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여기저기 떠도는 중이다. 떠돌면서 새삼 미국 땅이 넓기도 하지만 그만큼 안 쓰는 땅도 정말 많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네바다에서 유타 넘어가는 동안 65마일 정속으로 4시간을 달렸는데(416킬로미터), 달리는 내내 본 것은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다소간 차이만 있을 뿐,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등 다른 주에서도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인가는커녕 초록색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풍경의 연속에 멘붕에 빠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어쩌면 이게 진정한 미국 대륙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기네 땅 안 쓰는 거야 땅주인 마음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여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인적 드문 곳을 이동할 때면 통신망과 기름 공급이 언제나 문제가 되었다. 통신은 당연히 No service 상태였고, 주유소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하나씩 있었다.
알래스카에 이어 여기서도 차 고장 나면 끝장나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지속적으로 엄습했다. 심지어 30분 넘게 도로를 달려도 다른 차 하나 발견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 역시 로드트립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대외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우리 가족의 이번 여행은 좀 특별했다. 만 17개월 아기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아장아장 걷기는 하지만 아직 걸음이 완벽하지 않은 민서는 아기띠를 하거나 유모차를 태워서 데리고 다녀야 했다. 그마저도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는 거부하기 일쑤여서 들쳐 안거나 매고 다녀야만 했는데, 그건 온전히 아내와 나의 몫이었다. 로키산맥을 그렇게 올라갔고 델리케이트 아치를 그렇게 보러 갔다.
아빠와 엄마는 땀범벅에 힘들어하는데 민서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딜 가나 싱글벙글했다. 남녀노소 아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에게 그런 민서는 인기 만점일 수밖에 없었는데, 쏘 큐트, 어도러블 등과 같은 칭찬을 여기저기서 늘 받았다. 부모의 근육통 속에 딸아이의 사회성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민서 외에 준서도 있었다. 만5세 준서는 준서대로 손이 많이 갔다. 차에 타면 주스 달라, 달콤한 것 달라, 비디오 틀어달라 등등 클레임을 걸어왔다. 땅콩만 안 달라고 했지 퍼스트 클래스 손님이 따로 없었다. 차를 좀 오래 탄다 싶으면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왜 가야 해요, 안 가면 안 돼요, 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기도 했다. 내가 성실히 답을 해주려고 하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할 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정말 회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같이 다니다 보면 기대치 않은 즐거운 일들도 많이 생겼다.
지난 주말 그랜드캐년에 갔을 때의 일이다. Grand View Trail 이라는 곳에서 내가 준서와 민서를 데리고 있었다. 차에서 오랜만에 벗어난 민서는 종횡무진 아장아장 트레일 길을 걸어 다녔고 나는 그런 민서를 쫓아다니느라 바빴다.
민서야, 거기 가면 안돼. 이리 와.
그 순간 옆에 있던 중년 부부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분이세요?
네, 한국분이세요?
네, 어디서 오셨어요?
저희는 일리노이, 어디서 오셨어요?
우리는 네바다에서 왔어요.
그 순간을 놓이지 않고 준서가 한국말로 크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준서의 한국말 인사에 나와 중년 부부 사이의 긴장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미국 사는 이야기를 나눴고, 남편분이 미국 의과대학 교수라고 하셔서 코로나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랜드 캐년을 앞에 두고 나와 교수님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준서는 옆에서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준서와 민서에게 밥을 한 끼 사주고 싶다고 하셨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Bright Angel Lodge 근처에서 샌드위치로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IMF 1년 전인 1996년 미국에 오셨던 두 분은 석사 2년 차에 700원이던 환율이 2100원까지 오르면서 갈림길에 서게 되셨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버스 운전과 여러 궂은 알바를 통해 학문을 이어가셨고 결국 세포생리학 박사를 받은 후 네바다 주립대 의과대학 교수가 되셨다고 했다. RNA를 20년 넘게 연구하셨다고 하셨는데, 현재 화이자, 모더나 백신이 바로 RNA를 활용한 백신이라고 했다.
꽤 긴 대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이었는데, 델타 변이는 이미 초기부터 예상되었던 7가지 변종 중 하나로 진짜 변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향후 5년 내에 치명률이 높은 진짜 변이가 나타날 수 있어 단기가 아닌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짧지만 즐거웠던 그랜드캐년 앞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교수님 부부와 작별인사를 했다. 두 분은 가는 순간에도 준서와 민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본인 애들이 저만 할 때 많이 다니지 못한 것이 아쉬우시다며 행복한 시간 많이 가지라고 덕담도 해주셨다. 그리고 두 분은 손을 꼭 잡고 가셨다.
준서, 민서가 아니었다면 두 분과의 인사도 대화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가 없었다면 굳이 말 걸 필요 없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두 아이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준서는 왜 또 차에 타야 해요, 라고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었고 민서는 저만치에서 고꾸라져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또다시 수련의 시작이었다. 참아야 하느니라.
ps. 솔트레이크 서울식품 Seoul Market 주인아주머니는 아이들에게 초코파이를 선물로 주셨고, 한식당 Stun cube 주인아주머니는 준서에게 딸기 우유를 선물로 주셨다. 아이들 덕분에 한국인의 정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