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글이 서랍에 남아있어 각색 후 올립니다. (작가 주)
사실 회사를 다니다보면 이런저런 교육 많이 받습니다. 직무교육, 집합교육, OJT, 인문학강좌, 사이버교육. 그런데 끝나고 나면 남는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좀 지루하기도 하구요.
그러던 어느날 전략교육이라고 쓰여진 공문을 받았습니다. 공문을 받아든 주위 직원들이 한마디씩 던집니다. ‘이름 거창하게 잘 지었네’ ‘담당자가 작명교육을 받았나봐’ 대충 이런 분위기였죠.
몇몇 동기들한테 연락해서 같이 가자고 했더니 덥다고 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싶습니다) 암튼 개인적으로 전략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것도 이유가 이상하긴 매 한 가지입니다)
월요일 9시에 교육입소여서 새벽 4시에 일어나(라고 쓰고 잠을 거의 못잤다고 읽는다)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향했습니다. KTX를 타고 가고 싶었는데 수원역은 KTX가 잘 서지 않아 추억의 무궁화호를 탔습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무궁화호에 앉아 옛 추억에 잠기기는 커녕 걸어가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를 고민하다 잠시 잠에 들었습니다. 깨고 보니 밖에는 비가 엄청 내렸습니다. 수원역 도착했을 때에도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내가 갈 곳이 연수원이 아니라 노아의 방주가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정신차리고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수원역에서 몇 정거장 안되는 거리에 연수원이 있었습니다. 옛 건물을 생각하고 갔는데 막상 도착하니 리모델링한 깨끗한 건물이 있었습니다.
숙박을 하여야 했기에 담당부서의 직원을 찾아가서 키를 받았습니다. 2인 1실이었지만 내부 방을 분리해놔서 독립된 공간을 확보해준게 너무 좋았습니다.
아직 식당이 운영되지 않아 매일 아침식사가 문제였지만 저는 덕분에 살이 좀 빠져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근처 역까지 아침 먹으러 다녀오신 분들도 있었지만 편도 도보 15분이어서 어차피 다시 갔다오면 배 꺼지는 바람에 그분들도 모두 다이어트 성공했습니다. 암튼 아침 공복이 힘들어서 다이어트 포기하신 분이라면 연수원 교육 강추합니다.
짐 정리를 마치고 교실에 앉아 첫 수업을 기다렸습니다. 강사님 언제 오시나 하면서 기대에 부풀어 핸드폰으로 그 날의 운세를 검색했습니다. 귀인이 나타날 운세라고 쓰여 있길래, 웃기시네 라고 비웃으며 앞을 보니 누군가가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강사님이시겠거니 하고 쓰윽 보니 사장님 출근하셨습니다. 그 날의 운세 정확합니다.
네. 그 분입니다. 우리 회사 오야.. 아니 대빵님. 손은 눈보다 빠르므로 핸드폰을 얼른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가까이서 본 사장님은 피부가 너무 좋으셨... 암튼 처음 뵙는데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좌뇌가 활성화되어 볼펜을 꺼내 말씀을 받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남들 보다 더 고민하고 앞서간다는 의미이다. 회사의 미래가 이 교육에 있다. 융복합, 협업, 창의가 중요하며 그 밑바탕에 아이디어와 전략, 기획이 있다. 강사님이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이니 많이 배워 꼭 업무에 활용하기 바란다” 메모를 보니 이 정도 말씀이 남아있습니다.
본인 이야기 진솔하게 하시면서 교육 잘 받으라고 격려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았습니다. 강의 첫 날 첫 시간에 사장님 알현한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습니다. 말씀 끝나고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도 해주셨는데 손이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사장님, 손에 땀 차있던 사람 저에요. 초면에 아드레날린이 폭발하여 그만. 더운데 죄송했습니다. 근데 피부관리는 어디서...
암튼 사장님 가시고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장님 말씀하실 때 조용히 문 옆에 누가 서 계시길래 개인 비서인줄 알고 포스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분이 강사님이셨습니다. 이 분야에서 꽤 유명하신 분이라고 본인이 직접 소개하셨습니다.
강의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하루 8시간씩 3일 집합교육이었는데 조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머는 없는데(3일간 딱 2번 웃었어요) 이상하게 빠져드는게 신기했습니다. 재미없고 진지한 사람과 연애하는 이유를 이번에 알게됐습니다.
강의 경력이 오래돼서 그런지 흐름을 잘 이어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기획의 본질부터 전략기획의 다양한 Tool, 스토리라인 구성, 기획안 작성 실습까지 모든 과정이 낯설기는 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생각에 더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기획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막연하게 멀게만 느껴지고 남의 일처럼만 생각했던 기획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었고, 그것을 잘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제게는 큰 기쁨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 끝나고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오는데 노을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보람이 있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