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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Sep 03. 2021

52. 시카고 트라이애슬론

나의 철인 3종 도전기


1. 시작


여름 더위가 시작될 무렵인 지난 5월, 나는 도형이와 시카고대 교정을 산책하고 있었다. 도형이는 시카고대 Booth MBA에 다니는 90년생 동생으로, 시카고 물정 어두운 나를 이래저래 잘 케어해주고 있는 착한 동생이다. 20살에 미국 노스웨스턴대 학부로 유학 와서 벌써 10년 넘게 시카고에 살고 있으니 미국 생활은 어느 정도 도가 텄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작년 가을학기 초에 처음 만나 매주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었다. 남자끼리 무슨 할 말이 많겠냐마는 한 번 만나면 미니멈 3~4시간씩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언제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그날도 우리는 오후 3시에 만나 해질 무렵까지 대학 교정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다 내 차 앞에서 이제 작별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도형이가 뜬금없이 말했다.


- 형, 저 올 여름에 시카고 트라이애슬론 대회 나가려고요. 어제 등록했어요.

- 응..


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약간 멍해져 있었다.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그 단어가 남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슬몃 들었다.


결혼 전인 2012년 무렵, 나는 철인 3종 대회를 나가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 나가게 되었고 이제는 그저 마음속 버킷리스트로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 그거 힘들지 않아?

- 괜찮아요. 저 17, 18년도에 두 번 했었는데 괜찮았어요.

- 그래? 실은 나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 그래요? 그럼 같이 하실래요?

- 그럴까?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오는 내내 가슴이 떨렸다. 오랜 꿈이었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을까?


집에 도착해서 아내와 상의했고, 아내는 흔쾌히 나의 도전을 지지해주었다. 나는 곧바로 온라인을 통해 선수 등록을 마쳤다. 2021년 5월 25일, 대회를 정확히 95일 앞둔 때였다.






2. 결혼 전


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서점에 가서 한 권의 책을 샀다.


"ABC 철인 3종 경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선거업무가 끝났고, 그저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아주 얇은 기본서였다. 나는 그 책을 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는 사무실 책상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꽂아놓았다.


한 번 시작해볼까?


나는 제일 먼저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안양종합운동장 월수금 오전 7시 직장인 수영반, 명칭은 돌고래반이었다. 초등학교 때 수영을 배운 적이 있었지만 정말 오래전 일이었다. 기초부터 제대로 다시 배워보자는 마음에 초급반부터 시작했다.


말이 오전 7시지 직장인이 따박따박 출석하기 쉬운 시간대는 아니었다. 수업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아침 6시에 일어나야만 했다. 월수금마다 고난의 행군이었다. 하지만 뭔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아침 수업은 물론 퇴근 후에 시간이 나면 자유수영을 하고 집에 가기도 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다. 오리발 사서 접영까지 배우고 나서야 수강을 멈췄는데, 당시 주말에 가서 연습하면 25미터 60번 터치 (1.5km 수영) 정도는 쉼 없이 해낼 정도가 되었다.


자전거도 샀다. 주로 주말이나 퇴근 후에 자전거 길을 달렸다. 당시 살던 의왕 원룸 바로 앞에 학의천이 흘렀는데 자전거 길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이 학의천 자전거 길은 안양 비산동 부근에서 안양천으로 합쳐져 광명, 고척, 목동을 거쳐 한강까지 연결되었다. 총길이 편도 30km였다. 주말에 이 길을 따라 한강을 다녀오기도 했다. 평일 저녁에는 금천 또는 가산까지만 갔다 돌아오는 왕복 40km, 철인 3종 풀코스를 주로 연습했다.


달리기는 자전거길 바로 옆 산책로를 따라 달렸다. 비산동 내비산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딱 10km 코스가 되었다. 빡세게 내달리면 기록이 50분 안쪽으로 나올 정도로 당시에는 몸이 참 좋았다. 젊기도 했고.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면서 늦봄과 한여름을 보냈다. 하지만 여름이 끝날 무렵 회사가 대선 국면에 들어섰고,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쉽게도.





