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잠시 머물다 가는 거니까 너무 욕심내지 말자.
작년 가을, 준서를 처음 미국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서 내가 아내에게 한 말이었다. 학교를 다니다 보면 여기 살고 있는 미국 아이들이 하는 만큼 준서에게도 다 해주고 싶겠지만, 그건 욕심일 테니 포기할 건 포기하고 살자는 의미였다.
우리는 외국인이고 거기다 말도 잘 안 통하니 깊은 사귐은 어려울 것이고, 또한 2년이라는 기한도 정해져 있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내심으로는, 혹시나 욕심내다 보면 아내와 준서가 그로 인해 상처 받을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아예 차단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쨌든 아내 역시 인정했고 쿨하게 동의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욕심이 안 날 수는 없었다.
학기초, 준서반 친구가 생일인데 준서가 초대를 못받아 마음이 아프기도 했었고, 친구들끼리 플레이 데이트하는데 준서가 끼지 못해 괜스레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다. 물론 정착 후 한 두 달만에 누군가와 친해지고 초대를 받는다는 것이 극히 어려운 일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자식 문제이기에 calm down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내에게는 계속 우리 욕심내지 말자고 했다. 우리는 외국인이고 잠시 머무는 사람들이니 자연스럽게 있다가 가자고 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다운 법이니.
그러면서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내의 인싸기질이었다. 낯을 가리고 내성적인 나와는 달리, 아내는 낯선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는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이를 바탕으로 준서 친구 엄마들과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준서 역시 반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같이 노는 친구들이 생겼고 따로 플레이 데이트해서 만나는 친구들도 생겼다. 생일 초대도 여러 번 받아서 다녀오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아내는 아내대로, 준서는 준서대로 하고 싶은 일들이 추가로 생기기 시작했다. 아내는 준서 친구 누가 뭘 하면 그걸 해주고 싶어했고, 준서는 다른 친구가 어떤 걸 하면 그걸 하고 싶어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생일파티였다. 한국과 달리 여기는 친한 친구들과 그 부모들을 집으로 초대해 가든파티 형식으로 생일파티를 여는 게 관례 같았다. 다들 단독주택에 살고 앞뒷마당에 잔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올봄부터 아내는 생일파티에 대해 화두를 던졌고 나는 사실 좀 부정적이었다. 우리가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거나 아님 준서 친구들이 거의 안 오거나 등등의 이유에서 좀 망설여졌던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하면서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여름이 되었고, 준서 생일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준서가 뜬금없이 생일파티에 초대할 명단을 우리에게 불러주기 시작했다.
글렌, 퀸, 사이먼, 슬론, 세슬리, 마야...
준서는 당연히 생일파티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따라서 우리는 생일파티를 준비해야만 했다.
꽤 오랜 기간 준비 후에 드디어 오늘 준서의 생일파티가 열렸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준서 친구 7명과 그 형제자매 포함 총 11명의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준서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주었다.
아내는 김밥과 소떡소떡을 준비했는데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인기가 있었다. 또한 아이스박스 하나 가득 담긴 맥주와 탄산수, 주스를 모두가 맛있게 먹어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케잌 타임이 진행되었다. 놀이를 마친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같이 모여서 준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준서는 모두의 축하 속에 촛불을 끄면서 만 6살이 되었다.
우리가 미국에 온 지 일 년이 조금 지났다. 만약 일 년 전 우리가 오늘의 생일파티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면 너무 꿈같은 일이라 현실성이 없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준서의 노력으로 오늘의 아름다운 생일파티가 완성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오늘은 아마도 미국에서 보낸 날들 중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ps. 준서 중심 시계방향으로, Maia, Glen, Quinn, Willow, Cecily, Sloan, Sylvie, Adam, Riam, Eloise,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렴.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