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둔 아내의 일기, 넷

by 준서민서패밀리


오랜만에 전하는 아내의 일기다. 아내는 일기를 꾸준히 쓰는데 가끔 내가 보내달라고 하면 한 편씩 보내준다. 아내와 내가 키우는 우리 집 두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아내가 직접 쓴 글을 내가 조금 수정하여 여기에 옮겨둔다.






< 9세 송준서의 슬기로운 준서생활 >


9세 준서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은 알아서 하고, 본인이 싫어하는 것은 알아서 안 하는 대한민국 초딩2학년이다. 많이 놀고 크게 웃고 하루하루가 신나고 온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아이다. 가끔 신이 나거나 짜증이 날 때 목소리와 행동이 점점 커져서 내가 당황할 때도 있지만, 그건 아주 가끔이고 대체로는 정상적이고 옳은 방향으로 잘 자라고 있다.

1학년 겨울방학까지는 방과 후에 태권도 차량에 탑승해서 태권도를 다녔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된 3월부터는 태권도 차량은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닌다. 약간 애매한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학교까지 찻길을 건너지 않고 편도 도보 15분이다. 그 긴 거리를 등하교 시에 씩씩하게 걸어 다닌다. 태권도에 가기 위해 아침에 태권도가방을 챙겨 나가서 하교하면서 바로 태권도장에 간다. 물론 승찬이라는 친구와 함께지만 그래도 기특하다.


준서는 가방과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고 교재 한 번 안 놓고 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각도 안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할 일도 스스로 한다. 하루에 할 일 중 영어(집중듣기, 책읽기)만 남겨두고 한자, 수학교재를 푸는 것이다. 수학이 어려운 경우 1권 정도는 저녁시간에 풀기 위해 남겨두기도 한다.


물론 어린아이가 스스로 아침에 할 일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방과 후 집에 와서 저녁 8시까지 닌텐도 게임(30분) 및 TV 시청(1시간)을 할 수 있는데 그걸 편안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유가 어찌 됐든 자의로 아침 7시(가끔은 7:30에) 일어나 눈부비며 소리치고 책상에 앉는 2학년이라니, 내 뱃속에서 나온 아들이지만 놀랍고 신기하다. 솔직히 그 모습을 보면, 뭐가 돼도 될 놈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아침에 일어나 등교시간까지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준서는 매일 시간과의 전쟁을 한다. 시계를 보고 발을 동동거리며 급하게 푸는 것이 일상이다. 음식을 급히 먹으면 안 되듯 공부도 마찬가지라며 급하게 대충 하는 건 안 하니만 못하다 매번 잔소리하지만, 엄마의 잔소리는 귓등으로 스칠 뿐이다. 물론 이것 또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준서가 스스로 깨닫고 개선해 나갈 것이라 기대한다.


준서는 잔소리가 필요 없다, 아니해서는 안 되는 스타일이다. "송준서"라 쓰고 "지 아빠"라 읽는다. 어머님이 남편 어린 시절을 말씀하실 때 은근 자랑인가 했는데, 겪어보니 진짜였다.


준서는 한자, 수학교재를 끝내고 닌텐도 게임하는 게 원칙이지만 가끔은 수학을 남겨두고 게임을 먼저 하고자 할 때가 있다. 준서 나름의 딜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의 생각을 꺾지 않고 그대로 딜을 수용해 준다. [사실은 꺾어보려 했지만 애가 누워서 짜증 부리며 버티고 말도 안 듣길래 이건 어차피 시간낭비 감정소모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딜을 수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항상 자신의 말을 지킨다. 지 아빠 닮아서 말한 건 칼 같이 지킨다.


1학년 겨울방학 후반부터 40분 혼자 읽기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사실 둘째 민서 자기 전에는 책을 읽어 줄 수가 없다] 나무집시리즈로 혼독에 탄력이 붙더니 도서관에서 빌려다 준 깜냥시리즈, 엽기과학자 프레니는 후루룩 앉아서 내리 3권을 읽어낸다. 내가 함께 하기로 약속한 '자기 전 30분 책 읽어주기'만 성실히 지키면 될 것 같다. 동시든 역사책이든 다양하게. 아들에게 책 읽어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내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리.


준서의 니즈를 파악하고 흥미를 알아내 재미있는 책들, 관심 있어하는 분야를 이어 주기만 하면 잘 자랄 것이다. 현재 꿈이 과학자이고 과학실험을 하고 싶어 하는데 바로 과학학원을 등록하기보다 책을 보고 과학다큐 같은 걸로 호기심과 지적 허영심을 이어주려 한다. 어제 당근마켓에서 '내일은 실험왕' 실험키트를 일단 샀고 집에 오면 해오름 도서관에서 실험왕 책을 빌릴 예정이다. 아이는 열두 번도 더 변하니 이 아이의 꿈이 얼마나 다양해지고 형형색색 다채로워질지 기대된다.