   

3. 다시 시작


예전에 열심히 연습했다고는 하지만, 벌써 9년 전 일이었다. 그래도 아직 95일이나 남았잖아, 라고 애써 위로해보지만 막상 준비하자니 모든 게 막막했다.


일단 만만한 러닝부터 다시 시작했다. 운 좋게도 집주인이 남겨놓고 간 러닝머신이 차고에 있었다. 일단 8km/h 속도로 달려보았다. 후달렸다. 10분 달렸는데도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그날 이후 하루에 30분 이상은 천천히 걷더라도 무조건 뛰자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1주, 2주 지나자 점차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은 자전거였다. 작년에 NBA 유니폼 입은 흑인 청년에게 산 중고 MTB가 아직 집에 있었다. 집 근처 Illinois Prairie Path에서 우선 연습해보기로 했다. 포장도로는 아니었지만 자갈이 거의 없는 산책길이어서 자전거 연습에 안성맞춤이었다. 집에서 St. James Farm까지 다녀오면 대충 거리도 20km 정도 되어 하프코스 연습에 딱이었다. 다만 처음에는 10km만 타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다 타고나면 꽤 많이 뭉치기도 했다. 그래도 이틀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타기로 마음먹고 꾸준히 연습했다. 그리고 중간에 로드바이크를 구입해서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다. 역시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수영이었다. 가장 연습이 필요한 종목이기도 했다. 일단 집 근처 Rice Pool이 6월 12일부터 개장이었다. 시즌권(Pool Pass)을 끊고 거의 매일 같이 수영장에 출근했다. 처음에는 25미터 레인 왔다 갔다 하기에도 벅찬 수준이었다. 호흡도 가빠지고 팔 힘도 부족했다. 하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니 7월 초부터는 25미터 30번 터치가 가능해졌고 7월 중순 로드트립 출발 전에는 휴식 없이 자유형 60번 터치(1.5km)까지 성공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락스 물에 눈밑이 허는 고통을 이겨내고 꾸준히 연습한 결과였다.


세 종목의 연습이 어느 정도 진행되니 각각의 종목을 연계하여 연습할 필요가 생겼다. 철인 3종은 수영 - 자전거 - 러닝을 한꺼번에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체력이 갖추어졌다고 생각한  6월 말부터는 자전거 20km 타고 바로 러닝 5km를 뛰는 근전환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영까지 풀코스가 가능해진 7월 중순 이후에는 격일로 자전거+러닝 하프 / 수영 풀코스 연습을 병행하였다.


이때부터 아내는 여기가 태릉인지 시카고인지 헷갈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진 연습 덕분에 나는 10년 만에 가장 좋은 몸상태를 가질 수 있었다. 도쿄행 티켓, 아니 철인 3종 완주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4. 길 위에서


한참 체력이 좋아진 7월 말, 우리 가족은 서부로 로드트립을 떠났다. 이미 예정된 여행이었다.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16박 17일의 대장정이었다. 아무리 철인 3종 시합이 있더라도 가족 팽개치고 운동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예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서부 투어에 나섰다.


하지만 사실 좀 불안했다. 햄버거와 피자로 끼니를 때우고 하루 6시간씩 운전을 하다보면 금새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냥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운전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팔굽혀펴기를 100번씩 했다. 그리고 숙소에 가면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러닝을 30분씩 뛰었다. 호텔 풀장이나 국립공원 호수에서 수영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극성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만큼 간절한 꿈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암튼 나의 불안함은 8월 9일 여행에서 돌아온 당일 오후에 풀장에 가서 수영 풀코스 연습을 하고 다음날 자전거+러닝 하프 연습을 하고 나서야 가실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후 D-Day인 8월 29일까지 꾸준히 연습했다. 연습이 쌓일수록 완주에 대한 자신감도 증가할 수 있었다.





5. 대회 전 날


시카고 트라이애슬론 대회는 38년 전인 1983년부터 시작된 행사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대회 중 하나였다. 대회는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진행되며, 내가 등록한 올림픽 코스의 경우 미시간 호수에서 1.5km 수영, 레이크쇼어 드라이브 등 도심 관통 도로에서 40km 자전거, 미시간 호수변 러닝 10km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회 하루 전날, 시카고 힐튼 호텔로 향했다. 그곳에서 오리엔테이션과 패킷 수령이 있었다. 호텔 안에는 다부진 체격을 가진 남녀노소 선수들이 밀집해 있었다. 선수들을 보자 대회 참가가 비로소 실감 나기 시작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트랜지션 에어리어로 가서 미리 자전거를 거치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고 내일 실제 경기를 뛰기만 하면 되었다. 자전거에게 잘 부탁한다고 속삭인 후 자리를 떠났다.


