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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Jul 08. 2018

월드컵 축구에 대한 기억들


월드컵 축구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들이다.



#0. 프롤로그


Photograph by Naija News


한국 축구가 러시아 월드컵 조별 예선을 탈락했다. 아쉽다.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우린 언제 월드컵 축구를 스켈레톤 윤성빈, 여자 양궁 단체전 보듯이 할 수 있을까. 2218년 한국 월드컵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때도 경우의 수 하고 있으면 후손들이 원망스러울 듯하다.)


개인 스포츠에서는 기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평창 올림픽 당시 윤성빈을 보자. 윤성빈은 전년도 내내 세계대회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해왔다. (정확히는 세계 1위였다) 그리고 이변 없이 금메달을 땄다. 실수를 하지 않으면 금메달이라고 했지만 그 많은 대회를 거치며 실수를 하지 않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올림픽은 그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하지만 축구는 다르다. 일단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이다. 한두 명이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는 경기는 아니다. (메시와 호날두, 네이마르를 보라) 또한 공은 둥글다. 공을 가지고 하는 구기 종목은 원래 이변이 많다. 야구에서 훌륭한 타자의 기준이 되는 타율은 3할이다. 10번 타석에 서서 3번만 안타를 치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대호처럼 훌륭한 3할 타자가 9회 말 2 아웃 만루 0:1로 지고 있는 상황에 들어서서 방망이를 휘두른다고 했을 때 안타를 칠 확률보다 아웃을 당할 확률이 더 큰 것이 구기 종목이다. (이대호만 잘한다고 롯데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의미이다)


이러한 (헛된 기적의) 기대 속에 한국 축구가 똘똘 뭉쳐 세계 랭킹 상위권 팀들과 당당히 싸워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는 것처럼 그리 좋지 못했다. 세계 1위 독일을 격파하였다고는 하나 우리를 만나기 전 간신히 1승 1패를 하고 있던 팀이었다. (월드컵 직전 평가전 결과도 좋지 못했다)


참 많이 아쉽다. 여러 패인이 있을 것이다. 감독의 전술 부족, 선수들의 체력 관리 실패, 선수들의 개인기 부족, 아시아는 어차피 망이라는 패배의식 등등. 축구협회에서 감독 교체 및 체질 개선 등을 강구하겠다고 하니 기다려 볼 뿐이다. 뭐 항상 4년마다 반복했던 레퍼토리라 크게 기대는 안된다. (축협 입맛에 맞는 감독 데려다 세우고 대충 언플해서 개선하려고 하면 정의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으마는 개뿔 계속 지네 마음대로 그렇게 하겠지)


암튼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에게는 항상 고맙다. 2골을 넣은 손흥민, 여러 차례 슈퍼 세이브한 조현우를 위시하여 공, 수, 미들에서 자기 역할을 잘 해준 모든 선수들 모두 감사하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들이 초여름밤 가슴 졸이며 즐겁게 월드컵을 시청할 수 있었다. (예선 탈락한 12억 중국인을 생각해보라)


이번 월드컵을 보며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제 더 이상 "투혼"과 같은 추상적인 것들에 의존해 축구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축구가 점차 정교해지고 과학적으로 변해가면서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을 지배한다는 90년대 사고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호날두를 막기 위해서는 투혼이 아닌 빠른 발과 체력이 있어야만 한다. 피지컬과 개인 기량이 결합된 선수의 능력치는 그 자체로 인정되며 그러한 능력치의 조화와 합이 그 팀의 능력이 된다. 여기에 투혼은 그것을 살짝 상승은 시켜줄 수 있으나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되지 않는다. 독일전은 냉정하게 우리 팀의 능력치가 독일을 앞선 것이지 우리가 독일보다 정신력에서 앞서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 "투혼", "열정"과 같은 말들로 선수들을 보채지 말자. (태극 마크 달고 그런 정신력 없이 경기를 뛰는 선수가 어디에 있겠나) 대신 그들의 피지컬과 개인 기량을 높일 수 있는 지원과 팀의 능력을 높일 수 있는 전략, 전술, 훌륭한 리더를 제공해주자. 축구협회는 그러라고 있는 것이다. 퇴직 축구인들 낙하산 취직자리 주는 데가 아니다.


축구협회 이야기하면 화가 나니 각설하고, 개인적인 내 인생의 월드컵 기억을 떠올려 보고자 한다. 사실 월드컵 하면 몇몇 장면이 딱 떠오른다. 마치 머릿속에 사진을 찍어놓은 듯 "월드컵"이라는 단어에 각인된 이미지들이 있다. 그 장면을 적어보고자 한다.






