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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May 13. 2023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관람기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영화가 개봉했다. 의자도 움직이고 바람도 나오는 4DX 관람을 통해 준서와 나는 슈퍼 마리오와 함께 버섯왕국을 뛰어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준서와 나, 세대는 다르지만 마리오와의 추억을 각자 공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준서는 만 6세 겨울에 슈퍼 마리오를 만났다. 시카고의 길고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우리는 닌텐도 스위치를 구입했고, 그러면서 마리오파티, 슈퍼마리오 3D월드 게임 칩을 같이 구입했기 때문이다. 국어, 수학 문제 풀이 후 하루에 30분이라는 시간제한을 걸었고 준서가 잘 따라준 덕분에 그 겨울 우리는 슈퍼 마리오와 함께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준서와 마리오의 만남은 "21년 겨울 시카고"였다.


나는 어땠을까. 원래 나 때는 말이지, 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굉장히 길고 우울하다. 내 이야기 역시 그렇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다닐 때 일이었다. 여름방학이 되기 전 엄마는 나에게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넌지시 물으셨다. 엄마가 그렇게 묻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시 유행하던 "슈퍼 마리오" 게임팩이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이유도 묻지 않으신 채 알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선뜻 알겠다고 하시니 오히려 궁금한 건 내 쪽이었다. 왜 사주시는데요, 라고 물었다. 엄마는 망설이시며 조용한 목소리로 게임팩 사주는 조건이 있다고 하셨다. 그건 바로 포경수술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는 모두가 고래를 잡던 시절이었다 ㅠㅠ)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그 맘 때쯤 수술을 했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음을 나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다. 게임팩 하나 받자고 수술하기는 싫었다. 엄마는 지금 당장은 아니고 여름방학 되면 하자고 설득하셨다. 실랑이가 이어졌다. 수술을 시켜야 하는 엄마와 게임팩을 갖고 싶은 아들 사이의 흔한(?) 줄다리기였다.


급기야 엄마는 수술 안 하면 내 생애 "슈퍼 마리오" 게임팩은 없다고 선언하기까지 하셨다. 그 순간 내 두뇌가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엄마 성격에 한 번 안된다고 하면 영원히 안 되는 거였다. 연말 성탄절이나 내년 생일날 사달라고 해도 안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수술은 정말 싫었지만 그렇다고 슈퍼 마리오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엄마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셨다.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이모가 간호사였다 ㅠ) 곧 수술 날짜가 잡혔다.


나는 "슈퍼 마리오"에 대한 기대감과 포경수술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내 인생 가장 기다려지지 않았던 여름방학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디데이가 되었다. 30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침 댓바람부터 엄마는 나를 이끌고 대전 시내로 향했다. 도마동에서 은행동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는 주말이어서인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가득 찬 사람들의 열기로 버스 안은 무척이나 더웠다. 나는 엄마손을 꼭 붙잡은 채로 좌석에 앉아있었다. 야속하게도 버스는 병원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나는 그저 오늘 하루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기 전에 엄마에게 다짐을 받았다. "슈퍼 마리오" 게임팩을 먼저 사주고 병원에 갈 거라고. 엄마는 그러자고 하셨다. 은행동에서 버스를 내린 우리 모자는 곧바로 홍명상가로 향했다. (홍명상가는 70년대 대전천 목척교 주변을 복개하면서 조성된 대전 최초 현대식 백화점이었으며 2009년 완전 철거되어 현재는 사라진 건물이다)


홍명상가 지하에는 용산전자상가 같은 분위기의 전자제품 판매상들이 모여 있었다. 엄마와 나는 그중 한 곳에 들러 "슈퍼 마리오" 게임팩을 샀다. 당시 1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상당히 비쌌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저씨가 게임팩을 넘겨주는데 감격스러워서 손이 떨릴 정도였다. 드디어 마리오 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기쁨에 순간적으로 수술을 까먹기까지 했다.


