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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Oct 24. 2017

인간은 체계적으로 틀린다

넛지 Nudge 를 다시 읽고



2009년 베스트셀러였던 "넛지 Nudge" 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발매된 지 꽤 오래된 노래가 가요차트에 재진입하며 상위권에 오르는 것을 "차트 역주행"이라고 하던데 넛지 역시 차트를 역주행하고 있다.


이유야 간단하다. 작가인 리처드 탈러 Richard Thaler 교수가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기사 참고)


출간 당시 줄을 치며 열심히 읽었던 넛지를 8년 만에 다시 집어 들었다.


좋은 책은 역시 시공을 초월하여 다양한 함의를 던져주는 것 같다. 이번에도 그랬다.


행동경제학과 관련한 여러 사례를 흥미롭게 제시하고 있어 일독을 권한다.




탈러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은 체계적으로 틀린다 People systematically go wrong"

"그래서 넛지가 필요하다"


전통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rationality 가정이 잘못되었고 따라서 자유주의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넛지 nudge 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 정도로 번역되며, 탈러 교수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개념 정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 탈러 교수는 합리적 인간 가정의 잘못을 보여주는 사례를 여러 개 제시했는데 그중 눈길을 끌었던 것이 심리학자인 로저 세퍼드 Roger Shepard 교수의 연구(1990)였다.


아래 그림을 보자.



왼쪽에는 길쭉한 테이블이 있고, 오른쪽에는 넓적한 테이블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말 그렇게 보인다.


이때 지능형 로봇, 알파데스크(알파고의 변형으로 길이를 정확하게 재는 상상의 기계 : 작가 주)가 나타나서 '두 테이블 상단의 크기가 똑같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이에 동의할 수 있을까?


아마도 로봇이 정상이 아니라고 의심부터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를 꺼내 모니터에 대고 가로 세로 치수를 재보자.


응?!


놀랍게도 같을 것이다.


똑똑함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 역시 저 그림을 보고 단박에 상판 크기가 똑같네 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인슈타인 비하가 아니라 탈러 교수가 책에 그렇게 써놓았다)


탈러 교수는 이 사례를 통해 체계적인 잘못을 범하는 인간을 (완전) 합리적으로 가정하는 전통 경제학은 한계가 있고, 따라서 개인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기보다는 약간의 개입(넛지 nudge)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넛지 사례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의 테이블 사례였다.


사실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그것을 인정하면서 살기는 쉽지 않다.


자신이 완벽한 사람인 것 마냥 주위의 충고와 비판에 귀를 닫은 채 그저 본인의 생각대로 걸어나가기가 십상이다. (때때로 나 역시 그렇다)


위 테이블 사례를 가슴에 새긴다면 그러한 실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8년 전 넛지를 읽었을 때에는 한참 공부할 때여서 넛지를 공부에 응용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넛지 관련 응용이 모두 아이 양육을 향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란 참..)


아이를 양육하면서 많은 부모들이 아래와 같은 고민을 한다.


부모로서 아이와 관련한 여러 선택에 있어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i. 강한 개입형 : 부모가 (완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이에게 부모의 선택을 강요한다.

ii. 개입 자제형 : 아이가 (완전)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이에게 온전히 선택하도록 내버려둔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떼를 쓸 경우에는 ii를, 잠자코 있는 경우에는 i을 선택한다. (경험상 그렇다)


하지만 이 경우 일관성이 없고 아이가 떼쓰면 부모가 다 받아준다는 나쁜 신호를 주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부모와 아이 모두 인간이므로 체계적으로 틀릴 수밖에 없고, 따라서 선택의 상황에서 한쪽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는 것은 잘못된 결과로 이끌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넛지를 읽으며 부모의 일관된 부드러운 개입이 똑똑한 선택을 이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부드럽게 개입을 하고 함께 대화를 함으로써 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두고 매우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바로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자녀 눈높이에서 부모가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을 자녀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고 한다.


이를 하브루타 havruta 라고 하는데 이는 히브리어로 친구라는 뜻이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고)


아이에게 선택의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가 함께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자녀 교육법인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양육과 관련된 넛지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독서라는 종목이 항상 그렇지만 오래전에 읽은 책은 읽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자세한 내용은 언.제.나.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이 독서의 큰 단점일 것만 같지만 사실 좋은 점도 많다.


특히 읽을 때마다 맥락 context 이 다르게 보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함의를 준다는 것, 달리 말해 기억에 따른 편견 없이 내용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만약 내가 넛지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번에도 공부와 연관 지어 넛지를 생각하고 독서를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된 나는 양육과 관련하여 넛지를 고민하고 길을 잃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물론 내 머릿속 대뇌피질 어딘가에는 공부와 관련된 넛지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인용한다면 핵심 기억은 아니더라도 일반 기억 어딘가에 새겨져는 있을 것이다)


찾기는 어렵겠지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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