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서민서패밀리 Oct 11. 2021

53. 축구리그 in 시카고



지난 봄시즌에 이어 가을시즌에도 아이들 축구리그 코치를 했다. 봄에 한 번 겪어보니 할만하기도 했고 같이 했던 Trevor (준서 친구 Glen 아빠) 와 호흡도 잘 맞아서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원래 다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리그는 지난 8월 9일 시작해서 어제 10월 9일 자로 종료했다. 10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매주 수요일마다 연습을 했고, 토요일마다 다른 팀과 시합을 했다. 연습은 총 9회, 시합은 총 7회 이루어졌다.


봄 시즌은 킨더가든(유치원) 팀이었지만 이번 가을시즌은 1학년팀이었다. 미국은 가을에 학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준서도 이제 1학년이 되었다. 내가 1학년 학부형이라니. 


1학년 경기는 킨더와는 좀 달랐다. 일단 골대 사이즈와 경기장 사이즈도 커졌다. 그리고 기존 5:5로 하던 경기가 8:8로 운영되었다. 골키퍼도 생겼다. 스로인과 골킥의 개념도 새로 들어왔다. 따라서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했다.


Trevor와 나는 리그 초반 아이들이 바뀐 룰에 익숙해지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 훈련을 진행하였다. 골키퍼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설명하고 골킥과 키핑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볼이 사이드라인으로 나갔을 때 양발을 땅에 붙이고 머리 위로 스로인을 던지는 방법도 여러 차례 설명해주고 반복 연습시켰다. 아이들은 어려운 내용들도 금방금방 습득해서 잘 따라와 주었다.


실전 게임은 2주차 토요일부터 시작이었다. 우리는 게임 전 두 번의 연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바뀐 룰을 숙지시킬 수 있었다. 코칭 덕분이었는지 첫 번째 게임에서 아이들은 변화된 룰에 대응해서 잘 플레이 해주었다. 다만, 아쉬운 건 경기력이었다. 패싱, 드리블, 슈팅 등 전반적인 경기 이해도가 부족해 보였다.


같은 생각이었는지 Trevor는 다음 연습 때 패스와 슈팅을 효과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훈련 방법들을 준비해왔다. (Trevor는 본업인 변호사 말고 실제 축구감독을 했어도 잘 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중앙선에서 1번 아이가 투터치 후 2번 아이에게 패스하고 2번 아이가 1번 아이에게 다시 패스 후 슈팅을 연계하는 것이다. 흔히 2:1 패스라고 부르는 것인데 패스 후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받을 곳으로 바로 뛰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게 만드는 좋은 훈련방법이다.


이외에도 모든 아이들이 골키퍼 역할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연습 중 돌아가면서 골키퍼 역할을 맡겼다. Sharks and Minnows 게임을 통해 드리블 훈련도 지속적으로 시켰다. 또한 스로인 상황에서 상대방 커버하는 방법과 공격수로서 공간을 만드는 방법도 계속 연습시켰다. 힘들고 어려운 연습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재밌게 잘 따라와 줬다.


하지만 여전히 실제 시합에서는 연습의 효과가 잘 안 나타났다. 배운대로 열심히 해보려고 하지만 뭔가 잘 되지 않았다. 좀 얼어있는 느낌도 들었다. 실전에서는 공격과 수비 간 간격도 넓었고 공 주위로 아이들이 뭉쳐서 움직이는 경향도 자주 나타났다. 패스 연계나 드리블 돌파도 잘 안되었다. 총 7번의 시합 중 6번의 시합에서 우리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Trevor와 나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마지막 시합 전 마지막 연습에서도 우리는 해오던 대로 패스와 슈팅을 연습하고 드리블을 연습했다. 코치가 각 팀에 들어가 연습경기도 같이 하면서 아이들을 독려했다. 이미 9주 동안 해오던 거라 아이들도 이제는 모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1:30 마지막 시합이 열렸다. 나는 아무런 기대 없이 시합에 임했다. 그런데 시작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Dylan이 멋진 오른발 슛을 성공시켰다. 예상치 못한 선제골이었다. 그리고 그 골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아이들이 몸놀림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드리블도 하고 슈팅도 하기 시작했다. 골키퍼는 몸을 날려 공을 막아내기도 했다. 


경기 내내 Trevor와 나는 서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전 6경기에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압도적인 경기력이었다. 나는 휴식시간에 Trevor에게 Real Madrid 감독이 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과는 6:0 완승이었다. 9차례의 연습이 드디어 마지막 경기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정말 기뻤다.


경기 끝나고 상대팀과 하이파이브를 한 후 우리 팀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늦여름부터 그라운드에서 같이 땀 흘리며 9주간 함께 지낸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이었다. 얘들아, 내년 봄 시즌에 다시 만나자!



(사진 왼쪽부터) Wyatt, 준서, Nathan, Dylan, Julien, Will, Glen


(사진 이외에 Simon, Alex, Jack)





ps.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다른 아이들은 다 부모한테로 가는데 준서가 그라운드에 남아있었다. 무슨 일이지 하고 보는데 혼자가 아니라 상대팀 아이랑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토트넘과 울버햄튼 경기가 끝난 후 손흥민, 황희찬이 그라운드에 남아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같았다. 


그런데 준서는 같은 학교 친구들 외에 이곳에 아는 아이가 없었다. 여기는 근처 학교 두세 개를 묶어 한 팀을 만드니까 저 아이는 분명 다른 학교 아이일 것이다. 나는 신기해하면서도 그냥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중에 준서가 오길래 물어보았다. 걔 누구냐고.


준서왈, 같은 반 친구에요. 


응??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같은 반 친구 Luther였다. 그 아이 아빠를 만나보니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Emerson 다니는 1학년 중에 Luther만 홀로 다른  학교 아이들과 한 팀에 배정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아빠 그 팀에서 코치도 하고 있었다. Wheaton시 공무원이 공무원한 것인가.


뭐 암튼 당시 상황은 정말 손흥민, 황희찬이었다. 같은 반(대한민국) 친구가 리그(프리미어) 시합에서 서로 상대팀으로 만나 대결하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