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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매미 May 25. 2022

좋았던 그 시절의 사진 한 장 품에 안고

현경이랑 세상 읽기

* '인권연대 ' 소식지 2022 5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좋았던 그 시절의 사진 한 장 품에 안고

마냥 걷는다 마냥 걷는다

좋았던 그 사람의 편지 한 장 손에 쥐고

마냥 걷는다 마냥 걷는다

얼어붙은 달밤을 혼자 걸어간다

-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마냥 걷는다’ 가사 일부


  얼마 전 길동무 도서관에서 ‘공감의 경제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인문학 강의에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이 강의에서 강사인 ‘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님은 과거의 학교 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산업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을 양성해 왔는지 언급했다. 지루한 수업 시간 동안 ‘졸지 않는 연습’을 시키고, 야간 자습 때는 ‘야근하는 연습’을 시키고, 체벌을 통해 ‘모욕을 참는 연습’을 시켰다는 것. 이 이야기에 나를 포함한 청중들은 크게 공감하며 호응했다. 기자님의 고교 시절과 나의 고교 시절 사이에는 십여 년의 시간차가 존재하지만 그가 묘사한 고등학교의 모습은 내가 학생으로서 경험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길동무 도서관에 모인 사람들은 강의가 끝나고 기자님과 작별한 후에도, 옹기종기 둘러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띤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 중에도 학교 교육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예를 들면 몇 년 전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우리 아이는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빼 달라’고 담임교사에게 말했더니 담임교사가 ‘나중을 위해서라도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며 참여를 강요했다는 이야기 등. ‘그것도 못 참으면서 나중에 어떻게 사회생활 할래? 하기 싫어도 꾹 참으면서 인내심을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어.’라는 너무도 익숙하고 지긋지긋한 논리. 지금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교사로서 내가 겪어 온 요즘의 학교에서도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지겹고 무의미한 시간을 ‘견뎌 내고’,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을 ‘참아 내는’ 인내심 훈련을 치르고 있음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나는 이 사회와 학교, 그리고 인내심 훈련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일단, 이 사회 전체에 만연한 ‘쥐어짜니즘’. 고되게 견디고 ‘노오력’ 하면서 밤늦게까지 자신을 쥐어짜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또한 그렇게 인내 또 인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공동체이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학교 교육에 여실히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의 정신이 깨어 있어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 사회가 좀 더 살 만한 세상이 되기까지 사람들은 여전히 냉혹한 경쟁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 아니라도 누구나 사노라면 슬픔이나 고통을 견뎌야 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한 인간으로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인내심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요, 그 인내심은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참고 하면서 길러지는 게 아니에요. 진짜 인내심을 기르는 방법은 따로 있어요.”
  남편의 말이었다.

  “그게 뭔데요?”

  “좋은 추억을 많이 쌓는 거예요. 나는 진짜 힘들어 봤기 때문에 말할 수 있어요. 내가 진짜 힘들 때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건 예전에 친구들이랑 함께했던 행복한 추억이었어요. 행복한 추억이 많은 사람이 힘든 시간도 잘 버틸 수 있어요.”


  맞아,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내가 요즘 날마다 듣는 노래 ‘마냥 걷는다’가 저절로 떠올랐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얼어붙은 달밤을 혼자 걸어’가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때 우리를 지켜 주는 건 ‘좋았던 그 시절의 사진 한 장’, ‘좋았던 그 사람의 편지 한 장’인 것이다. 혹독한 삶을 견뎌 낼 준비를 하느라고 더 혹독히 인내하며 현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마음껏 깔깔대고 뛰어놀며 행복한 오늘을 누리는 것으로 마음의 근육은 더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내심을 길러야 하니, 싫어도 꾹 참고 무엇무엇을 하라’는 말은 그 얼마나 허약하고 허망한가. 훗날 그대의 ‘얼어붙은 달밤’을 지켜 줄 ‘좋았던 그 시절’, ‘좋았던 그 사람’을 바로 오늘, 미루지 말고 바로 오늘, 만나고 누리라, 마음껏 누리라, 이렇게 서로를 응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림_박현경, 「삶 21」, 부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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