준서의 다양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도록 격려하고 내가 이해하도록 노력은 하지만 늘 부족함을 느낀다. 어제 어린이 대공원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타는데 자전거 뒤에 한참을 서있다가 다른 아이가 갑자기 껴들어도 아무 말 안 하고 뒷걸음질 치는 준서의 모습이 꼭 어릴 적 내 모습 같았고 내성적인 대한민국 첫째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무 말 안 해야지 아이들 일에 안 끼어들어야지 속으로는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준서 대신 끼어든 아이에게 “아까부터 이 친구가 기다렸거든. 친구가 먼저 좀 할게”라고 하는 나를 발견한다. 남편이 나보고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러면서 아들과 같이 성장하려고 한다. 아들아, 엄마도 많이 노력할게. [반면 둘째 민서는 주변에서 누가 뭐라든 어떤 상황이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본인이 하고 싶을 때까지 하고 하기 싫을 때 그만한다. 부러운 부분이다.]


아들의 마음그릇. 많이 많이 넓혀주자. 아니 그냥 냅두자. 알아서 잘 클 거야 걔는. 한다면 하는 아이. 끝을 보는 끈기 있고 무한긍정인 준서.


자력갱생!!! 잔소리하지 말고 나부터 크자!

책 읽고 운동하고 대화(칭찬)하는 프로 엄마로!






< 4세 둘째 송민서의 슬기로운 민서생활 >


민서가 3월 2일 어린이집에 등원한 이래 3월 27일 오늘 처음으로 안 울고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여 오늘은 각 잡고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랑 같이 학교 가고 싶어~ 엄마랑 같이 어린이 학교 가고 싶어~”


아침부터 눈물 콧물 우는 소리 삼중콤보를 들려주며 가던 그녀가 드디어 오늘은 울지 않고 등원했다. 사실 삼중 콤보는 이미 준서 때 겪은 일이라 매정한 이 엄마는 눈하나 깜짝 안 하고 어린이집에 보내곤 했다.


능수능란한 어린이집 선생님이 민서의 핑크몬스터 신발에 대해 속사포처럼 이야기하며 혼을 빼놓는 사이 나는 민서 뒤통수에 대고 “엄마 학교 갔다 올게.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밥 먹고 활동하고 있으면 올게. 사랑해~!”를 날리고 종종걸음으로 미소를 띤 채 집으로 왔다. 시원섭섭한 마음과 동시에 기특하다 여기면서 말이다.


당장 내일 아침 민서가 또 울면서 등원할 수도 있겠지만(제발 아니길), 그래도 3주 넘어 처음으로 NO울음 등원에 감격스럽기만 하다.



민서는 말을 잘한다. 참 잘한다. 단순 의사소통을 어른들이 쓰는 말을 따라 하기까지 한다.


35개월 때는 “어차피”라는 단어와 “언젠가 사라질거야” 라는 문장을 끊임없이 사용했다. [민서는 새로운 문장이나 단어를 알게 되면 자기가 계속 쓰고 말하고 페퍼피그 놀이나 다른 역할놀이를 할 때도 그 말을 하며 논다. 준서도 그랬던 것 같다.] 물론 문맥에 꼭 맞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놀이 중 갑자기 나에게 "어차피 밥 먹을 거예요", "어차피 갈 거예요" 말하는 식이다. 놀이 중에 뜬금없이 "언젠가 사라질 거야"라고 하기도 했다. 가끔은 "어차피"와 "언젠가 사라질 거야"를 함께 붙여쓰기도 했다. 페퍼피그와 친구들이 생일파티를 하다가, 불꽃놀이 보다가, 맛있는 요리를 먹는 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어차피 언젠가 사라질 거야?”라고 말하면 정말 순간 당황스러워지기도 했다. 이렇게 놀이를 진행하다 보면 고등학교 윤리에서 배웠던 염세주의와 허무주의로 귀결되어 이게 3세 아이와의 놀이가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말만으로는, 세상 허무하고 부질없던 그녀가 갑자기 36개월에 들어서며 바빠졌다. 그녀가 선택한 문장은 “급한 일을 깜빡했어!”이다. 특히 오빠의 파란색 paw patrol 손목시계, 페퍼피그 백팩, 생일선물 받은 장난감 손가방까지 착장 하며 그 말을 하면 이 세상에서 제일 바쁜 세속적인 그녀가 된다. 마치 엘리스의 시계토끼를 보는 느낌이랄까. 민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일단 무한반복 중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급한 일을 깜빡했다고 말하며 발을 동동거린다. 급한 일이 뭐냐고 물으면 그냥 급한 일이란다. 깜빡했단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생명체 송민서. 너의 하루하루 1분 1초 자람의 순간들을 내가 오롯이 보고 느끼고 웃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몸속 세포 하나하나 너의 솜털 한 올 한 올 모든 것을 사랑한다. 지금처럼 건강하고 밝고 호기심 많고 행복한. 대체불가 너만의 색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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