#1. 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 서정원 동점골


Photograph by SBS news


내가 기억하는 첫 월드컵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 전에도 축구를 보긴 했겠지만 전혀 기억에 없다. 지금은 32개국이 월드컵에 진출하지만 당시는 24개국이 참여하였다. 조 3위도 16강에 갈 수 있다 보니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예선을 치렀던 기억이 있다.


당대의 최고 스타는 호마리우, 베베토, 바조, 클린스만, 마테우스, 발데라마 등의 선수였다. 한국에는 황선홍, 서정원, 고정운, 홍명보 등이 주축 선수였다.


첫 경기 스페인 전에 승리의 기대를 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스페인은 최강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경기 시작 후 두 골을 먼저 내주었을 때 역시 어렵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보고 있던 모든 이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반에 기적이 일어났다. 특히 종료 직전 서정원의 극적인 동점골은 나를 포함한 모든 국민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서정원의 슛이 골키퍼 좌측을 통과하여 골망을 가르는 순간 나는 축구라는 스포츠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내가 축구를 사랑하게 된 것은 정확히는 그 동점골 때문이었다.


동영상 재생 : https://youtu.be/9K1WZ7vtEi0 


1994년 미국 월드컵은 스페인 전의 기적, 볼리비아 전의 빈공, 독일 전의 아쉬운 패배 속에 16강 진출 실패라는 좌절을 결과했지만 내게는 가장 아름다운 월드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처음은 원래 항상 강렬한 것이다.






#2. 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일본전 이민성 역전골


Photograph by KFA


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축구에 빠져 살았다. 학교에서도 방과 후에도 한동안 축구만 했다. TV에서 하는 축구는 프로축구든 국가대항전이든 모두 시청했고 선수들 하나하나의 이름과 특징을 외우기까지 했다. (축구에 대한 훈수도 늘어가는 시점이었다.)


월드컵의 장점은 본선뿐만 아니라 지역 예선을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한다는 점이다. 월드컵 사이 4년간의 공백을 메워주므로 축구 팬들에게는 또 다른 행복의 시간이다. 미국 월드컵 얼마 지나지 않아 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 예선이 시작하였다. 한국은 쉽게 예선을 통과했고 최종 예선에 도달하였다. 우리 조에는 영원한 맞수 일본이 있었다.


일본과의 첫 경기는 도쿄에서 열렸다. 토요일 낮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생인 나는 경기 시작 세 시간 전부터 떨리는 마음으로 경기를 기다렸다. 도쿄 국립 경기장에는 울트라 니폰의 파란색 유니폼이 가득 차 있었다. 원정경기의 압박감이 TV를 보는 나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경기 시작 전 한국의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선수들의 표정에 비장함이 느껴졌다.


경기가 시작했고 한 골을 먼저 실점했다. 그리고 계속된 공방 끝에 후반 끝무렵 서정원이 최용수의 헤딩 패스를 받아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서정원 같은 플레이어가 요즘 들어 참 아쉽다.) 그리고 1:1 무승부의 기운이 가득한 경기장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민성의 잘 맞은 왼발 슛이 그대로 골망을 가른 것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 "후지산이 무너지네요" 등의 무수한 어록을 만든 그 골이었다.


동영상 재생 : https://youtu.be/cO1dRi5gW6k


일본과의 국가 대항전은 항상 강렬하다. 양국은 항상 치열하게 싸운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한국인들의 피를 더 들끓게 한다. 여러 축구 한일전 명승부가 있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축구 한일전은 단연코 이 경기였다.






#3.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 안정환 골든골


100번도 넘게 본 이 장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 월드컵 역사상 가장 정점에 있는 대회였다. 2002년을 기준으로 우리 축구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다. 월드컵 16강은 고사하고 1승도 해본 적 없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는 기적을 만들었다. 지금도 사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지금 세대에게 안정환은 그저 은퇴한 축구인이자 예능 잘하는 아저씨겠지만 80년대 세대들에게는 축구의 아이콘 그 이상이었다. 1998년 월드컵 이후 프로축구 부흥을 이끈 장본인(이동국, 고종수 포함)이자 200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끈 히어로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당시 한국 축구 공격수 중 거의 유일하게 발재간이 좋았으며(특히 턴이 일품이었음),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는 선수였다. 공간 창출, 빌드업, 골 결정에까지 자신의 역할을 반드시 만들어내는 아주 영리한 공격수였다.