아차차. 하지만 아직 중요한 미션이 남아있었다. 쇼타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마리오를 손에 넣자마다 약간 미적대는 것을 눈치채셨는지, 곧바로 내 손을 잡고 얼른 나가자고 하셨다. 나는 엄마손보다 더 꽉 "슈퍼 마리오" 게임팩을 손에 쥔 채 홍명상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엄마는 홍명상가를 나오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원을 향해 달리듯이 걸어갔다. 나는 발걸음을 늦추고 싶었지만 소용없었다. 내 마음과 달리 몸은 어느새 엄마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문 앞에 다다랐다. 2층에 OO비뇨기과 간판이 보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깟 "슈퍼 마리오"가 뭐라고 여기까지 따라왔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사후약방문이었다. (요즘에도 근시안적인 욕망에 사로잡힐 때면 나는 이때의 "슈퍼 마리오" 사례를 떠올리며 욕망을 릴랙스 하곤 한다)


병원에 들어서니 간호사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다. 엄마도 알고 나도 잘 아는 이모 친구였다. 내 손에 쥐인 "슈퍼 마리오" 게임팩을 보더니 좋은 선물 받았네, 하면서 웃으셨다. '넌 이걸로 잡혀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후회막급이었으나 만시지탄이었다. 엄마에게 게임팩을 넘겨주고 쓸쓸히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수술을 잘 마쳤다. 생각했던 것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마취가 몇 시간 동안은 유지될 거고 마취 풀리면 아마 아플 거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난 귓등으로 들었다. 일단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았고, "슈퍼 마리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동에서 다시 도마동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따랄라라라 라라", 슈퍼 마리오 메인 테마곡이었다. 당장 통증이 없으니 꽁으로 마리오를 얻은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게임팩을 꽂고 곧바로 게임을 실행하였다. 슈퍼 마리오라니! 감격이었다. 마리오가 점프할 때 나는 "삐용" 소리에 전율이 느껴졌다. 엄마가 저녁밥 먹고 하라고 했지만 내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마리오와 함께 게임에 열중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쿠파(악당 캐릭터)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이었다. 그곳에 살짝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순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잠깐 아프고 말겠지.


그런데 곧바로 더 큰 고통의 파도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번 들어온 고통의 파도는 또 다른 파도를 불러왔다. 고통의 쓰나미였다.


마취가 끝나자마자 진정한 쇼타임이 시작되었다. (고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쓸리고 아팠지만, 나는 고통을 잊기 위해 더더욱 "슈퍼 마리오"에 열중했다. 그리고 1-4판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쿠파를 무찌르자 눈에서 눈물이 났다. 기쁨과 고통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난 이후로도 계속 울면서 마리오를 했다. 내 생애 가장 슬픈 마리오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던 엄마와 아빠는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 저거 보라고 ㅋㅋ


그날 밤, 나는 쿠파의 성을 둘러싸고 있는 용암보다 더 뜨거운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밤이 참 길었고 진짜 아팠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는 다시 "슈퍼 마리오" 게임을 했다. 종이컵(?)으로 고통을 줄이면서 난 또 게임에 열중했다. 왜 이렇게 게임이 슬픈지 한 판 한 판 넘어갈 때마다 눈물이 났다. 가끔은 엉엉 울면서 마리오를 조작하기도 했다. 게임이 종료되면 나도 울고 마리오도 울었다. 우린 운명공동체였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일주일 정도 지나고 종이컵을 끼우고(?) 서서 돌아다닐 수 있게 될 무렵에는 게임에 대한 흥미도 서서히 떨어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밥을 뽑으러 간 마지막 날 이후로는 내 기억에 "슈퍼 마리오"를 더 이상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독하게 더운 여름, 울면서 했던 마리오였기에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와 마리오의 만남은 "90년 여름 대전"이었다.



결론적으로 2023년 5월, “90년 여름 대전”에서의 마리오 기억을 가진 아빠와 “21년 겨울 시카고”에서의 마리오 기억을 가진 아들이 함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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