다. 물론 그런 아이들이 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 안 상하게 서로 이야기 잘하며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공부가 되는 것 같다. 뭐 원래 세상살이가 대개 그러하니까. 오랜만에 이러한 상황에 처해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옛날 생각도 나고 그렇다.

한편, 과제 작성 관련하여 많은 한국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팀을 이끄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빨리빨리 and 책임지는 문화가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먹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싼 학비와 생활비 속에서 꿈을 위해 도전하는 한국 유학생들, 너희가 참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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