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간 어제는 블랙프라이데이(이하 블프)였다. 블프는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로, 가전제품, 의류, 신발 등을 싸게 파는 날로 유명하다. 할인폭이 상상 이상이어서 블프가 할인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남들만 싸게 사는 게 배 아픈 우리 가족은, 오후 즈음 근처 프리미엄 아웃렛으로 출동했다. 엄청난 인파로 인해 주차장 들어가는 것부터가 전쟁이었다. 하지만 육군병장 송병장은 화려한 코너링 스킬을 발휘하며 카니발을 무사히 주차라인에 얹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주차가 끝은 아니었다. 상점마다 이미 꽤 긴 줄들이 늘어서 있었다. 또한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미국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아, 이게 본토의 블프인가,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첫 블프에 조금 떨리기는 했지만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 봐야 얼마나 할인을 해주겠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도겠지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블프의 명성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가게들은 원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할인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장님이 미쳤어요를 현실로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들은 한국 가격 기준으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물건을 팔고 있었다.
나이키를 기준으로 하자면, 블프는 (평소에도 매우 저렴했던) "아웃렛" 가격에서 30프로를 더 할인해주고 있었다. 할인에 할인을 더해주는 것이다. 80불짜리 러닝화를 아웃렛에서 평소 40불에 팔았다면(이것도 무척 싼 가격이다), 이것을 28불까지 할인해서 팔고 있었다. 따라서 눈 돌아가는 정도를 넘어 영혼까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크록스의 경우, buy one get two free다. 한 짝 사면 두 짝을 공짜로 더 주는 것이다. 세 식구가 가면 40불에 신발 세 개를 신고 나올 수 있었다. 아웃렛판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은 악어들도 크록스를 신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다.
랄프로렌 폴로, 코치 등 다른 브랜드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다들 폭탄세일이었다.
이런 연유로 블프 당일 아웃렛은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의 득템을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이미 MSRP(소비자 정가)와 아웃렛 평소 할인 가격이 머릿 속에 있는 그들에게 블프의 핫딜 가격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일 것이다. 따라서 "어머 이건 꼭 사야 해!"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우리 가족 역시 놀라운 적응력으로 이러한 시류에 흽쓸리고 말았다. 아웃렛을 나올 때 보니 민서를 제외한 모두의 발에 크록스가 신겨져 있었다. 그리고 신발에 그려진 악어가 우리를 향해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웰컴투미국"
ps. 근데 아빠 내 크록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