한국은 조별 예선을 2승 1무 조 1위로 편하게 통과했다. 일반적으로 조 1위의 16강 상대는 다른 조 2위이기 때문에 보통은 편한 상대이다. 그런데 G조 이탈리아가 크로아티아에게 지고 멕시코에 비겨 간신히 조 2위를 하는 바람에 우리의 16강 상대국이 이탈리아가 되었다.


16강전이 펼쳐진 대전 월드컵 경기장은 붉은 악마로 가득했지만 그 누구도 한국의 승리를 점치지는 않았다. 그저 처음 올라온 16강에서 잘 싸워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다. 경기 초반 얻어낸 페널티킥으로 희망이 보이는 듯했으나 안정환이 이내 실축하여 역시 어렵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에리에게 헤딩 골을 내주고 후반 종료가 다가오면서 16강에서 이대로 끝나는 듯싶었다. 그러다 벼락같은 설기현의 동점골이 터졌고 연장전에 돌입하였다.


경기 내내 안정환은 조금 지쳐 보이는 듯했다. 페널티킥을 실축했으니 멘탈은 이미 붕괴되었을 것이고 그 부담감에 플레이도 매끄럽지 못해 보였다. 하지만 연장 후반 12분 안정환은 한국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멋진 골든골을 만들어내었다. 그것도 본인 커리어에 그리 많지 않은 헤딩골로. 이영표의 크로스로 시작되는 그 골은 내 평생 제일 많이 보게 되는 축구 영상일 것이라 생각된다.    


동영상 재생 : https://youtu.be/Z4yZioEsG5w


Photograph by Joins


안정환은 골 이후 눈물을 흘렸다. 페널티킥 실축 이후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절치부심하여 결국 스스로 해결하는 모습 자체가 드라마였다. 이후 8강, 4강까지 올라가면서 한국 축구 대표팀은 너무나 잘 싸워주었다. 많은 국민들이 그때의 한국 축구를 그리워하며 지금도 그 때의 눈높이로 축구 경기를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쉬이 만족이 안될지도.






#4. 2006년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 박지성 동점골


Photograph by SBS news


2006년 독일 월드컵은 2002 월드컵의 흥분이 그대로 이어져 많은 기대를 하고 있던 대회였다.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이을용, 박진철, 김남일, 이운재 등 2002 멤버들이 여전히 주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경기 토고 전에서 이천수, 안정환의 골로 승리하며 원정 첫 승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경기는 프랑스 전이었다.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 우승국이었으며 지단과 앙리, 비에이라 등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보유한 세계 최강팀이었다. 이 경기가 원정 16강의 분수령이었다. 물론 경기 초반 앙리의 골이 터지며 역시나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후반 36분 박지성이 한국을 구해내는 헤딩골을 터뜨렸다. 우측에서 설기현의 크로스를 조재진이 헤딩으로 떨구어놓고 이를 박지성이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오른발 슛으로 마무리한 짜임새 있는 골이었다. 바르테즈의 허망한 표정과 갈라스의 화가 난 리액션이 회자되는 멋진 장면이었다.

동영상 재생 : https://youtu.be/9M0IrSa3qJg


동점골 직후 도미니크 프랑스 감독 너머 붉은 악마의 출렁거림은 매우 황홀했다


이 경기 무승부로 1승 1무를 기록한 한국 대표팀은 16강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으나 마지막 경기 스위스 전 패배로 아쉽게 조별리그를 탈락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우리에게 비기고 토고를 이겨 힘겹게 16강에 진출한 프랑스는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을 연파하고 결승에 올라 이탈리아와 대결하였으나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고 만다. (이 결승전에서 그 유명한 지단의 박치기 퇴장이 나온다)


사실 박지성 하면 떠오르는 골이 두 가지 정도 더 있다.


하나는 PSV 아인트호벤 시절 2004-2005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이 넣은 골이다.(같은 팀에 소속된 이영표도 어마어마한 경기력을 보여준다.) 사실상 이 골로 박지성은 빅리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동영상 재생 : https://youtu.be/h_bxkfFALzc


다른 하나는 산책 세레모니로 유명한 2010년 일본과의 평가전 선제골이다. 한일전에서 나온 캡틴 박지성의 골 세레머니인 만큼 꽤 오랫동안 이슈가 되었다. 물론 축구팬들은 굉장히 통쾌해했으며 아마 두고두고 회자될 세레머니가 될 것이다.