대회 전날은 도형이네 집에서 묵기로 했다. 도형이는 미시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대회장 바로 뒤에 있는 스튜디오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도형이가 직접 저녁식사를 차려주었다.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저녁시간을 보낸 후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는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거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뜬 눈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다 겨우 1시간 남짓 잠을 잔 채 핸드폰 알람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 큰일 났다.





   

6. 완주


새벽 4시 30분, 이미 많은 선수들이 트랜지션 에어리어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나 역시 자전거 아래에 러닝과 사이클 짐을 정리하고 천천히 수영 슈트를 입기 시작했다. 거의 잠을 못 자긴 했지만 긴장감 때문인지 정신만은 매우 또렷했다.


조금 지나니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잔잔한 미시간 호수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올랐다. 그 사이로 수많은 선수들이 긴장된 얼굴로 몸을 풀고 있었다. 나는 35-39세 그룹에 속해있었고 파란색 수영모를 쓰고 있었다.


6시, 드디어 첫 번째 그룹이 출발하였다. 그리고 내가 속한 그룹은 12번째로 출발이 예정되어 있었다.


6시 44분, 드디어 우리 그룹의 차례가 되었다. 입수 신호에 따라 천천히 미시간 호수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물이 차가웠다. 오픈워터 수영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슈트 입고 수영도 처음이었다. 순간 연습한 대로 될지 의문이 들었다.


4분 간의 물 속 워밍업을 마치니 출발 호각이 울렸다. 바로 자유형을 시작했다. 그런데 긴장감 때문인지 호흡이 가빠졌고 스트로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 어, 왜 이러지


당황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더더욱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거기다 슈트의 탄력으로 팔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미리 슈트를 입고 오픈워터 수영을 연습해보지 않은 게 큰 실수였다.


내가 어버버 하는 사이 파란색 수영모를 쓴 같은 그룹 선수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나 홀로 미시간 호수 한가운데 떠있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여전히 호흡은 잡히지 않았고 멘탈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4분 후 다음 그룹의 출발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시끄러운 물소리를 내며 내 옆으로 보라색 수영모를 쓴 선수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난 3개월간의 연습을 이렇게 허무하게 날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다시 한 번 해보자.


그래서 정말 억지로 억지로 멘탈을 다 잡으며 천천히 천천히 한 팔 한 팔 내젓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수영을 하여 겨우 500미터 라인을 통과했다. 아직도 1km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법처럼 긴장이 풀어지며 호흡이 잡히기 시작했다.


또다시 4분 후 그 다음 그룹 출발 호각이 울릴 즈음에는 다행히 그간 연습한 페이스대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호흡은 편해졌고 팔 동작도 수월해졌다. 스트로크 50번 하고 고개 들어 방향 잡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종료지점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감격스럽게도 생애 첫 오픈워터 1.5km 수영을 끝낼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내 양 쪽 팔을 잡고 육지로 끌어내는 순간, 아 이제 됐다, 하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


이후 자전거와 러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실전처럼 평소에도 연습했기에 힘들지 않게 완주할 수 있었다.


러닝 마지막 200미터 정도 앞두고 오른쪽으로 크게 도는 코너가 있었다. 그곳을 돌았더니 <FINISH> 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진 결승선이 눈앞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 관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그들은 내게 큰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주었다. 관중의 격려 속에 결승선을 향해 뛰어 들어가는데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지난날의 노력이 그 순간 모두 보상받는 듯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니 그 옆에 아내와 준서, 민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한 연습 기간 내내 내가 완주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 나의 가족이었다.


꿈을 이룬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ps. 결승선 통과할 당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 있는 곳으로 갔을 때 몰래 준서 얼굴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엄청 감동받은 얼굴이었다. 내게는 그 표정이 메달보다도 더 값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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