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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Nov 02. 2017

여성의 삶을 읽다

'82년생 김지영' 이 말하는 것들



나는 타인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 삶의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일반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위험회피적인 성향 risk-averse 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물론 사람인지라 들으면 재미있고 세부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다. 누가 누구랑 결혼했는데 신랑이 어떻다더라, 시부모가 어떻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누가 아파트를 샀는데 몇 억이 올랐고 분수에 맞지 않게 좋은 외제차를 얼마 주고 샀더라 하는 가십들은 많은 이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관심을 거부하려고 노력한다. (될 때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다) 이런 내 캐릭터는 독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누군가의 인생을 적어놓은 책들을 그리 즐겨 읽지 않는다. 이 책 <82년생 김지영>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읽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김지영 씨 삶의 편린들을 모아놓았을 것이고, 그것을 읽음으로써 82년생 여성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이 책을 빌려다 줄 것을 부탁했다. (회사에 작은 도서관이 있다) 남편이 82년생이라 혹시 김지영 씨가 예전 여자 친구일까봐 그런가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응 알았어 라는 대답과 함께 흰색의 얇은 책 한 권을 회사에서 대출해 퇴근하면서 전달해주었다.


아내는 고마워, 오빠 라는 대답과 함께 건네받은 그 책을 다음날 오전 중에 다 읽고 퇴근할 때 다시 돌려주었다. 돌려주면서 한 말은 딱 한 문장이었다, 오빠도 꼭 읽어봐. 아내가 책을 권하는 일은 잘 없기에, 말 잘듣는 남편이 되기 위해 열심히 읽었다. 물론 큰 기대는 없었다.


책은 술술 잘 읽혔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오래된 일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동일한 시대를 살았기에 이야기가 더 편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으로서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담담하게 때로는 강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물론 책을 펼치기 이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오리라고는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 간극이었다. 과연 82년생 남자인 나와 주인공인 82년생 김지영씨와의 인생 사이에 어느정도의 균열이 있을까였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였다.


책을 다 읽은 후 한참동안 책 내용을 곱씹어 보았다. 내가 그동안 여성의 삶에 너무나 무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나는 여성인 아내와 결혼까지 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아내가 나에게 책을 권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내의 고민과 아픔도 모른채 얼마나 무심하게 살아왔던 것일까.


무지했던 혹은 애써 외면하던 사실과 꾸밈없이 마주하고 나니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82년생 동갑내기 김지영 씨의 인생은 나와는 너무나 달랐고 그녀의 고민과 어려움은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많은 반성이 들었다.


내가 책을 읽고 느낀 점들을 몇 가지만 반성을 겸해 여기에 남기고자 한다.




하나, 82년생 남성과 여성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다.


나 역시 82년생으로, 김지영 씨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물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김지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는 한 명도 없다) 둘의 차이라면 내가 남자라는 사실 하나일 것이다.


김지영 씨와 내가 7살 때 서울에서는 올림픽이 열렸고, 둘 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대전에서 엑스포가 열렸으며, 중학교 3학년 때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대학교 2학년 때 한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었고 대표팀은 4강 신화를 이뤘다. (나는 그 때 광화문에 나가 거리응원을 했는데 김지영 씨가 했는지는 모르겠다)


둘 다 한국에만 살았기에 우리 둘을 둘러싼 대외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정형편도 뭐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삶의 단면은 어떨까. 그것 역시 많이 닮아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준비, 취업, 회사생활,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이어지는 줄거리는 비슷했지만 그 안의 공통점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고민 없이 지나간 많은 부분에서 김지영 씨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내가 느끼지 못한 부분에서 심지어 고통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하나의 생명체로써 젠더만 다를 뿐인 남녀의 인생이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두 남성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아들 먼저, 남학생 먼저, 남자 직원 먼저, 남편 먼저 등등등. 사회에 있는 모든 권리에 대해 남자가 우선권을 쥔 것 마냥 권리가 한쪽에 치우쳐 있다. 그 사이 여성은 늘 고민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둘, 앞으로의 남은 인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의 기미는 보이는가. 남은 인생은 달라질 것인가. 쉽지 않을 것이다.


김지영 씨는 독박육아에서 벗어날 어떤 대안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남편 역시 육아보조자의 역할에서 벗어날 어떤 방법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남편이 성공하면 그것이 가정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오래된 도식이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 친척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명절만 되면 또 다시 왔다갔다 하는 문제, 음식하는 문제 등으로 부딪힐 것이며 아들 낳는 문제, 봉양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가능성 역시 높다.


무언가 변화를 위한 계기가 있어야 하지만 전혀 보이지 않는다. 노동, 육아, 복지 등이 모두 연계되어 개혁에 가까운 변화가 있어야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남편 외벌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며 비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가리지 않고 도전하는 김지영 씨의 모습을 보며 현실의 벽만 실감할 뿐이다.



셋, 92년생, 02년생, 12년생 김지영은 82년생 김지영과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첫 아이가 15년생 남자아이다. 그 아이의 삶을 생각해본다. 아직 예정만 있는 둘째 아이가 만약 딸이라면 어떨지도 생각해본다. 과연 둘째 딸아이는 할머니 세대, 어머니 세대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작가도 부정적이지만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가시적인 변화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의 공직 취업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현실에서 상위직은 모두 남자 차지이며, 중간 관리자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으로부터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해방시켜 주지 않는 이상 모두 꿈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많이 읽힌다는 자체가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딸을 가진 젊은 여성들이 이 책을 보며 딸이 똑같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현실에 슬퍼하는 것이다. (주위에서 들은 감상평이다)


물론 사회는 양성평등을 위해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92년생, 02년생, 12년생 여성이 다른 삶을 살기에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변화는 필요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책 역시 좀 비관적인 결말이다.




논문이 아니고 소설이기에 대안이나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현실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 현실을 보고 정부와 국회가 그 밖의 많은 의사결정자들이 변화를 꾀해주기만을 기다릴 따름이다.


나는 1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난 항상 동생보다 먼저였다. 양보는 글로만 배웠고 삶은 별개였다. 남자로서의 생활 역시 큰 불편함이 없었다. 여자 짝꿍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은 없었다. (몇 번 괴롭힌 적은 있어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한다) 점심시간에는 급식을 일찍 먹고 달려 나가 늘상 운동장에서 살았으며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교정을 나다니기 일쑤였지만 선생님에게 한 번도 지적받은 적이 없었다. 학원 갔다 오는 밤늦은 길에 누가 나를 따라온 적도 없었으며 밤에 늦게 다닌다고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은 기억도 딱히 없다. 대학을 정하는데 있어서도 내 점수 외에는 고려요인이 없었으며, 대학 생활 내내 차별받았다고 생각한 적 역시 한 번도 없었다. 취업이 되고 회사에 와서도 내가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다른 요인은 고려한 적이 없으며, 아내가 아기 낳고 출산휴가, 육아휴직 쓰는 것에 대해서도 특별히 다른 대안을 고민해본 적도 없다.


이에 반해 82년생 김지영 씨는 저런 여러 가지 상황에서 많은 고민과 걱정 속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아마 87년생 내 아내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아내 역시 저런 상황이 현재 진행형이다.


1남 1녀 중 장녀인 내 아내는 아기를 낳고 현재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내년에는 육아휴직을 쓸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항상 미안하다. 이제 작은 데서부터라도 스스로 변화의 노력을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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