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준서가 학교(킨더)에 다닌 지 벌써 40여 일이 지났다. 이제 많이 적응해서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수업도 잘 따라가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 오기 전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이들은 금방 적응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고, 진짜 아무런 걱정 없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런데 생각만큼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준서는 평범한 동네 유치원을 다녔다. 매일 7시간가량을 한국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아무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선생님과의 관계도 좋았다. 그런 준서가 (아이의 시점에서 보면 뜬금없는) 아빠의 유학으로 졸지에 미국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준서는 학교 개학이 다가올수록 점점 불안해했다. 새로운 선생님, 미국 친구들, 그리고 낯선 환경 속에서의 적응이 영 내키지 않는 듯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학교에 가면 영어로 수업을 하는지, 친구들은 다 미국 사람인지를 물어보았다. 아이의 걱정이 우리 눈에 보일 정도였다. 우리는 금방 적응할 거니까 걱정 말라고 이야기해주었지만 사실 그 말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며칠 지나 드디어 학교가 개학을 했다. 첫 등교날, 준서는 개학 기념으로 사준 예쁜 새 옷 대신 한국에서 입던 태권도 하복을 입고 가겠다고 했다. 전면에 사자가 크게 그려져 있고 경희대태권도라고 한글로 써져 있는 옷이었다. 스스로 용기를 내기 위함 같았다.
민서를 포함한 온 가족이 총출동하여 학교로 갔다. 준서에게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서였다. 학교에 도착하고 곧 9시가 되었다. 각 반 담임 선생님들이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온통 미국 아이들과 그 부모들 뿐이었다. 화려한 영어가 우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머뭇거리던 준서를 이끌고 킨더 교실 문 앞으로 갔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너무 무서워요..
아이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 눈을 보자 나도 덜컥 눈물이 났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어르고 달래며 한참을 기다렸다. 마침내 아이는 눈물을 그치고 교실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휴, 다행이었다.
문 앞에서 선생님이 물었다.
하이, 스위리, 왓츠유어네임?
준.서.
주운소우.. 음..?
이 반이 아니었다. 여기는 파트타임 클래스이고 올데이 클래스는 옆 쪽으로 3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딴 교실 앞에서 괜한 난리를 쳤다. 아이를 데리고 서둘러 다시 그쪽으로 걸어갔다.
올데이 클래스 앞에는 준서의 진짜 담임이 서있었다. 문 앞에 다가가자 준서가 2차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길게 울었다. 보조 선생님까지 붙어서 준서를 달래주었다. 우리는 아이를 겨우겨우 달래 교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교실 밖 창문으로 보니 Junseo라고 쓰인 의자에 아이가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준서의 그런 표정은 난생처음 보았다.
걸어서 교문 밖을 나오는데 발걸음이 정말 안 떨어졌다. 계속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이 가득했다.
1시가 되어 아내가 학교에서 준서를 데리고 왔다. 하루 종일 뭐했냐고 물어보니 그냥 앉아있었다고 했다. 너무 안쓰러워서 첫 등교 기념이라는 핑계로 장난감도 사주고 같이 많이 놀아주었다.
다음날 아침, 준서는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엄마, 아빠 합심하여 즐거운 분위기를 유도해보지만 아이는 그저 학교에서의 시간이 막막할 따름이었다. 같이 파이팅을 하며 아내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다녀온 아내에게 오늘은 어땠느냐고 물어보니 들어갈 때 울지는 않았는데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책상에 엎드리고 있더라고 했다. 마음이 참 아팠다.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힘든 등교의 연속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담임 선생님이 매일매일 간단한 간식을 싸올 것을 주문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간식을 물과 함께 싸줬다. 그런데 조금씩 남겨서 오더니 며칠 후에는 아예 간식을 안 먹겠다고 했다. 물만 먹겠다고. 그럼 간식 시간에 뭐할 거냐고 했더니 그냥 안 먹고 혼자 앉아있겠다고 했다. 그렇게 또 며칠을 물만 싸가지고 갔다.
준서는 한국 유치원을 다녀오면 친구들과 있었던 일, 오늘 배운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미국 학교에 다닌 이후에는 등하교 길에 학교 친구들 어떠냐고 물어봐도 그냥 모른다고 했고, 배우는 걸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언어가 문제였다.
다행인 것은 집에 와서는 엄마, 아빠와 잘 놀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못 노는 걸 만회해주려고 아이와 부지런히 놀아주었다. 아내와는 티 내지 말고 좀만 더 버텨보자고 했다. 결국에 준서는 잘 해낼 거라고.
그렇게 힘든 2주가 지나갔고 어느 순간 준서가 간식을 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하더니 친구들과 매일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고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학교에 갔고 다시 웃으면서 돌아왔다.
개학 40여 일이 지난 현재, 준서는 여전히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수업, 선생님, 친구들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없어진 듯하다. 이제는 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하며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편하게 이야기한다.
적응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결과, "아이들은 금방 적응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하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영어환경에 빨리 적응한다는 점에서는 맞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짧은 기간일지라도 아이들 역시 충분히 힘들어하고 아파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최소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없애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영어로 말해도 무서워하지 않고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온다면 걱정 없을 것이다.
여담으로, 준서 학교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Junseo를 다 "준쎄오"라고 불렀는데, 준서가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예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 같은 반 친구가 선생님들에게 얘는 준쎄오가 아니라 준서라고 알려줬다고 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아이 영문 철자도 pronounce를 고려해서 정한다면 그런 불편을 미리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에 아이를 데리고 올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