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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매미 Jun 19. 2022

삶에 대한 어떤 해석

현경이랑 세상 읽기

*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2년 6월호에 게재되는 글입니다.


     오는 7월 19일부터 24일까지 숲속갤러리에서 열릴 나의 개인전을 한창 준비하고 있다. 학교 근무를 하는 기간에는 날마다 출근 전 삼십 분, 퇴근 후 세 시간 정도씩 꼬박꼬박 작업했고, 집에 있는 날은 보통 하루에 여섯 시간 내지 여덟 시간씩 꾸준히 작업해 왔다. 그림은 내게 무척 즐거운 일인 동시에, 즐거운 일을 훌쩍 뛰어넘는 무언가, 즉 삶 자체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 즐거운 일을 하지 않는 채로 살 수는 있지만, 살지 않는 채로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만큼 내 그림들엔 삶 속에서 내게 다가오는 온갖 생각과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전시할 작품들에는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은 바로 괴물들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내 그림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듯한 희한한 생명체들이 출현한다. 속눈썹 끝마다 꽃이 만개한 악어의 눈, 사람 얼굴에 꽃잎 비늘을 지닌 물고기, 투구 같은 지느러미에 일곱 손가락과 일곱 발가락을 지닌 옆얼굴 등.

     나는 이들을 그리기 전에 머릿속에서 미리 구상하거나 계산하지 않는다. 이들은 내 혈관 속이나 심장 속 어딘가에 살고 있었기라도 하듯 내 손끝을 뚫고 연필을 통과해 종이 위로 울컥울컥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이들이 일단 몸을 드러내면 나의 임무는 이들의 기괴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정직하게 표현하는 일이다. 이 임무는 세부 스케치와 채색 작업을 통해 실행된다. 이런 작업을 하며 마음속으로 가만히 읊조린다.


     “기괴함과 아름다움 사이에 얇고 투명한 막이 있다.

     이 막은 너무 얇아 어쩌면 아예 없는 듯도 하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괴물 친구들을 하나하나 스케치하고 색칠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삶의 기괴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나 자신을 포함한 뭇 존재의 기괴함과 아름다움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부분, 남들이 보기에 이상할 것 같아 숨기고 싶은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외모나 성격, 경험, 습관, 심리 상태 등 ‘삶’이라 통칭하는 그 폭넓은 궤적 중 스스로 생각하기에 징그럽고 싫은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 역시도 내 자신이 참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또한 과거의 내 모습들 중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뭐 이런 괴상한 인간이 있나 싶어서, 지워 버리거나 땅속 깊이 묻어 버리고 싶은 부분들도 있다.

     그런데 나의 괴물 친구들은 제 온 존재를 통해 알려 준다. 괴상하지만 아름답다고. 또는, 괴상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름답다고. 아니 좀 더 적확하게는, 괴상함까지도 다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다운 거라고.

     새로운 괴물 친구들이 쉴 새 없이 자꾸만 내게 말을 걸어 대는 까닭에, 나의 괴물 그리기 작업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이 작업은 내 자신의 삶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들과 화해하는 과정이자, 세상 모든 괴상한 아니 괴상하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에 대한 복권(復權)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중하다.

       어둠 속에 오래 웅크리고 있던 괴물들, 괴상하지만  괴상함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어찌 보면 징그럽고 무서워 보이나 실은 여리고 무해한  괴물들을, 부디 만나러 오시길. 오셔서 당신 안의 괴물들에게도 가만히  내밀어 보시길. 괴물들을 포함한 ‘삶에 대한 어떤 해석 편안히 젖어 보시길. 그리고 삶에 대한 당신의 해석을 내게도 들려주시길.

     박현경 개인전 ‘삶에 대한 어떤 해석’은 충북문화관 숲속갤러리에서 7월 19일 화요일부터 24일 일요일까지, 평일은 10:00~19:00, 주말은 10:00~18:00에 관람하실 수 있으며, 특히 7월 23일 토요일 오전 11시에는 조촐한 다과회가 있으니 많이들 와 주시길. 뻘쭘할까 지루할까 어려울까 재미없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걱정일랑 다 털어 버리시고 편히들 들르셔서 맘껏 쉬었다 가시길.

     이로써 초대의 글을 갈음하며 박현경 두 손 모읍니다.


그림: 박현경, <삶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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