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우리는 Pool Pass를 끊었다. 이 패스는 우리가 사는 Wheaton 시에서 운영하는 두 개의 동네 풀장을 여름 내내 이용할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이다.
어린 민서 제외 3인 가족인 우리는 이를 위해 총 156달러(18만 원 정도)를 지불하여야만 했다. 처음에는 좀 비싼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온 가족이 5번 정도만 가면 본전이 될 수 있어서 그냥 하기로 결정했다. 긴 여름이니 5번은 가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5번이나 갈까 하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준서와 나는 거의 하루 건너 하루 수영장에 출근도장을 찍을 정도로 열심히 다니고 있다. 매표소 알바하는 미국 친구들이 매우 자주 오는 우리 부자(준서와 나)에 대해 여러모로 궁금해할 것 같다. 자네들 도쿄 올림픽 나가기로 되어 있는가.
말이 동네 풀장이지 사실상 워터파크에 가깝다. 천조국 동네 풀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얘네는 지방예산을 주로 공원이나 풀장, 도서관 등에 몰빵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시설이나 운영 상황이 매우 좋다.
일단 꽤 높은 슬라이드(미끄럼틀)가 세 개 있다. 바디 슬라이드도 가능하고 튜브도 이용 가능하다. 여기에 다이빙 연습이 가능한 스프링보드도 네 개나 있다. 추가로 25미터 랩 수영이 가능한 라인이 세 개 있고, 얕은 곳에서 깊은 곳까지 수심이 천천히 깊어지는 메인 풀이 백사장 모양으로 펼쳐져있다. 한편에는 비치 발리볼 코트 네 면이 설치되어 있고, 비치의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상적인 것은 라이프가드 숫자인데, 여기저기 곳곳에 상당히 많이 배치되어 있다. 대략 10미터 간격으로 한 명 정도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은데 늦은 시간이나 좀 추운 날에는 수영하는 사람보다 라이프가드가 많을 때도 있다.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매우 안심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암튼 날도 덥고 해서 준서와 둘이, 때로는 아내, 민서와 함께 풀장에 자주 놀러 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국 아이들이 물에서 노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특이한 점은 자유형 등 정식 수영을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고 다들 다이빙하거나 잠수를 하면서 논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이빙은 스프링보드에서 하는 다이빙과 그냥 풀 옆에서 뛰어드는 다이빙 모두를 의미하는데, 특히 주말에 풀에서 놀고 있으면 양 사이드에서 첨벙 뛰어드는 수많은 아이들을 목격할 수 있다. 한국처럼 다이빙 금지라고 바닥에는 적혀있지만 동네 로컬룰인지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세네 살 아이들도 뛰어들고 아빠 엄마들도 뛰어든다. 여기가 다이빙의 나라인가 싶다.
다이빙보다 더 대박인 것은 잠수다. 여기서 잠수는 숨을 참고 물속에서 버티는 수준을 넘어선다. 여기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속에서 물구나무를 선다. 처음 풀에 갔을 때 수많은 사람 다리가 물 위에 올라와 있어서 놀란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뭐 그러려니 한다. 미국 아이들은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위해 풀에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들 열심히 거꾸로 선다.
준서 이야기를 하자면, 6월 중순, 준서를 데리고 처음 풀장에 갔을 때 아이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었다. 수영은커녕 가슴 높이 물에서 그저 걸어 다니기만 했었다. 무서워서 얼굴을 물에 못 넣을 정도였으니 여기 아이들이 하는 잠수, 다이빙은 언감생심 남의 얘기였다. 따라서 준서는 그저 하염없이 물 안에서 걸어 다녀야만 했다.
그러다 6월 말, 시에서 하는 써머 캠프를 보냈는데 그 안에 수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며칠 뒤 준서가 시무룩해져서 왔기에 물어보니 친구인 Glen이 다이빙하고 잠수도 하고 수영도 잘해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기회다 싶어 준서를 데리고 풀장에 가서 잠수를 가르쳤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는 것 같더니 결국에는 코 안막고 잠수에 성공하였다. 아마도 글렌이 잠수 잘하는 거에 자극을 받은 듯했다.
잠수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때, 학교 친구 Quinn과 함께 풀장에 갈 기회가 생겼다. 준서는 퀸에게 잠수 실력을 선보이면서 선빵을 날렸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퀸은 물구나무서기에 이어 물속에서 한 바퀴 돌기까지 성공하였다. 퀸은 물 안에서 거의 인어 수준이었다.
시무룩해진 준서는 다음날부터 나에게 물구나무서기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물속에서 한 손으로 땅 짚는 것을 연습시키고 그다음에는 두 손으로 짚는 걸 연습시켰다. 그러다 오늘 느닷없이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하였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거의 한 달만에 가슴 높이 물에서 하염없이 걷기만 하던 아이가, 다이빙하고 잠수하고 물구나무서기가 가능한 아이로 변신한 것이다. 외부 자극의 긍정적 효과 덕분이었다. 아이는 또래 친구들의 용감한(!) 모습을 보고 본인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것이다.
이후 수영에 재미를 붙인 준서 덕분에 우리는 매일 락스 물에 몸이 절여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준서가 물에서 자신 있게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몹시 뿌듯해진다. 물론 눈 뜨면 수영장 가자고 하는 아들 덕에 나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ps. 물안경 쓰고 땡볕에서 수영만 하니 눈만 하얘진 준쎄오, aka 송너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