동영상 재생 : https://youtu.be/UBUdntMpC4c





#5.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나이지리아전 박주영 역전골


Photograph by OSEN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한국 대표팀은 "양박쌍용"의 시대였다. 박지성,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은 팀의 주축이 되어 기량의 정점을 맞고 있었다. 따라서 원정 최초 16강을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많았다.

이에 부응하듯 대표팀은 첫 상대 그리스를 이정수, 박지성의 골로 쉽게 승리하였다. 하지만  다음 상대 아르헨티나는 쉽지 않은 강팀이었다. 결과는 1:4 대패. 마지막 경기 나이지리아 전에 원정 최초 16강의 모든 것이 걸려있었다.


전반은 1:1로 팽팽하게 유지되었다. 그리고 후반 3분 만에 박주영이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바깥에서 파울을 얻어 낸다. 박주영은 자신이 얻은 프리킥을 침착하게 오른발 인프런트로 감아차 역전을 만들어 낸다. 16강을 확정짓는(것만 같던) 골이었다.


물론 이후 페널티 킥을 내줘 경기는 2:2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극강의 전력으로 3승을 한 결과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이후 16강에서 우루과이를 맞아 빗속에서 혈투를 벌였지만 수아레스에게 2골을 내줘 1:2로 아쉽게 지고 만다.)


동영상 재생 : https://youtu.be/EayE8oF5nfI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골을 기록하는 박주영


2010년대 초반 한국 축구는 박주영을 빼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월드컵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물론 소속팀에서 제대로 뛰지 못하고 있고 폼도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홍명보 감독이 무리하게 대표팀에 승선시킨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동메달 결정전(이라고 쓰고 병역면제 대전이라고 부른다)에서 나온 멋진 골로 박주영은 그야말로 이름값을 해주었고 한국은 동메달을 딸 수 있었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축구 종목 메달이었다.


동영상 재생 : https://youtu.be/oOPGBsFGl78






#6.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손흥민 골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지만 솔직히 기억도 안 난다. 가장 최근 대회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다. 양박쌍용 중 기성용 만이 남아 중원을 지켜주었고 그나마도 마지막 경기에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양박쌍용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한국 축구는 2002 4강 시대에서 양박쌍용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아마도 손흥민을 주축으로 하는 2002 월드컵 키즈들의 시대가 될 것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스웨덴, 멕시코 전의 체력 및 전술 미스로 인해 조별 예선 내내 안 좋은 평가에 시달려야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연속선상에서 세대교체 실패의 과도기적 상황이 지속되었다. 손흥민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보유하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실패를 결과하고 말았다.


다만 마지막 독일 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전력을 다해 열심히 싸웠다. 후반 김영권과 손흥민의 골로 2: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전술한 것처럼 독일 팀의 경기력이 좋지 못한 점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앞선 두 경기의 실망을 해소해 준 귀중한 승리였다. 어쨌든 독일은 세계 1위니까.


동영상 재생 : https://youtu.be/OKjV2SQfKrw


사실 손흥민의 이 골은 앞선 다른 골에 비해 무게감이 덜하다. 아마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과거와의 단절 및 미래를 위한 신호탄 성격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싶다. 또한 다음 2022년 월드컵에서는 2002년 키즈들이 16강 아니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Photograph by Yonhap news


사실 손흥민의 국대 최고 골은 개인적으로 2015년 아시안컵 결승에서 종료 직전 터진 왼발 동점골이다. 당시 결승전에서 우리는 호주에게 0:1로 끌려가 패색이 짙었는데 후반 인저리 타임에 손흥민이 결승골을 터뜨려 극적으로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물론 연장결과 1:2로 졌지만 손흥민이 해결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에이스로 거듭나게 된 경기였다.


동영상 재생 : https://youtu.be/ZupUIJ1g0-M






#7. 에필로그


(개인적인) 월드컵 축구 24년, 한국 축구도 꽤 많은 감동의 순간이 있었다. 황선홍, 서정원, 홍명보, 하석주, 유상철 등 90년대 후반 영광의 시대를 거쳐 2002년 월드컵 4강 시대, 양박쌍용의 시대, 그리고 이제는 손흥민으로 대표되는 2002 월드컵 키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싸워주었다. 개인적 호불호도 있고 그들의 공과도 있겠지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그라운드에서 뛴 시간들은 온전히 칭찬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국민들은 축구를 보며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 축구가 앞으로도 지금까지의 여러 기억들보다 더 빛나는 순간들을 국민들에게 선물해 주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축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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